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자비
정동에서 현충원까지 지하철로 고작 30분 거리, 저는 틈만 나면 현충원으로 달려가 걷곤 합니다.
서울 시내의 교통망이 얼마나 편리하고 잘 조성되어 있는지!...런던, 파리나 뉴욕의 지하철만 하더라도 매우 오래 전에 건설되어, 쾌적한 서울의 지하철망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되어 있지요. 얼마 전 '인간극장'에 출연한 덴마크 사람이 "서울의 지하철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찬탄할만큼 가히 자랑할 만한 수준입니다.
현충원만큼 나무가 많고 잘 조성된 곳은, 거대한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인근의 인왕산이나 북한산의 예를 들면, 복잡다단한 서울 중심지에 인근해 있어 아무래도 공해에 찌들린 나무들 모습이거든요. 그러나 동작동 현충원의 위치는, 앞으로 시원한 한강이 흐르고 있어 공기가 잘 정화되고, 현충원을 감싸고 휘둘러 있는 낮은 산봉우리들과 공작봉 넘어로 관악산과 청계산, 우면산이 멀지않아 얼핏 보아도 오염이 안된 명당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제는 현충원 정문에서 오른 쪽 길을 따라 지장사 바로 아래서부터 오르막 숲길을 올랐습니다. 자주 걷는 길은 아니었지만, 조금 오르다보니 흑석동으로 넘어가는 성곽 쪽문이 나왔고, 흠뻑 땀으로 범벅이 된 얼마 후엔 '달마사'란 아름다운 절에 다다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그런 위치에 '달마사'란 절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는데,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잘 바라볼 수 있고 아기자기한 탑과 부처님상이 많은 가히 손색없는 한국의 고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경주의 다보탑 모상을 닮은 작은 탑에 매료되어 사진 한 방, "찰칵!"
사찰을 끼고 계속 계단길을 오르니, 숭실대 쪽 이정표가 보였고 현충원 성곽을 계속 따른 내려막 길 얼마 후엔 다시 현충원내 '지장사' 쪽이었습니다.
'지장사'는 제 어릴적 '화장사'란 작은 절이었죠. 거기 대웅정 앞 스님들이 거하시는 툇마루는 걸터앉은 채 쉬어가기 아주 좋은 곳이었고, 바로 앞 보리수 나무엔 염주를 꾀는 열매가 참으로 많이 달리곤 하여 부처님이 정좌하여 깨달으셨다는 그런 걸 상기시키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화장사'는 흑석동 '은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단골 소풍 장소였구요. 김밥과 사이다의 단출한 먹거리 만으로도 한껏 들떴던 그런 기쁨이었고, 멀고 어린 걸음이라 모처럼 할아버지가 대동해 주셨던 그런 기억이 지금도 삼삼!
'화장사(華藏寺)'란 절 이름이 '조계종 호국 지장사(地藏寺)'로 바뀐 것은, 아마도 가뜩이나 구국 영령들을 모신 곳에 관련하여 시신을 태우는 화장(火葬)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였기 때문이었을 꺼라는 제의 사견...^^ 어쨌던 그 초라하기 짝이 없어 보이던 그 화장사도 수십년 세월이 지난 요즘엔 부속 절 건물이 꽤나 많아진 깨끗한 '지장사'로 거듭 나 있는 겁니다.
절터를 시원으로한 샘물이 차츰 모아져 현충원 전체의 중심부로 조잘조잘 흘러내리는 개여울은, 저의 어렸을 적 추억이 가장 많이 서려진 곳- 거기엔 깨꼬 아이들의 알몸 물장난 소리가 늘 있었고, 붕어, 미꾸라지, 쏘가리, 게,...같은 동무들이 늘상 잡혀 고무신이나 운동화 짝에 물과 함께 넣고는 시간가는 줄 모르게 들여다 보는 재미가 참으로 쏠쏠했습니다. 한강에 거의 인접한 개울 하류엔 작은 모래밭이 있어 방과 후 들러 놀기에 여간 좋은 곳이 아니었고, 그 속 진흙뻘로는 솥단지며 탱크...등을 만들어 신명나 했었지요.
지금은 무수한 구국 영령들이 모셔져있는 거룩한 장소로 변했고, 수십년 아람들이 나무들로 잘 조성된 지역으로 바뀌어져, 그곳엘 가면 거룩해서 기도와 묵상이 절로 되어지는 그런 곳이랍니다. 또한 신선한 바람과 공기, 나무와 풀들, 온갖 새들이 깃들이는 쾌적한 곳은...예전엔 몇 개의 평온한 마을로 이뤄져 있었고, 철따라 여름이면 은은한 여치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던 곳, 산딸기의 한옴큼 달콤함이나 우리 집 대문 옆 빠알간 앵도가 익을 철이면 우리만 먹기 아쉬워 한 대접 따다가 아랫 집 비숫한 또래의 계집아이 경례에게 부끄러워하며 건네주던... 어김없이 하이얀 나비가 노닐던 노오란 장다리 꽃과 술래잡기에 그만이던 보리밭 깜부기와 함께 주변의 논과 밭 사이로 어린시절이 오버랲되어 또 다른 신성함이 다가오는 그런 곳!
요즘같은 겨울이 오면 혹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콧물을 흘리며 동무들과 썰매지치기나 팽이치기에 여념이 없었고, 정월 대보름 무렵에 연날리기나 깡통 돌리는 불놀이는 정말 그 시절의 신명나는 놀이들이었습니다.
현충원엘 가면, 즐비한 고층 아파트 물결로 넘처나는 이웃 지역과는 전혀 다르게, 비록 시골스런 옛 동무들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대로의 땅 위에 성(聖)스러움을 고이 간직한 채, 더불어 마음과 영(靈)에 되살아 꼼실거리는 옛 추억들...!!! 그곳엘 가면 촌노의 주름지신 할머니, 그 환하신 웃음을 마주할 것만 같습니다. 새까만 비로도 치마에 가르마타시고 쪽지신 단아한 엄마가 금방이라도 팔을 벌리며 달려오실 것만 같은 것 있죠.
때로는 현충원의 무수한 비명을 보면서 인생고와 무상을 느끼며,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고(人生何處來 死向何處去)?'라며 짐짓 도가적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푸른 하늘 떠가는 흰구름을 보며 '구름처럼 떠다니며 살다가 구름처럼 스러져 없어져 버리는 것(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라고 풍류를 읊어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하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확실함에, 현충원이란 장(場)은 세상에 와서 소풍처럼 노닐던 더없이 아름다운 추억 마당이었고 예쁜 구름처럼 떠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은총의 장이 아닐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