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5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

 

사도 바오로는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쓰레기로 버렸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필립비 3, 3-8

 

하느님의 의로움은 관계 안으로 선이 흐르게 하는 의로움이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마태 5,20-24)

 

거룩함과 의로움은 잘 지키고 많이 바치는 업적과 공로의 결과물이 아니다. 바리사이들이 찾는 의로움은 오직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만 중요했다.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율법준수와 도덕적 성취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잘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 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철저하게 지키고 많이 바칠수록 의롭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킨 율법은 자아도취의 잣대가 되었고, 그 잣대가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종교심을 믿음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바리이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스스로 의롭고 거룩하다고 하는 교만한 신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기도와 희생을 많이 바치고 신심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한다. 이들이 찾는 것은 인과응보에 따른 처벌과 보상에만 관심을 두기에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이용 가치가 없으면 쓰레기처럼 버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룬 업적과 공로에 따라 보상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있을 뿐, 관계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선을 흐르게 하는 행동하는 자비가 없다.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은 인과 응보적 논리로는 알아듣기 어렵다, 자신을 스스로 내어주시는 무상성과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보편성은 인간의 업적이나 공로에 따른 보상이 아니다. 하느님은 신비다 신비는 영의 활동이기에 인간이 만든 인과 응보적인 틀에 넣어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인과 응보적 논리가 무너져 내린 곳에서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관대하심은 오직 내어주시기만 하시는 분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는 분노가 자리할 곳이 없다. 하느님이 삼위일체인 이상 화를 내시는 하느님은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분노는 인간의 인과 응보적 논리를 하느님께 투사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비난해야 할 상황이 되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탓할 대상을 찾는다. 이러한 탓을 하느님께 돌려 분노하시는 하느님을 만들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하느님께 적용한 나머지 용서하시는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루가 15,11-32 잃었던 아들) 그러한 논리로 죄를 묻지도 않고 잔치를 준비하시는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분노하시는 하느님으로 만드는 것은, 통제를 위한 것이지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내세워 개인과 집단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내 탓을 네 탓으로, 우리 탓을 하느님의 탓으로 돌린 역사가 인간의 역사다. 누군가에게 탓을 돌릴 때 단절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하느님과 나, 너와 나, 피조물과 나 사이에 단절된 역사 안에서 살아왔으며 관계의 단절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단절의 역사 안에서 원복(낙원)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절의 역사를 회복의 역사로 바꾸시는 하느님이시다. (로마,5,1-21)

 

독점과 소유는 인간의 과도한 탐욕의 결과다. 독점과 소유는 신앙의 영역에까지 파고들어 관계를 어렵게 한다. 잘 지키고 더 많이 바치는 사람일수록 거룩하고 의롭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용서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꼭대기에 머물러 있기에 내려가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한다.

 

단절된 관계에 생명의 물줄기를 대주는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흘러가게 하는 일만이 거룩하고 의로운 일이다. 지금 하는 일을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응답하는 신앙으로 바꿔야 한다. 과거에 받았고, 지금 받고 있으며 미래에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 아래, 받은 사랑이 너무나 크고 감사해서 어떻게든 이를 하느님께 돌려드리기 위해 택하는 결단이기 때문이고, 하느님과 너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통해 내어주는 몸이며 쏟는 피가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는 의지보다 사랑받고 있음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필립 3, 8)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믿음인가요?

선은 그 자체로 보상이며 악은 그 자체로 처벌입니다.

처벌하시는 하느님을 용서하시는 하느님으로 바꾸는 믿음에 하느님 나라의 현재가 있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3 서로의 믿음이 없을때 ..... 살다 보면 누구에게는 마음을 열고 누구에게는 마음을 닫고 싶을것입니다 그것은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남도 다 그렇습니다 왜 일까요 ? 그것은 상대 ?가 믿을수... 1 file 2006.03.26 5349
1382 고통은 곧 사랑이며 희망이다. + 평화와 선 어느덧 사순시기도 다 지나는 것 같네요..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지.. 저 역시 반성하면서, 아주 작은 고통을 경험했는데 써볼까... 1 정마리아 2006.03.28 5634
1381 문의합니다. 라는 성서강좌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소나기 2006.03.28 6363
138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마더 데레사] 기획 초대 사진전 -------------------------------------------------------------------------------- 사진전 안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마더 데레사] 기획 초대 사진전 2006.... 세실리아 2006.03.28 9232
1379 4월의 목요만남 길 몸이 가는 길이 있고 마음이 가는 길이 있습니다. 몸이 가는 길은 걸을수록 지치지만 마음이 가는 길은 멈출 때 지칩니다. 몸이 가는 길은 앞으로만 나 있지만... 골롬반선교센터 2006.03.29 7529
1378 아.. 아직 멀었구나! + 평화와 선 거룩한 주일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저는 나름대로 주님을 생각하며 산다고 그리고 노력해 볼 것이라고... 거듭 반성하며, 저 자신과 약속을 하곤 합... 정마리아 2006.04.02 5116
1377 시각장애인 형제자매들과 방송미사를 봉헌하면서.... + 평화와 선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나날들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니, 정신이 없네요.. 다음주면 벌써 성 주간.. 지난 2일 방송미사는 시각장애인 형제자매들과 ... 정마리아 2006.04.04 5756
1376 김경상 마태오 사진 전시회-형제들 초청 사진작가 김경상 마태오씨가 형제들을 사진전에 초대한답니다. 장소는 시청 프레스센터 1층 전시장입니다. 단 입장료 오천원, 교황 바오로2세 추모사진전 개막 [... 신성길 2006.04.07 5967
1375 2006 성주간을 맞이하며... + 평화와 선 봄내음이 물씬나는 토요일 오후입니다. 내일부터.. 성 주간이 시작됩니다. 2006년 성 주간은 저에게는 지난 어떤 해보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개인... 정마리아 2006.04.08 5683
1374 차 진호 라파엘 형제를 기억하며.. + 평화와 선 성주간 화요일이네요.. 봄비도 오고... 저 자신이 유다 같지 않을까 반성해봅니다.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며 평생 잊지 못할 만남이 있습니다. 가톨릭... 정마리아 2006.04.11 5915
1373 수도원 뒷뜰의 봄 http://cafe.daum.net/angellee5030 벚꽃이 눈이 부시다.. 4/10 후원회 미사 후~ 모처럼 미사에 나온 보나와 함께 수도원 뒷뜰로 가 보았다. 보나는 이번에 실베... 안젤라 2006.04.12 7605
1372 *새이름으로 저장* '새이름으로 저장' 어느 한 교수실에 교수님이 있었다. 컴이 바이러스에 걸려서 119구조대가 와서 컴을 고치는 도중.. 컴에 저장된 파일을보니 독수리.hwp, 두루... 사랑해 2006.04.13 9414
1371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미니 ^^ + 평화와 선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어제, 부활절 대축일 저는 마음이 지옥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참았으면, 아무일이 없었을텐데.. 다... 정마리아 2006.04.17 9554
1370 * 예수님과 성요셉님의 대화 * * 예수님과 성요셉님의 대화 * 예수님 : 아빠, 오늘도 라면이예요? 성요셉 : 얘야~ 오늘도 어머니는 발현중이라 바쁘시단다...-_-;;; ^^;;등급이하라면 삭제 당하... 사랑해 2006.04.18 8566
1369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창립 총회 취재 후기 입니다. + 평화와 선 비와 눈,강풍으로 피해 없으시길... 어제 대전시청에서 대전여성장애인연대 창립 총회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인 연합등 문제가 무엇... 정마리아 2006.04.20 5682
Board Pagination ‹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00 Next ›
/ 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