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07.12.12 11:03

회상- 엄마와 기차

조회 수 246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T 평화와 선.

기차는 그리움이다.
특히 석탄이나 디젤로 움직였던
"칙칙폭폭" 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내 어린시절의 기차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향수나 미지의 세상을 향한 아련함을 실어 왔다.

유년 시절
외가집, 의정부에서도 외진 수락산 자락 밑,
동막골이란 마을로 가려면 꼭 기차를 타야했다.
(그 때는 뻐스가 없었나보다)
서울역에선지 청량리역에선지 출발역에 대한 기억에 없지만,
엄마와 내가 기차에 몸을 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차창 넘어로 보이는 넓은 세상- 수유리, 도봉산 등지였으리-은
지금처럼 조밀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민가가 거의 없는 평범한 시골 전경이었음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니,
아마도 엄마와 함께 어쩌다 외가집엘 가는 설레임 때문이었으리.
그리고 거기엘 가면,
날 귀애해 주시는 외할아버지,할머니며 외삼촌들이 계셨고
뒷 곁 나즈막한 산으로 가면 밤나무가 많아
때로는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알암을 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엄마가 간혹 나를 데리고 어델 가시려면,
평소와는 달리 꼭두새벽부터 치장을 해야했다.
세수를 빡빡시키시고- 그럴 때마다 대조적으로 살살 씻겨주시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그렇게 좋을수가!- 얼굴과 손에
로숀을 잔뜩 발라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로숀의 그 향긋함이 싫지 않았음에도
나는 로숀 바르는 걸 몹시 싫어했다.
로숀하면 엄마의 외출 표시 암시이니까,
정작 엄마의 외출이 달갑지 않았던 게다.

엄마와 함께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호기심 가득찬 치기어린 소년에겐
온 세상이 다 신기하기만 했으니,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행복 자체였다.

그런데 요즘이면 1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땐 왜 그리 기차 시간이 길었던지...
마냥이어서, 족히 2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의정부가 가까와지면
도봉산 아래 넓다란 미군부대가 보였고,
때로는 무얼 잘못했는지, 산 쪽으로 쫒기는 이가 보이고
그 뒤를 총을 쏘아대며 쫒아가는 미군!
그럴 땐 어린 맘에도 아무리 잘못했어도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양코배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
적개심마져 솔솔 일어나는 거였다.

의정부역에서 내려서도
외가집에 닿으려면 제법 큰 냇물, 징검다리를 건너
족히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외가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와선지 마냥 신나는 걸음걸이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깍깍...!" 짖어대는 까치 소리.
낯선 손님에 대한 상큼한 예우소리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엄마와 기차-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을 가능케하는 아름다운 회상들.
곱디 고운 엄마의 모습- 우리 엄마가 예뻤다는 걸 그땐 전혀 몰랐는데
세월이 훨씬 지나 사진을 보니 '와-! 엄마가 참 예뻤다'.
그런 엄마의 나들이 옷 중에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까만 비로도 치마였다.
비로도의 보드란 촉감이 내 조막손에 자근자근 느껴지면서
엄마와 내가 동리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들으시며
때로는 뉘 돌아가셨는지 엄마의 눈에선
금방 닭똥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졌고,
그런 엄마의 슬픈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싫었고 나도 맘 속으로 울음이 나왔다.

그랬다.
기쁨인 듯 슬픔이련 듯
하얗게 긴 하품을 토하며 달리는 기차는
어쩌면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리는
한 켠 내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하늘 엄마가 보고프면
영락없이 기차의 기적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2 힘내셔요, 새 주교님! T 온 누리의 평화 지난 월요일, 모처럼의 휴일에 용산 군종 교구청의 유하비에르 주교님을 찾아 뵈었다.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가 아닌 그냥 뵙고 싶었던 터... 2010.12.15 3086
511 흠영(欽英)의 성지순례 길 T 평화와 선   참으로 무던히도 많이 다녀 본 국내 성지순례 길이었다.   그렇게 2016년 나의 '안식년'과 더불어, 1년이란 짧고도 긴 시간들이 지나 어느덧 ... 김맛세오 2016.12.02 1390
» 회상- 엄마와 기차 T 평화와 선. 기차는 그리움이다. 특히 석탄이나 디젤로 움직였던 "칙칙폭폭" 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내 어린시절의 기차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향수나 미... 2007.12.12 2463
509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5)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5)순수한 금빛으로 빛나는 황금색의 뱀 두어 마리 잔 로렌조 베로니니의 조각 아폴론과 다프네련듯 작고 단아하지만 품위 있게 빛나는... 고파울로 2024.04.18 27
508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4)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4)여느 때처럼 소등을 하고 자리에 누워 고요 중에 별 생각없이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후유증인지 잠... 고파울로 2024.04.07 78
507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3)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3)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동안 적어도 30여 년 이상 온 의식이 뱀의 형상들로 인해 집요하게 시달렸었다. 꿈 이... 고파울로 2024.03.19 52
506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2)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2)초등학교 1~2학년 시절, 어느 봄날의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 멀리 5~6학년 형... 고파울로 2024.03.13 47
505 황금 빛 노란색 뱀 이야기 (1) 황금빛 노란색 뱀 이야기 (1)2021년 9월 어느 날 깊은 밤, 사람 몸처럼 굵은 뱀이 내 몸이 닿지 않게 몸 전체를 나선형 스프링처럼 휘감고 있는 꿈을 꾸었다. 얼... 고파울로 2024.03.07 93
504 환절기 면역력 높여주는 한방차 5가지 환절기 면역력 높여주는 한방차 5가지 아침저녁과 한낮의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는 환절기라 감기나 호흡기 환자가 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데다 건조한 ... 1 이소영 2010.10.08 2704
503 화장실 배수관 이것은... 인내 화장실 배수관 파이프를 구입하는데 정확히 3시간 하고도 20분이 걸렸다.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선정한 다음, 1차 영수증 발급을 받고 그 영수증을 가지고 계산대... 3 로제로 2008.11.21 2264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