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2페이지)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생각 자체를 바꿨다.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마태오 9,13)

희생이라는 말에 담긴 숨은 의도가 보복적 정의라는 틀 속에 나를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회개라는 말도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행하고 극기하는 희생이라는 말로 들리도록 함으로써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도록 만들었다.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종교는

예수께서 실천하시고 선포하셨던 복음과 하느님 나라와는 달리

보상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사후에 가게 되는 천국을 연상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되면 지금 여기서 누리는 하느님 나라는 빼앗기고 만다.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재물을 바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다오. (호세 6,6)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낮추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땅으로 내려오신 하느님,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내어주고

냉혹한 정의로 통제하는 하느님으로 맞바꾸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폭력이 정당화된다.

정당화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른다.

그것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폭력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으며 정당화되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단죄되었는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관계를 회복하는 정의다.

처벌이 아니라 화해와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삶이다.

화해와 관계의 회복을 위해 일하다 보면 고난이 발생한다.

인과응보와 보복적 정의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행동하는 자비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한 구체적인 증거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피조물과 나 사이에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원하는 고난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예수께서 겪으신 고난은 우리 죄에 대한 값을 치르신 것이 아니고

타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랑에 있다.

 

그분의 치유 이야기들은 하느님은 처벌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치유하시는 하느님, 자비롭게 용서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내어주고 죽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속죄론(죗값)의 이론들은 호소력을 잃는다.

속죄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깊이 있는 영적 여정을 포기하게 만들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유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죗값을 따지는 인과응보, 보복적 정의는 하느님의 정의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정의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은 속죄론을 타당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 살아왔다.

 

예수께서는 잘못한 인간을 위해 당신은 죽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마지못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분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자유롭게 선택하신 사랑의 계시였다.” (둔스 스코투스)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믿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은

너무나 많은 죄악이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도록

방관하였는지 성찰해야 한다.

 

내 인생의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분께서 실천하셨던 자비는

회복하는 정의라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루가15,11-23)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신다.

그분은 아들에게 계산서를 요구하거나 어떤 죄를 지었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대가를 요구하는 정의는 처벌적 정의다.

용서하는 사랑은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대가를 요구하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용서는 대가 없이 거저 주는 자비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생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재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8)

돌아온 아들을 용서하고 잔치를 베풀어 주는 자비,

강도당한 이웃을 보살펴주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연민,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이렇게 회복하는 정의였다.

 

희생을 요구하고 조종하고 통치하려는 건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폭력적인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다.

인간에게 희생과 고난을 요구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다.

하느님은 고난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고난의 신비

예수께서는 고난의 신비가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하셨으며

우리도 변화되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하셨다.

그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순들을 붙잡고 자신 안에서 모순들을 해결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구원자들이다.

자신의 죄를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변화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현실의 십자가 형태를 받아들이도록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받아들이도록 초대받는 사람들이다.

의무나 요구사항이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이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점으로 바꾸는

이 변화야말로 십자가를 통해 발견되는 보물이다.

 

예수께서는 고난받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신다.

고난을 받고서 해방된 사람들,

더욱 강해지고 현명해진 사람들,

더욱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깊이 있게 바라봄으로써

아버지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9 깨어 있어라. 그리고 준비해라 깨어 있어라. 그리고 준비해라   우리의 목적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면서 나에게서 내가 해방되는 삶이 믿는 이들이 누리는 기쁨이며 하느님 나라 행... 이마르첼리노M 2023.12.04 137
1458 수도원 카페 이야기 4 3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것을 나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확인한다. 일찍 출근 해야하는 아들아이를 4시에 깨우고 아침준비를 하고 블라인드를 열면 창밖... 김상욱요셉 2023.11.30 145
1457 15.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기 15.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의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기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의 가능성은 우리와 함께 한다. 어느날 죽음이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 김상욱요셉 2023.11.07 146
1456 16. 당신의 마음가짐과 자기 대화의 힘에 더 조율되기 16. 당신의 마음가짐과 자기 대화의 힘에 더 조율되기 우리의 성격, 인지들(예, 생각 방식, 지각, 이해) 그리고 자기 대화를 통해, 우리는 고통이나 기쁨을 찾는... 김상욱요셉 2023.11.17 147
1455 가치 충돌의 책에서 배우는 진리 가치 충돌의 책에서 배우는 진리   성경은 가치 충돌의 책입니다.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이라는 가치에 길들어져 있는 우리의 가치와 복음적 가치가 충돌하는 성경... 이마르첼리노M 2023.11.19 157
1454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을 배운 사람은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을 배운 사람은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변화가 가능합니다. 신비체험은 나를 몸소 선택하시는 하느님에 ... 이마르첼리노M 2024.05.04 158
1453 초대 초대   나무들이 웃는다 연초록 바다에서 싱싱하고 해맑은 미소로   안에서 밀어 올리는 기쁨 너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게 하는 아버지의 친절한 눈빛과 미소   ... 이마르첼리노M 2023.04.28 165
1452 기쁨은 관계를 비추는 빛입니다. 기쁨은 관계를 비추는 빛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빛나게 해드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이름을 빛나게 하는 일들을 멈춰야 합니다. 내 이름을 빛나게 하는 ... 이마르첼리노M 2024.04.25 165
1451 성탄과 공현의 신비는 관계의 상호성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선입니다. 성탄과 공현의 신비는 관계의 상호성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선입니다.   인간은 나약함에도 완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만심을 부추... 이마르첼리노M 2024.01.04 174
1450 찬미받으소서 회칙과 요한복음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종교적 관점이든 아니든, 카톨릭의 관점이든 불교의 관점이든 우리... 김명겸요한 2023.05.26 177
1449 내어주시는 하느님과 같은 방식이 아닌 사랑은 자기만족으로 끝납니다. 내어주시는 하느님과 같은 방식이 아닌 사랑은 자기만족으로 끝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선은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 방식입니다. 나는 내... 이마르첼리노M 2023.09.29 177
1448 여기가 어딘가요? 여기가 어딘가요?   꿈들이 만나 봉오리를 내밀었지 저녁 바닷길을 걸으며 단순한 기쁨 한 송이 꿈에 동참하는 또 한 송이 꿈의 연대가 만드는 우리의 운명 미래... 이마르첼리노M 2023.09.16 178
1447 하느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들 하느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들   믿는 이들의 최종 목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신비로 상호 존중과 자유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달... 이마르첼리노M 2023.10.24 179
1446 삼위일체 하느님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와 선 삼위일체 하느님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자비와 선     삼위일체 하느님! 저는 당신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창조되지 않고 모양도 없는 존재의 신비로 존재하시는 ... 이마르첼리노M 2024.04.07 184
1445 수도원 카페 이야기_1,"엄마의 오늘의 단상" 글을 쓰면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의 깊이를 더하려는 이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 대신 그분의 글을 공유하려 합니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김상욱요셉 2023.11.24 185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00 Next ›
/ 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