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교회 안에서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국가와 민족 간의 민주적인 사회 문화는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성장하지만 교회는 자신을 내어주는 관계적 문화 안에서 온유하고 부드러운 공감을 토대로 하여 성장합니다. 교회가 도덕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율법적인 가치 추구에 그칠 위험이 많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만을 최대의 목표로 삼아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신비를 하느님 나라의 현재와 연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관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고 율법을 더 엄격하게 지키려는 경쟁만이 남아 우월감에 중독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만을 양산하는 교회가 되어갈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를 겪는 이들 가운데는 근본주의의 뿌리 깊은 광신에 온갖 열정을 쏟다가 스스로 무너져버린 이들도 많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끝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영과 부활하신 주님의 영인 성령의 친밀한 관계를 배우지 못하면 신앙의 신비적인 체험이 불가능해집니다. 신앙의 신비는 관계적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의 구체적 현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려는 가운데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관계적 신비를 우리들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 나는 미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와서 배워라, 내가 주는 멍에는 편하고 짐은 가볍다.”(마태 11,29) 온유와 겸손은 부드러움과 따뜻함, 내어주는 몸과 너를 받아들이고 살리기 위해 흘리는 피, 그리고 용서하는 자비로 표현됩니다. 관계 안에서 친밀함과 존중, 대화와 협력의 동기들이 예수님 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게 만드는 믿음은 그렇게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서 성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대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친밀함은 열린 마음과 환대를 통해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하느님의 동등함을 포기하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너에게 꼭 필요한 것을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우려는 마음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부서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손은 나의 손이며 나의 심장입니다. 말씀의 통치에 내맡긴 나의 자유와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는 나를 통하여 그분은 일하시며 영의 활동을 계속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나의 친절한 미소를 통해 당신의 선하심을 드러내시며, 기쁨에 찬 나의 얼굴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으로, 가난하고 겸손하게 동반하고 부축하십니다. 부활의 증인은 사도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상호관계 안에서 내어주는 몸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자신의 생활방식을 통해 그리스도가 살아계심과 현존을 존재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자비와 선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영의 거룩한 활동은 과거의 죽은 관계들이 아니라 현재의 살아있는 관계 안에서 계속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죽음의 장소에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의 사건들은 나와 무관한 일들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그리고 자연 안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을 돌보시는 영의 거룩한 활동이 관계적 신비를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실 공간을 마련하는 가난함이 너를 위한 친밀함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사라고 부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현존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눈앞의 이익과 편안함과 즐거움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삶의 뿌리에서부터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부르는 유혹의 손길들이 진한 어둠으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폭력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선택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만심을 확장하기 위해서 너와 피조물과 하느님까지도 이용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믿는 이들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어둠 속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도록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들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세상 안에 하느님 나라의 실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입니다.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없다면 교회는 쓸모없는 건물로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이지만 두 세계가 존재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이고 자만심을 확장하면서 내가 지배하는 세상과 끝없이 내어주시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쉬고, 자신도 내어주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경험하는 하느님 나라의 실재가 있는 세상이 공존합니다. 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만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자유가 자유를 구원하는 신비와 내어주는 법이 자유롭게 하는 신비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이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떠나 세상 모든 이에게 열린 하느님 나라의 실재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내어주는 사랑으로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세상을 돌보시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 안에 숨을 불어넣으시고 저마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도록 필요성을 채우시는 아버지의 품은 넓고 심오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영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도록 잔칫상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거룩한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거절한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신비로 드러나는 교회는 진리가 무엇인지,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가난이고, 관계 안에서 선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겸손이며, 상호 간에 내어주는 사랑이 생명을 얻게 합니다. 하느님의 무상성과 보편성이 살아있는 관계 안에서 적용되는 신비가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표현하는 이들이 성령의 충만한 기쁨을 교회 안에서 표현하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10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육화된 하느님 현존의 실재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은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최상의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 이마르첼리노M 2023.01.28 234
1409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향기로 다가와 볼을 비비는 이여!   벌들에게 꿀을 내어주면서도 순수한 꽃으로 남아계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생명이 만... 이마르첼리노M 2023.03.20 235
1408 회개 - 준비하고 깨어있는 자들이 누리는 현재의 행복 회개 - 준비하고 깨어있는 자들이 누리는 현재의 행복   11월에 자주 듣는 말씀은 종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미래에 있을 종말을 염두에 두고 사는 이들에게는 ... 이마르첼리노M 2023.11.02 235
1407 내어주는 만큼 배우는 진리 내어주는 만큼 배우는 진리   삼위일체 하느님은 신적 생명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매력으로 끌어들였다. 선과 자비라는 매력에 이끌린 사람은 관계 속에 선을 행... 이마르첼리노M 2022.12.09 236
1406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 우리를 끌어 당기는 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행복해하는 이와 더불어 기뻐하십니다. 인간이 드리는 최상의 흠... 이마르첼리노M 2023.08.04 237
1405 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내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과 하느님께서 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 이마르첼리노M 2023.01.25 240
1404 힘의 원천을 성찰하기 힘의 원천을 성찰하기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믿음의 근본을 이루는 힘의 원천을 성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신적인 ... 이마르첼리노M 2023.01.26 241
1403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quot;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quot; (마태 18,22)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이마르첼리노M 2023.03.15 241
1402 태도적 가치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태도적 가치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우리 믿음은 우리가 내보이는 태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치유의 이야기를 ... 이마르첼리노M 2023.12.01 248
1401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2장: 잃어버린 사막 교부의 덕을 다시 회복하기 내 딸과 사위 그리고 두 손녀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앉았다. 식사가 끝나자 내 딸이 손녀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김상욱요셉 2023.07.23 251
1400 새해의 기도 새해의 기도   새해 새날의 첫 시간 주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사로잡았던 일들로부터 나를 빼내 주시고 성령 안에서 저를 다... 이마르첼리노M 2023.01.01 256
1399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주님의 영과 그 영의 활동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지극히 단순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 이마르첼리노M 2023.07.04 259
1398 성금요일의 묵상 성금요일의 묵상   죽음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관계의 벽들이 무한대로 확장하는 상태다.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 1 이마르첼리노M 2022.04.15 268
1397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학교 (성프란치스코의 축일에)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는 학교 (성프란치스코의 축일에)   내어 주는 만큼 기쁘고, 내려가고 내려놓을수록 풍요로워지고, 허용하고 놓아줄수록 자유로운 신... 이마르첼리노M 2023.10.04 268
1396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여성성 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여성성   너무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진리를 따라 살기보다는 사교클럽 삼아 다니거나 인간 ... 이마르첼리노M 2024.03.21 26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