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88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무엇을 구원이라고 믿는가?

 

내 믿음의 토대는 인류 구원에 대한 속죄 이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참여적 신비에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죗값을 치렀다는 것만으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인과응보와 사후에 받게 될 처벌과 보상이라는 틀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러한 틀을 삼위일체 하느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아버지(루가 15)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인과응보의 틀로 잃었던 아들에 대한 비유를 작은아들에게 적용해보면 작은아들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죄를 묻지 않았을뿐더러 돌아온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준비하십니다. 또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마르 2,15)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은 용서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병이 죄에 대한 벌이라고 가르친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존재로서 그분과 하나 되는 삶을 하느님 나라의 현재로서 경험합니다. 그러나 속죄 이론의 관점에서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한 벌로써 예수님이 대신 죽었다고 예수님의 죽음을 설명한다면 아버지 성부께서는 인간이 죄를 지어 화가 나셨고 그 화를 풀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한결같이 용서하고자 하시는 성부 하느님의 자유가 사라집니다. 이러한 이론은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을 인과응보의 틀로 하느님을 가두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러한 틀에 갇혀계실 분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제속프란치스코 회원들에게 강의해 오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신뢰하도록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대가를 지불해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이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과응보의 틀이 사후에 받게 될 처벌과 보상을 결정하도록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지키고 많이 바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언제나 따라다니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한시도 편한 날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원을 하느님과 거래하는 것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조금 바치면 조금 받고, 많이 바치면 많이 받고, 안 바치면 아무것도 안 주시는 하느님으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종교심을 믿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사랑이 커지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응답합니다.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랑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믿음의 현장에서는 신뢰와 사랑으로 변화하는 관계만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반사되는 선을 보고 변화하는 것이지 어떤 대가를 치르거나 빚을 갚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수난과 죽음의 길은 벗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참으로 나의 벗이 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생명이 없는 상거래식 구원론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자만심의 현재를 보여줍니다. 인과응보의 틀을 하느님에게 투사시켜 인간의 분노를 하느님의 분노로 만듭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느님에게는 분노의 흔적이 없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구원론은 일종의 대가적 논리와 정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보복하는 정의입니다. 우리를 생명 넘치는 구원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느님은 용서로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시는 데 그러한 하느님을 분노하시는 하느님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려면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보복하는 정신을 우리 내면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너를 살리기 위해, 네 몫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용서하는 자비가 흘러가도록 관계를 돌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한 과정에는 언제나 내어주는 몸과 쏟는 피의 현장이 있습니다.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으로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의 표징입니다. 예수께서는 구원하는 폭력 대신 구원하는 고난을 택하셨습니다. 거부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하느님이 아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버림받음의 경험 안에서 우리와 연대하십니다. 하느님은 멀찍이 안전한 곳에서 우리의 고통을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어떻게든 우리의 고통과 함께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서 흘러나오는 은총과 과분한 자비를 충만한 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시작된 관계의 혁명은 대가를 치러야 할 빚문서를 없애버리셨습니다. 보복하거나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용서하고, 허용하고, 놓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관계를 비추고 우리는 그 빛으로 영감을 얻어 관계 속에서 자신을 내어주면서 구원을 경험합니다.

 

용서가 자리 잡은 땅, 자비가 흘러가는 땅에서 생명이 움트고

생명이 만발하는 거기에 너와 나의 구원이 있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00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창조를 모르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아름다... 이마르첼리노M 2023.08.31 279
1399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7. 영적 치매를 주의하라 겸손과 같이 일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덕은 감사함이다. 감사의 필요함은 신약의 나병환자 열 명 비유 말씀에 강하게 나타난... 김상욱요셉 2023.08.28 229
1398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마음을 다스리게 하는 힘의 원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신이... 이마르첼리노M 2023.08.20 281
1397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 6. 숙고하는 영을 성장시키기 무엇이 진실로 좋은 것인지를 가려내는 영적식별은 때때로 꽤 쉽다. 상황은 옳은 것을 제시하고 당신은 즉각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 김상욱요셉 2023.08.19 231
1396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관계 안에 불을 놓으시는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아름다움이신 성령   마르틴 부버는 ‘모든 관계는 너와 나와의 관계이며 너와 나와의 관계가 아닌 관계는 나와 그... 이마르첼리노M 2023.08.14 363
1395 5. 초대받았을 때, 경이로움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 5. 초대받았을 때, 경이로움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 하느님은 우리가 경이로움을 경험하도록 계속 초대하고 계시고, 단순함은 이 경이로움에 이르게 하는 문... 김상욱요셉 2023.08.10 312
1394 4. 내적 단순성의 힘 깨닫기 4. 내적 단순성의 힘을 깨닫기 우리는 생애 전반에서 그리고 하루 생활에서도 수많은 활동들을 하고 다방면으로 이끌림을 경험하는데, 그 가운데서 우리 대부분은... 김상욱요셉 2023.08.05 287
1393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 우리를 끌어 당기는 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행복해하는 이와 더불어 기뻐하십니다. 인간이 드리는 최상의 흠... 이마르첼리노M 2023.08.04 238
1392 3. 밖을 또한 바라보기 3. 밖을 또한 바라보기 우리는 내적 양성의 중요한 목표를 때때로 간과하는데, 그것은 다른 이에게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열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김상욱요셉 2023.08.01 229
1391 수난의 사랑이 무엇인가요? 수난의 사랑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선택했을 때 견딤과 피 흘림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다만 사랑으로 하는 일에는 멍에가 가볍고 짐이 좀... 이마르첼리노M 2023.07.25 298
1390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 오신 하느님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 오신 하느님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신비는 기존의 인식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재인식을 허용하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처... 이마르첼리노M 2023.07.23 315
1389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2장: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내 딸과 사위 그리고 두 손녀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식사가 끝나자 내 딸이 손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김상욱요셉 2023.07.23 252
1388 네가 서 있는 곳이 가룩한 땅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기 3,5) 우리가 사는 곳이 거룩한 곳이며 우리가 만나... 이마르첼리노M 2023.07.20 197
1387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내어줌을 배우는 영성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내어줌을 배우는 영성   꽃은 꽃으로써 만족하고 향기를 내어줍니다. 나무는 나무로써 만족하고 잎과 열매와 몸 전체를 아낌없이 내어... 이마르첼리노M 2023.07.17 207
1386 일상의 축복에 반응하는 기도 저는 로버트 제이 윅스의 책, No Problem(문제가 아님을 향해) 을 대충 번역하며, 우리의 영적 여정에 대한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책의 내용과 함께, 저의 이어... 김상욱요셉 2023.07.10 281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00 Next ›
/ 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