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19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며칠 전 오랜 가뭄의 와중에 달디 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안가 본 코스를 택해 어림잡아 산을 오르려 하니, 길이 잘 나지않은 골짜기로 들어서 등산화는 질척하게 다 젖었고 바지도 많이 이슬비에 스며들어 제대로 걷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참 그렇게 애를 먹으며 산길을 헤집으며 오르다가 12시가 좀 넘어 비를 피해 점심을 먹을 요량으로 마땅한 장소를 눈여기고 있을려니, 마침 가까이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깊은 골짜기에 왠 아이들...?"  의아했지만, 곧 선생님들과 함께 노란 뻐스에 실려 자연학습을 나온 애들임을 즉시 알게 되었다.  비를 피해 가건물식 텐트가 넓게 쳐진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신이 나 뛰어 노니는 유치원 꼬맹이들과 젊은 선생님 몇 분들의 분주한 모습!

  그래서 입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사갖고 간 3천원 짜리 김밥을 펼쳐 먹으려 하는데, 깔끔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사내 아이가 쫄르르 달려 오더니 내 곁에 턱을 치받치고 있어 일거일동을 지켜보는 거였다.  "욘석 좀 봐라.  얘, 김밥 하나 먹으련?"  고개를 끄덕끄덕...그렇게 하나를 먹으며, 맛있는 모양으로 더 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그러나 3천원 짜리 김밥의 양이 오죽하랴.  내 배에도 차지 않은 적은 양이라, 더 주기엔 좀 그랬다.  그리고 아이들의 분위기를 보니 선생님들이 간식도 준비해 온 듯 싶었고, 정말 못먹어 배고파 보이는 그런 애들이 아닌 듯 싶어, "애, 너무 적은 김밥이라 더 나눠주기가 좀 그렇구나!"  그리고는 이미 1/3 정도 마신 두유를 보고는, "그건 뭐예요?"  "이것도 마시고싶은 거니?  그런데 어쩌지, 아저씨가 감기에 걸려 이미 입을  댄걸 네게 줄 수가 없겠는걸!"

  이렇게 그 애와 주고받는 사이에 선생님 한 분이 지나치면서, "준호야, 너 왜 아저씨를 그렇게 귀찮게 하니?  저기 가면 간식거리 많으니 어여 저쪽으로 가서 놀렴."  그리고보니 할아버지뻘 되는 내가 졸지에 아저씨가 된 꼴이어서 좀 웃음이 났다.              


  준호와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녀석의 천사같던 천진스런 접근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시나브로 비가 내리던 날, 그토록 깊은 산중에서 만난 아이들의 뛰어놀던 모습도 매우 신기스러웠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들의 교육으로 낱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유난하지 않는가?  맛난 걸 주려해도 천진스러움이 사라져 이상하고 무서운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낱선 얼른이란 이유 하난 만으로도 인간관계에 삭막한 담이 쳐지는 요즘이 아니던가.  준호는 요즘 애들같지 않게 쓸쓸한 그림자나 어둠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해맑음이었다.  지난번 산 속 쉼 의자에서 쉬는 동안 내 앞으로 날아온 직박구리처럼, 준호의 천진스런 태도도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높이 자락 비에 젖은 산길로 더 이상 정상에로의 접근은 일찌감치 포기한 그날이었지만, 대자연의 품 속 비가 내리는 와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 만은 아닌 듯 싶었다.   

  눈을 한껏 돌려 청계산이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본 그날은 가뭄 끝에 내린 달디 단 비라선지 더욱 상쾌하였다.  조용하지만 산중 대자연에는 온갖 생명들- 갖가지 나무들과 풀들, 곤충들과 풀벌레 소리, 새들...서로간 상생(相生)의 그 어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특히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얽히고설켜 지내며서도 서로 양보하며 조화를 이루는 고요함과 평화로움!  그런 자연에서 얼마나 좋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지!  그래서 어쩌다 자연과 접하면 비록 도가적인 풍토만은 아니더라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말이 쉽게 내 마음에 와 닿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고교 1학년 때였으리.  국어 선생님 시간에 본인 원하는대로 작문을 짓게 하셨다.  그때 내가 써낸 글은 뜻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호연지기(浩然之氣)'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내 존재란 싹은 프란치스코 성인과의 만남 이전에 이미 자연과 쉽게 접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자칫 지나친 욕심으로 제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요즘인가?  그러다보니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비움의 아름다움인 자연의 순리 대신 얼마나 많은 욕심이란 암(癌)을 쌓으며 살아가는지!  암이란 곧 물질을 산처럼 많이 쌓아 생기는 마음이나 육체의 병을 의미하지 않던가.


