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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온 누리에 평화

 

  공부들 하시느라 어려웠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잊혀졌던 그 반대의 옛 일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동안 과외를 했지요.

너나없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엄마는 제가 원하는 거면 다 해주실 정도로

뒷바라지를 잘해 주셨거던요.  아마도 그때 과외를 하지 않았다면 제 성적이 그렇게 상위권에 들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과외 선생님이 어찌나 요점 정리를 잘 프린트해서 주셨던지...아주 쏙쏙 머리에 잘 들어와 재미가 있었고,

한 10명 정도의 과외 그룹 맴버중에서 저는 늘 1등 자리를 지켜, 선생님 편에서도 제가 늘 자랑스런

제자였다는 것을 느끼셨을 테지요.

 

  그렇게 저는 당시 서울시 입확률 중에서도 가장 높았던 '덕수중학교'에 1/4의 경쟁률을 뚫고 

그것도 아주 상위 성적으로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저는 원래 무어든 잘 먹지를 않고 소식하는 편이어서

한때는 "영양실조"라는 진단이 나와 '원기소'라는 영양제를 복용하기도 했죠.

얼마나 덩치가 작았던지, 중학교 입학 당시 학교에서 준 커다란 국어사전을 하학길에 들고 오는데,

제가 생각해도 국어사전이 저보다 더 큰 것 같은...그렇게 낑낑대며 겨우 들고 집으로 왔던 자신의

왜소한 자화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으니...!

  훗날 엄마로부터 가끔,  "예야, 왜 난 너에게 그토록 좋아하던 제과점 빵같은 걸 가끔 사 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겨드리는 데만 신경을 썼단다." 라면서 후회의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엄마, 괜찮아요.  대신 할머니가 절 끔찍히도 잘 해 주셨잖아요."        

 

  그런 어린시절에 비하면 비록 여전히 소식이지만, 가리는 것 없이 얼마나 잘 먹고 지내는지 

제 자신이 대견스러운 겁니다.   

 

  아, '만주벌판'이란 여러분의 쓰거운 체험과는 달리, 동작동에서 흑석 2동으로 이사한 동네가

바로 중앙대학교 옆이요 상도동 고개로 넘어가기 바로 전에 있던 기와집이었지요.  그게 초교 4학년 무렵이었고, 어느 날 막내 삼촌의 심부름으로 아랫 동네의 만화가계에서 여러 권의 만화책을 빌려 왔죠.  그 중에

'복수의 칼'이란 제목의 만화를 신파극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이후 돈만 생기면 쪼르르 만화방으로 달려가는 재미를 쏠쏠히 붙혔답니다.

  "할머니, 만화...!"하면, 금새 눈치를 채시곤 두 말씀 없이 쌈지돈을 꺼내주시곤 했으니,

그렇게 만화는 곧 상상력을 잘 길러준 제 어린시절 정서의 큰 몫이었습니다. 

  제가 유독 여행을 잘 할 수 있고 호기심이 많은 근간도 만화에서 길러진 것이라면 좀 과언일런가요?

 

  또 하나 제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황량했던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 길'!

  저는 그 길을 떠올리면, 마치 산적이라도 나오거나 서낭당이라도 있어야 할  법한 인적이 매우 드믄

비포장 도로였지요.  아마도 긴 세월 동안 별로 아주 드믈게 흑석동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어서

자못 그 길을 넘노라면 잡초조차도 자라기 싫은 황량함에 지신 밟듯 가야하는 매우 한적한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곤 했죠.  그런 고갯길을 동재기 시절, 몸에 탈이 나면 할머니와 함께 '이화약방'이라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넘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엘 가면 남바위 쓰신 할머니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나실 둣 하답니다.   

 

  중대 옆 동네에서(초교 4학년 때) 할머니는 저희 집 최초로 '허 마리아'란 본명으로 영세를 하셨지요.

  매일 새벽 미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를 쫒아 그 추운 엄동설한에도 성당엘 가면- 당시 가난했던

시절이라 성당에 어디 난방을 했나요?, 유독 손발을 시려하는 저였지만 한결같이 할머니 꽁무니를 쫒아

다녔으니, 그 기도의 염력이 지금의 생활에도 변함없이 생기는 거지요. 

  그런 은총의 고리를 주신 하느님과 할머니께 더없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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