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5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2: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내 딸과 사위 그리고 두 손녀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식사가 끝나자 내 딸이 손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너희들은 무엇을 했던 것이 좋았니? 다른 말로 하면, 너희들은 하느님이 주신 어떤 선물들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었니?”

손녀들은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좋아했고, (현대 긍정 심리학에서 말하는 감정들의(signature strengths)’ 꽤 긴 목록들을 이야기했다. 손녀들을 답을 들은 사위는 그러면 겸손은 어때? 너희들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 작은 손녀 에밀리가 겸손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위는 그렇게 젊은 세대가 아니기에 컴퓨터가 정보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었다. 사위는 그래 사전을 가져와서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볼까?”라고 대답했다. 작은 손녀가 달려가 사전을 가지고 와서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사위는 겸손도입부를 찾아 그 정의를 크게 읽고 물었다. “너희들은 이 설명을 듣고 누가 떠올랐니?” 손녀들과 그들의 엄마는 즉각적으로 힘차게, “할머니라며 나의 부인을 말했다. 사위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어때?”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할아버지는 아냐!”

우리가 영적인 삶에 많은 가치를 두더라도, 겸손이라는 덕은 파악하기 어려운데, 특히 할아버지들이나 남성들에게 그러하다. 우리는 매일 겸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개인적 영적 양성이 자라는 (soil)’이기 때문이다. 겸손이 아니고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겸손 없다면, 우리는 실재 이 세상에서 발을 디디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실재에도 불구하고, 겸손은 오늘 그렇게 빈번히 보이지는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선출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이나, 중도라고, 혹은 진보라고 보는 이들 대부분에게) 기쁨을 주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교종의 겸손 때문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진정한 겸손은 지각할 수 있는 거룩함인데, 우리가 다른 이에게서나 나에게서 이 겸손의 영을 만날 때에 거룩함을 경험한다.

 겸손이 우리 영적 여정의 중심이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지식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겸손을 더하면 당신은 지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이 지혜에 연민을 더하면, 당신은 사랑에 이르게 되고 사랑이신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이것을 아는 것은 하나의 도전인데, 그 이유는 겸손은 직접적으로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이기심에서 시작하거나 자기 존재감을 쫓는 것이다. 겸손은 하느님에 의해 조건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런데 이것은 겸손이 자라는 밭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이 선물을 기다리고 소중하게 여기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은 있다.

- 어떤 것에 관해 우리 자신을 타인보다 낫게, 혹은 못나게 비교한 순간들을 떠올려 보시오. 우리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을 때, 삶은 더 기뻐진다. 그리고 겸손의 열매는 평정심 가운데 우리의 달란트를 인식하게 우리가 한 단계 성장한 순간을 알아차리게 한다.

- (우리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해도) 우리의 성공에 다른 이가 얼마나 공헌했는지 느껴보라. 어떤 성공도 진공 상태에서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 우리 자신과 우리의 업적과 우리가 가진 바에 관심을 기울였던 때를 주의하라. 이 순간은 우리가 받은 것에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우리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때이다.

- 우리가 다른 이를 이용하거나 경멸하거나 놀리려 하는 유혹에 주의하라.

 이러한 방법들은 우리 자신과 삶을 전체적으로 투명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몇 가지 간단한 조치들이다. 겸손은 삶을 더 맛갈지게 하며 지침없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영적 자양분이다. 또한 겸손은 건강한 자존감을 지니게 하는 심리적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겸손은 한편으로 자기를 과대평가 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지나치게 의심하게 하는 것을 피하도록 돕는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렌즈를 깨끗하게 하여 우리 자신이 받은 선물들을 누리도록 하며 그것을 다른 이와 조건없이 나누도록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우리가 받은 것을 누리며, 하느님이 다른 것들은 돌보시도록 허용한다.

 첨언)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에 대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당신은 겸손이시나이다.” 당시 중세 계급사회에서 하느님은 높으신 분,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고백은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겸손이고, 겸손의 방식으로 당신의 드러내신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한 경험이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과 일상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기인한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묵상하며, “오 겸손의 극치! 극치의 겸손이여!”라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통한 겸손의 하느님의 선의 세계의 좋음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비슷한 표현을 성체성사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어좌로부터 동정녀의 태중으로 오신 때와 같이 매일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그분은 겸손한 모습으로 매일 우리에게 오십니다.” 프란치스코는 공생활 중인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게서도 겸손을 읽어내며 그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을 채우도록 하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버지 마음으로 채워지듯이 그의 마음 또한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환자와의 만남을 그의 회개의 시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만남 전에, 프란치스코는 나환자를 보면,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두려움, 싫어함 등의 마음만이 자기 마음으로만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없애기 위해 나환자를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나환자의 결정적인 만남에서는 그 마음 안에 작게(겸손하게) 감추어진 하느님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프란치스코는 그 작은(겸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큰 마음이 아니라 작은 나와 함께하는 하느님 마음을 선택합니다. 그러자 그는 새로운 실재를 만나게 됩니다. 그동안 그렇게 쓴맛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단맛으로 변하였습니다. 관계성 안에서 죽음만을 경험하던 나환자가 생동감을 얻게 되고, 프란치스코 또한 자기 안의 영이 살아나는 맛을 경험하였습니다. 겸손의 하느님과 하나되는 호흡과 움직임을 하면서 만났던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런 경험 후에 그는 세상적 흐름이 아닌, 하느님과 함께 호흡하고 하느님의 흐름을 살아갔습니다.

