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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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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가 온 누리에.


  오늘같은 초파일이면 단 하나 뿐인 외사촌 형이 생각난다.


  15년 전쯤 큰외숙모가 돌아가셨을 때 절에다 모셨기에 이모들을 따라 가본 적이 있었기에 그 기억이 남다르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어릴적엔 엄마를 따라 서울역 건너편 남산 아래 도동에 있던 형집에 자주 간 편이어서, 그 뒤편 남산에 대한 옛 추억도 가끔 떠오르곤 한다.  그 시절엔 남산으로 오르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고, 하도 지루해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한참을 오르다 보면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4,19 이후에 그 동상은 백성들의 원성에 의해 철거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세월의 먼 뒤안길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엄마나 내가 형 집엘 자주 갔었지만, 외숙모나 외사촌 형이 그리 멀지도 않은 강 건너

동재기 집이나 흑석동 집에 와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쌍방간에 그랬었구나 하는 과거지사와 함께 형평상 일방적인 친척 관계였음을 알게도 되었다.  약간의 취기가 도는 어느 자리에선가, 평소에 거의 말이 없던 형으로부터 엄마에 관한 진실을 들을 수도 있었으니, 외사촌 형에게 가끔 용돈까지 주신 좋은 우리 엄마였다고 칭찬을 하는 거였다.  아마도 애비없는 조카여서 고모의 입장에서 측은지심으로 가끔 그리 하셨겠지만, 암튼 우리 엄마가 자랑스러운 거다.  같은 입장에서 우리가 그 집엘 자주 드나들었지만 큰외숙모가 내게 용돈을 주신 기억은 전혀 없다.

       

  그 시절의 형의 이미지는, 매우 활달했고 나와는 달리 키도 커서 운동을 썩 잘 했었다.  그리고 일찍 아버지를 여의였지만, 물려받은 유산이 좀 있었던지 궁색한 구석은 전혀 없었으며, 형이 신던 가죽 구두며 가죽 책가방은 으례히 내가 물려받았지만, 가난했던 동재기 마을의 형편에 비해 나는 오히려 그런 값나가는 것들이 매우 껄끄러웠고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하여 사용은커녕 보기조차 싫어하며 심통을 부렸으니...아마도 싹부터가 부유하고 사치스런 것보다는 소박하고 가난한 걸 좋아한 프란치스칸 기질인 것을 집안 어른들이 어찌 이해할 리 있었을까.          


  형은 머리가 좋아선지 사회적으로 좀 잘 나간 편이어서, 사대부고 졸- 연세대 상과대 졸- 대우실업 인사과장- 대우 계열 중소기업 사장으로 오랜 근무 끝에 정년.  아마도 그만하면 사회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성공적인 인생 편력을 지내온 것이리라.  그런 잘나간 형이건만 나는 전혀 부럽지가 않고 오히려 측은해지기까지 하니, 아마도 삶의 방편에 있어서 잣대와 기준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런 형이 근자엔 친척간에 전혀 오가는 법 없어, 심지어는 당신의 두 숙부들 생신에도 전화 한 통 없이 지낸지가 오래란다.  거기엔 필시 서로간에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어 소통이 단절된 것이려니 하겠지만, 왜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잖은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개가 있는 데, 그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란다.  그마만큼 남을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겠다.  물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면서 잘 지내고 있으려니 할 뿐이지만...


  그런 형이지만 초파일을 기해  불자라는 생각에 미치어 오랫만에 문안 문자를 보내보았다.  강남에서 지내다가 용인 수지로 이사해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소식과 함께 뜨듯 미지근하게 답을 할 뿐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될 기미가 없다.


  언젠가 형제들과 함께 용문산에 엠마오를 갔었을 때, 거대한 은행나무 바로 뒷편에 '자비무적(慈悲無敵)'이란 커다란 현판의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비나 사랑이나, 사실 표현만 다를 뿐이지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자비심이 있는 곳에 어떤 적도 있을리가 없다.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돌을 던지는 군중들을 위해 "하느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지 않았던가.  어찌보면 적이란 돌을 던지는 타인이 아니라 무명에 가려진 자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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