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3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자신만 자유롭게 하려는 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관계의 지옥이다.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더 자유롭게 된다는 사실은

실천적 믿음과 행동하는 자비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믿음이 없는 이들의 지식은 성장을 위한 변화로 나아갈 수가 없다.

진리는 믿음 안에서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선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공허하고 자신과 타인을 진리로 인도할 수 없을뿐더러

하느님의 통치를 거부하거나 하느님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기에 아쉬울 때만 찾는다.

믿음이 없는 지식은 자신의 실리적인 목적을 위한 것으로 전락하여 관계를 망친다.

복음적 계시는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있는가에 따라 열매를 맺는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내가 나를 가르치지 않고 다른 이가 나의 스승이 되고,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않으며 다른 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인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화의 도구로 산다는 것은, 절대적 타자이신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믿음과

초월자를 만나는 신앙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도록 하는 것은,

가난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내 자유와 내 의지를 맡겨드린다는 것을 말한다.

즉 자신에 대한 중요성과 자율성을 포기하고 그분과의 연합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분과 연결된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창조 때부터 우리를 통하여 창조를 계속해 오셨다.

그분은 나를 존중해주시고 돌보아주셨지만 나를 무시하거나

당신이 좋을 대로 하시지 않고 나의 협력을 구하셨다.

우리는 그분이 머무실 공간과 여백이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마음 안에 공간과 여백을 만드는 것은 성전을 허무는 일과 같다.

 

오늘 복음은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이다.

사람들이 신을 섬기기 위하여 만든 돌로 만든 성전의 돌들이

하나도 제 자리에 놓여있지 않고 허물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만든 성전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에는 관계의 돌들로 쌓은 성전이다.

관계의 돌들이 제 자리에 있도록 하려면 내가 쌓아놓은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관계의 돌들을 하나씩 올려놓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자아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하며 합리화할 것이다.

고난과 좌절, 치욕과 고통을 느끼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장악하면서 만든 성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연결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신앙은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포도나무에 붙어있게 함으로써

환상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통하여 너에게로 흘러가게 하는 일이다.

그것을 가로막거나 흘러가지 못하도록 중단시키는 것,

그것이 인간이 저지르는 의 구체적 현실이다.

 

하느님과 연결된 사람은 믿음으로 드러나는 행동들이 있다.

경쟁할 필요도 없고, 자랑할 일도 없고, 비교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을 높일 필요도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하느님이 나의 소유가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친 어떤 대가도 아니며, 성과나 결과물도 아니다.

그분을 내가 소유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분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우리는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애쓸 뿐이다.

 

관계의 회복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관계가 깨졌거나 허물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우리는 저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오면서

탐욕과 독점과 소유를 우선으로 찾아왔으며 꼭대기에서 살아왔다.

나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왔다는 말이다.

나만을 위한 삶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관계의 돌로 하느님의 성전을 재건하려면

관계의 회복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행동하는 자비가

나를 통하여 너에게로 흘러가도록 응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은하계의 티끌인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회개하는 삶으로 초대된 축복이 여기에 있다.

 

하느님의 성전을 짓는 유일한 돌이 되어

내 위에 너를 올려놓는 관계의 혁명이 거기에 있다.

가난과 겸손과 온유한 마음은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허물어진 성전은 나를 허물 때 복구의 희망이 있다.

그렇게 한다 해도 나는 나로 남아 있으며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고난과 죽음이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 길로 안내해 주셨기 때문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 28-30)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50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 오신 하느님 우리들의 관계로 이사 오신 하느님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신비는 기존의 인식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재인식을 허용하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처... 이마르첼리노M 2023.07.23 314
1349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하느님 나라의 새 이름 (상호존중의 원 안에서 누리는 참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미지는 삼각형의 꼭대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 이마르첼리노M 2023.09.05 315
1348 사랑의 묘약 (2007년 9월26) 사랑의 묘약     사랑 때문에 기도하고 사랑 때문에 시를 쓰는 마음   사랑은 내 존재의 근원에서 꽃피는 축제요 염원이요 참회라 할 수 있다.... 이마르첼리노M 2021.09.30 316
1347 기도는 관계적 대면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기도는 관계적 대면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창조하신 존재들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을 ... 1 이마르첼리노M 2022.01.05 318
1346 믿음의 뿌리를 성찰하기 믿음의 뿌리를 성찰하기   믿음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은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얼마나 큰 자비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 이마르첼리노M 2020.01.25 320
»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자신만 자유롭게 하려는 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관계의 지옥이다. 타인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더 자유롭게 된다... 이마르첼리노M 2021.11.23 320
1344 기도 (나에 대한 하느님의 갈망과 하느님에 대한 나의 갈망이 만남) 기도 (나에 대한 하느님의 갈망과 하느님에 대한 나의 갈망이 만남)   기도하고 싶은 갈망은 어디서 오는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적에 결핍과 한계를 느껴서 신... 이마르첼리노M 2023.05.08 321
1343 신앙의 현주소 신앙의 현주소   나의 내면에 깊은 골짜기에서는 그분에게 소유된 나와 나에게 소유된 하느님을 만난다. 내가 그분께 더 많이 속하면 속할수록 그분도 나에게 자... 1 이마르첼리노M 2022.02.26 322
1342 성삼일 사랑의 축제. 사랑은 길을 찾아냅니다.   성삼일 사랑의 축제. 사랑은 길을 찾아냅니다.   하느님 사랑의 극치 극치의 하느님 사랑   성목요일 내어주는 몸 쏟는 피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현장 극치의... 이마르첼리노M 2024.03.27 323
1341 의인의 믿음과 죄인의 믿음 의인의 믿음과 죄인의 믿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루가 5,32)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율법을 잘... 1 이마르첼리노M 2022.03.05 324
1340 참여하는 신비 참여하는 신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 사랑은 혼자서 할 수 없으며 대상이 필요하다. 사랑은 사랑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신비다. 사랑에 참여... 1 이마르첼리노M 2022.09.07 327
1339 변화를 허용하는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내면의 불안을 내어 맡겨라 나에게 있어 성장과 변화의 길로 나를 안내하는 깨달음은 단순하고 유약하게 표현되는 내면의 불안을 주님께 내어 맡기려는 가운데 ... 1 이마르첼리노M 2022.10.16 328
1338 정동 수도원 이야기 (5) 정동 수도원 이야기 : 아폴리나리스 신부님 (5) 그분이 방인 회원 양성에 대해 보인 태도와 관심은 참으로 예언적이었다. 오늘에 비해 삼분의 일도 되지 ... 이종한요한 2021.11.26 329
1337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시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시는가?   “분노와 흥분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방해하므로 남의 죄 때문에 화내거나 흥분하지 않도록 ... 1 이마르첼리노M 2022.02.02 331
1336 무대책이 대책 무대책이 대책   프란치스칸 삶의 중심에는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드리는 가난과 아무것도 자신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손길에 맡겨드리는 겸손... 1 이마르첼리노M 2022.03.01 332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99 Next ›
/ 9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