우리는 안에도 프란치스코를 움직였던 그 작은 마음은 이미 있습니다. 그 마음을 바라보며 그 마음과 하나되는 호흡과 그 마음이 나를 통해 잉태되고 낳음을 받도록 한다면, 우리 하느님의(겸손의) 세계를 만나고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98 05월 월 피정 안내입니다. 05월 월 피정 안내입니다. 주 제 : &quot; 그분의 진노는 잠시뿐이나 그분의 호의는 한평생 가나니!&quot; (시편30.6) 대 상 : 가톨릭 신자 누구나 장 소 : 정동 프란치스코... 김 안드레아 2006.04.28 8925
1397 용산참사 영화 상영 6월 21일 인디스페이스 극장에서 27일까지 상영합니다.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이지요. 그 25시간의 사건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유이규프란치스코 2012.06.20 8915
1396 환경의 날이래요.. 오늘은 세계환경의 날입니다. 몇 가지 가볼 만한 사이트를 알려드립니다. 1. UNEP(국제연합환경계획) 한국위원회 http://unep.or.kr/wed/ 2. 뉴욕자연사박물관 기... 알림 2009.06.06 8862
1395 작은형제들의 사회참여 사회 참여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으나 국민의 삶과 괴리된 삶으로는 사회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셨던 부류의 사... 1 유프란치스코 2012.11.22 8796
1394 대전 수련소에 계시는 형제님 안부가 궁금합니다. + 평화와 선 지난 2월9일 목동 수련소에 일이 있어 갔는데, 마침 다리 다친 형제님께서 목발을 짚고 나오시는데, 저도 다리가 불편해서 붙잡아 주어야 계단을 올... 1 정마리아 2006.03.14 8795
1393 수영장에서 잉어의 신비를 관상하며! 수도원 안에서의 틀에 박힌 생활로는 뚫고 들어가기 힘든 세계를 수영이라는 운동이 열어주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수영이 몸에 익으면서 부드러운 물 속에... 2 고 바오로 2011.12.26 8725
1392 죄송한 연락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이 요한 신부입니다 초대드린 심성술 박사님의 &quot;고틱 건축 산책&quot;은 강의 장소인 교육회관의 인터넷 케이블 선 관계로 강사가 준비해 온 ... 이종한 2011.09.18 8663
1391 월피정에 초대합니다. http://sungsim1.or.kr장소 : 산청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신관 일시 : 매월 마지막날 저녁 ~ 새달 오전 내용 : 첨부 참조 file 생비량 2011.01.08 8646
1390 프롬과 프란치스코의 대화 프롬은 사람들의 삶의 자세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소유 지향적인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지향적인 자세이다. 소유 지향적인 자세는 온 세계를 자신... 김상욱요셉 2012.12.29 8635
1389 가톨릭 교회에 들어오는 성공회 신자들의 성직 자치단에 관한 교황청 신앙교리성 공지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성공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성공회의 전례와 영성적 요소를 유지하면서 가톨릭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길을 ... 대화일치영성센터 2009.11.04 8634
1388 뒤파이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를 위한 미사곡 http://www.amare.org St. Antony of Padua (1195-1231)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학자이며 사제, 교회학자, 증거자, 프란치스꼬회(작은형제회) '기적의 성인' '파도... 장 프란치스꼬 2006.07.02 8610
1387 감정에 향유를.. 感情에 향유를 ... 나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위기는 감정의 공복에 이르는 일이다. 노래하는 사람이 성대를 아끼듯이 영의 현존아래 자신을 두려는 이에... 이마르첼리노M 2013.02.20 8609
1386 오상을 받은 비잔틴 가톨릭 신자 -The miracle of Damascus 위의 &quot;링크&quot;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주교님의 허락을 받아 올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7번째와 8번째 동영상에서는 오상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Catholic Yo... 권용희 도민고 2008.09.20 8575
1385 * 예수님과 성요셉님의 대화 * * 예수님과 성요셉님의 대화 * 예수님 : 아빠, 오늘도 라면이예요? 성요셉 : 얘야~ 오늘도 어머니는 발현중이라 바쁘시단다...-_-;;; ^^;;등급이하라면 삭제 당하... 사랑해 2006.04.18 8566
1384 [re] 토론을 제안하신 요한 형제님께! 토론을 하자고 제안을 하셨는데, 제안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 가회동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이후, 저희 관구 홈페이지에... 4 고 바오로 2009.06.06 853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00 Next ›
/ 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