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21.09.22 05:59

나는 누구인가? (1)

조회 수 3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나는 누구인가? (1)

 

전에는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가 누구인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소유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내가 하느님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신앙의 본질적인 질문이 하나씩 해결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는 인간과 다른 피조물과의 차이가 없습니다.

나는 탐욕이라는 다양한 이름의 중독증을 앓고 있었고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갈증은 커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나의 이름과 평판을 위한 속임수의 덫에 걸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자존심과 체면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가를 몰랐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느님께 해 드려야만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중노동에 가까운 기도와 희생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는

상을 받거나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며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거저 주시는 사랑으로 깊은 만족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온갖 꽃이나 나무들, 온갖 새들과 짐승들,

창조된 자연 생태계의 무수한 살아있는 생명을 살리시는 분께서

나도 돌보신다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창조된 생명을 끝까지 돌보시는 아버지의 자비와 선하심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지에서 그랬고, 교회의 사목자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처음부터 배웠던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셨습니다.

잘못할 때마다 벌을 주시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과 불안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미래에 받을 보상으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가르치는 교회의 목자들은

지옥과 연옥이라는 틀로 나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지켜야 할 것들과 바쳐야 할 숙제들은 날로 커졌고 그 양도 늘어만 갔습니다.

인과 응보적이고 상벌제의 교리는 나를 거룩한 위선으로 끌고 갔습니다.

보이기 위한 동기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중 충실성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려는 이중 충실성은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출구 없는 감옥이었습니다.

거룩함을 내세워 저지르는 천박한 경외심은 나를 어둠의 세계로 안내하였습니다.

기쁨도 없고, 자유도 없으며, 평화가 없는 출구 없는 감옥은

그렇게 몇십 년 동안 나를 그 속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종교심이라는 틀은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2)로 이어짐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5 변화와 성장 변화와 성장   성장은 죽음으로 태어나는 생명이다. 하느님 나라는 선의 확산이며 변화는 진화의 내용이자 결과다. 변화하지 않는 삶은 정체된 삶이며 정... 이마르첼리노M. 2020.12.17 397
» 나는 누구인가? (1) 나는 누구인가? (1)   전에는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지금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조금씩 알게 되면... 이마르첼리노M 2021.09.22 396
283 ‘No’는 사랑의 언어다. ‘No’는 사랑의 언어다.   진실한 내면의 사랑에는 거절의 신성함이 있다. 관계성 안에서의 선은 긍정적인 ‘예’로 시작하지만 ‘아니요’라고 해야만 선을 지... 이마르첼리노M 2020.01.31 396
282 반사된 선 (추석 달처럼) 반사된 선  - 추석 달처럼   사랑으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생명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선이며 하느님의 거룩함이다. 선과 거룩... 1 이마르첼리노M 2022.09.11 395
281 더 늙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은퇴한 사람들은 쉬면서 즐기는 것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면 즉시 그렇게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았... 이마르첼리노M 2019.10.01 395
280 사랑의 사도 마리아 막달레나 사랑의 사도 마리아 막달레나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과 내가 누... 이마르첼리노M 2021.07.22 394
279 종돌이 악양 수도원에서 나의 소임은경리 외에 기도할 때 종치는 것이다.악양 수도원에서 2년가까이 종을치면서 종에 대한 배움이 있었음을.사람이 종을 치고 종에서 소... 일어나는불꽃 2022.10.30 393
278 관계 속에 출산하는 익명의 세 번째 아이 관계 속에 출산하는 익명의 세 번째 아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열정을 가지고 따르... 이마르첼리노M 2023.01.13 392
277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전체 안에 부분으로써의 가지다.   나는 몇 년 전에 아프리카 앙골라를 방문한 ... 이마르첼리노M 2021.09.01 392
276 가슴 태우며 죄인들을 품는 아버지의 품 가슴 태우며 죄인들을 품는 아버지의 품   더 높은 차원에서 보려면 안경을 바꿔야 한다. 하느님 자비의 시선으로 보는 눈을 지혜라고 해도 될까? 내... 이마르첼리노M 2020.02.15 391
275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깨달음 뒤에 아버지로부터 받는 사랑에 눈이 열리면 가장 싫어하며 두려워하는 자신을 만난다.   ... 이마르첼리노M 2019.09.26 391
274 관계의 혁명을 불러오는 자유   관계의 혁명을 불러오는 자유   “여러분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법에 따라 심판받을 사람들이니 그런 사람답게 말하기도 하고 행하기도 하십시오. 무자비한 ... 1 이마르첼리노M 2022.03.07 390
273 깨죽에 떨어진 눈물 깨죽에 떨어진 눈물   구름모자 카페에서 깨죽 한 그릇씩 앞에 놓고 깨죽이 불러온 사연들 서로 다른 모성의 회상 회상의 거울 앞에선 비정의 어머니와 ... 이마르첼리노M 2019.12.23 390
272 아름다운 모순과 역설의 하느님 아름다운 모순과 역설의 하느님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를 매일 접하고 있다. 인류 앞에 놓인 대재앙의 현실 앞에서... 이마르첼리노M 2020.11.18 389
271 나는 안다 나는 안다.   구름 덮인 하늘 아래 꽃들은 안다. 해가 어디에 있는지   안개 낀 하늘 아래 새들은 안다. 아침이 되었는지   슬픔과 고통이 어둡... 이마르첼리노M 2020.10.15 388
Board Pagination ‹ Prev 1 ...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