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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7 20:41

인도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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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가는 길....

2005년 2월 5일부터 12월 5일까지 만 10개월을 인도에서 살았다. ‘해외 교환체험’이라는 정식 명칭 있지만, 이 말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나간 시간에 자칫 형식적이고 관례적인 인상을 부여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살았다’라고 표현한다. 이곳 한국에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생활을 하고 기도를 하며 살아갔듯이 그곳 인도에서도 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는 인도에서 인도인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는 그저 나의 개인적인 체험과 느낌 안에서 발견한 ‘나의 인도’에 대해 짧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인도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인도에서 전화하는데도 이렇게 소리가 선명할 수 있느냐며 놀라셨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인도를 상당히 낙후된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10억이 넘는 인구에 수많은 일류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또 원자폭탄과 인공위성까지 보유하고 있는 과학 선진국이기도 하다. 델리나 봄베이 그리고 뱅갈로르와 같은 대도시의 중산층 시민들은 선진국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소비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인도의 부자는 세계의 부자이며 그들의 생활은 왕들의 호화스러움에 가까운 것이 인도의 또 한 면이다. 그런 반면 문맹자가 넘쳐나고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즐비하며 평생을 노예처럼 일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도시의 빈민가와 시골의 논과 밭을 채우고 있는 곳이 인도이기도 하다.
극과 극. 인도에서 내가 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감히 올려다 보거나 내려다 보기가 아찔한 빈부의 격차, 돈과 폭력 그리고 성으로 채워진 세속성과 깨달은 성자들의 성스러움이 공존하다 그 간격이 너무 커 어딘가에서 만날 것만 같기도 한 영적인 양극화, 헐리우드 영화의 우민화를 비웃을 정도로 춤과 노래와 로맨스로 인도의 10억 인구를 혹하게 만드는 선정적인 볼리우드(인도의 봄베이에서 만들어진 영화) 영화와 듣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정화시키고 황홀감에 젖게 하는 시타르 연주 사이에 놓인 깊은 문화적 간극, 강간과 집단폭행 여성과 아동 학대 등으로 나타나는 폭력성과 미생물을 죽이지 않기 위해 맨발로 다니고 저절로 떨어지는 과일만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자인교의 절대적 비폭력의 천연덕스러운 공존, 40도를 우습게 넘기는 한여름의 찜통더위와 올해도 수많은 사람을 얼어 죽게 만든 겨울의 추위, 논밭이 쩍쩍 갈라지게 하는 가뭄과 홍수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몬순, 풀 한포기 구경하기 힘든 라자스탄의 사막과 1년 내내 강과 내가 풍요롭게 흘러가고 온갖 나무와 과일들로 넘쳐나는 케랄라주, 그리고 푸르른 인도양과 만년설을 머리고 이고 그 드넓은 품에 수많은 생명체와 구도자들을 품고 있는 히말라야.
이 모든 다양성과 극단성 안에서 사람들은 우주에 대해서 그리고 삶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목숨을 건 고행과 순례와 명상을 통해 그 해답을 얻고자 했던 수많은 성자들이 이루어낸 업적들이 결국 힌두교로 불교로 자이나교로 신비화된 이슬람으로 그리고 시크교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현대의 인도에는 아직도 그러한 영성적인 기운이 흐르고 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의 확산으로 인도 또한 세계 여느 개발도상국과 같이 환경오염과 극심해지는 빈부격차, 도시빈민의 확산, 배금주의 그리고 교통난 등의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긴긴 세월을 거치면서 두텁게 쌓아온 영적 퇴적물들은 여전히 그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것이 인도가 가진 매력이며, 그 매력에 이끌려 수많은 외국인들이 더럽고 불편하고 짜증나는 인도를 찾고 또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가를 배우고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명상을 하고 깨달은 구루들을 만나고.
한편, 인도의 다양성과 극단성은 한 민족이 같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정직성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덕목이며, 우리는 자신의 부정직함이 탄로날 때 부끄러워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되지는 않는 듯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도의 신들 중 어떤 신들도 정직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대부분의 가진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고용하는 하인이나 일군들이 아예 정직하지 못하다고 믿고 있다. 어쩌면 과거에 가지지 못한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그것이 자기의 생명과 직결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인도어에는 ‘미안하다’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 참 듣기가 힘들다. 기차의 연착은 너무 흔한 일이며, 바가지를 쓰는 것에 일일이 화를 내다가는 화병이 걸릴지도 모른다. 길을 걸을 때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자가용과 오토바이 그리고 오토릭셔(네바퀴로 다니는 작은 운송수단)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고 워낙 교통량이 많아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리되고 질서 지워진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인도에서의 하루하루는 짜증 자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버스를 3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불평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에 부딪쳐도 크게 다치지 않으면 그냥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길거리나 차 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또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식이 그들에게는 무식(無識) 즉 없는 지식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이다. 인도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다면 내가 가진 틀을 깨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그곳에서 고집해서는 안 되고, 나의 삶의 형태를 그들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살지 못하는 것, ‘나와 당신은 다르며 나의 잣대로 당신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문화와 문화 모든 것에 해당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나를 버리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의 영성과 문화 그리고 자연은 나의 신앙과 영성을 살찌워주었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에게 신의 존재 자체를 질문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 곳곳에는 늘 그들이 신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많은 흔적들이 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봉헌들, 꽃을 바치고 신상에 입 맞추거나 손을 대고 향을 피우고 사원을 찾고 경전을 읽는 것에서부터 심오한 철학과 신비에 대한 가르침과 깊은 명상에 이르기까지, 그들 신앙의 모습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며, 하느님이 늘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강하게 인식시켜 준다. 또한 드넓은 광야와 밀림, 눈덮인 히말라야의 만년설 등 광대하고 이국적인 자연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이 얼마나 크시고 다양한지를, 또한 그분께서 온 세상의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인도는 참으로 아름다우면서 추하고, 삭막하면서 다정다감하며, 저속하면서 성스러운, 그래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면서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나라인 것 같다. 하지만 분명 그곳에도 하느님께서는 인도의 모습으로 살아 계시며, 그 살아계신 분께서 나를 당신의 또 다른 나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분께 감사의 합장을 올린다. 나마스테!

생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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