  여하튼 그날, 청계산 자락 자연의 품속 귀여운 '준호'와의 짧은 만남은 어른들과 아이들과의 석연치않은 요즘의 교육 시절에, 내내 신선함으로 남아있어 "참, 준호, 고 녀석!" 하며 훈훈한 마음의 미소를 띄우게 된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1. No Image

    사진 이야기

    T 평화가 온 누리에...   사진...하면, 역시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떠오르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사진기가 매우 귀했던 동작동 어린시절에 우리 집엔 막내 삼촌이 그 귀한 사진기를 지니고 계셨고,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자전거 휠을 수시로 닦으시...
    Date2017.07.18 By김맛세오 Reply0 Views1065
    Read More
  2. No Image

    길 고양이 덕분에, 감사를...

    T 평화와 선   평소와는 달리 인왕산행 산책 코스를, 산 중턱쯤의 경비처소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잡았다.  바로 옆 성곽이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한 폭의 멋진 그림이어서, 한 컷의 사진을 담고 나무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야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그...
    Date2017.07.14 By김맛세오 Reply0 Views1133
    Read More
  3. No Image

    어느 가구점 주인의 친절

    T 온 누리에 평화   요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나 봅니다.   마침 한 할머니가 우산이 없어 한 가구점 앞에서 비를 피해 서 있었습니다.   곧 가구점 주인이 나오더니 언짢은 기색으로,   "할머니, 남의 상점 앞을 가로막고 계시지 말고 다...
    Date2017.07.10 By김맛세오 Reply0 Views1417
    Read More
  4. No Image

    꿈과 알로에

    T 평화와 선   참으로 희한한 꿈이로고!   간밤 꿈에 유일한 수련 동기인 '황도마' 형제가 보였다.  성거산 수도원 배경으로, 두 형제가 하느님 품으로 가 영전 앞에 애도를 표하는 여럿 형제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는 모습이...그런데 한 형제의 신원은 나...
    Date2017.07.03 By김맛세오 Reply0 Views2007
    Read More
  5. No Image

    내 인생의 페이스

    T 온 누리에 평화를...  과연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에 대한 확실한 정답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무심할 수 있는 문제이거나 피해갈 수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라고 본다.  곧잘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여...
    Date2017.06.20 By김맛세오 Reply0 Views1167
    Read More
  6. No Image

    청게산에서 만난 '준호'란 아이

      며칠 전 오랜 가뭄의 와중에 달디 단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안가 본 코스를 택해 어림잡아 산을 오르려 하니, 길이 잘 나지않은 골짜기로 들어서 등산화는 질척하게 다 젖었고 바지도 많이 이슬비에 스며들어 제대로 걷기에 여간 불편한 게 ...
    Date2017.06.12 By김맛세오 Reply0 Views1196
    Read More
  7. No Image

    하느님의 섭리(은총) 또는 운명?

    T 온 누리에 평화를...   아침 미사 때 예전에 오랫동안 예루살렘에서 지내셨던 '안베다' 신부님이 많이 생각났다.  오늘이 바로 '베다' 성인의 축일이기도 하니, 신부님이 아니셨더면 지금 이렇듯 제 2의 삶을 살고 있을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
    Date2017.05.25 By김맛세오 Reply0 Views1324
    Read More
  8. No Image

    내 기억 속의 다양한 영상들

    T 평화가 그대들에게...   정원에 피어나고 있는 꽃 사진을 앵글에 담으려니   유난히 할머니, 엄마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늘 초봄이면 텃밭의 흔한 꽃들이지만 할머니는 요런저런 꽃씨들을 뿌리셨다.      "할머니, 요건 무슨 씨예요?  조건 백일홍...
    Date2017.05.08 By김맛세오 Reply0 Views1132
    Read More
  9. No Image

    불자(佛者)인 외사촌 형을 생각하며...

    T 평화가 온 누리에.   오늘같은 초파일이면 단 하나 뿐인 외사촌 형이 생각난다.   15년 전쯤 큰외숙모가 돌아가셨을 때 절에다 모셨기에 이모들을 따라 가본 적이 있었기에 그 기억이 남다르게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사 어릴적엔 엄마를...
    Date2017.05.03 By김맛세오 Reply0 Views1137
    Read More
  10. No Image

    여한이 없는 삶

    T 평화가 온 누리에...   평소에 늘 형제들에게는 기쁘게 살아야 한다고 권고했음에도, 실상 혼자 있을 때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여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프란치스코 성인!  얼마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였으면, 그로인해 말년에는 ...
    Date2017.04.25 By김맛세오 Reply0 Views1308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