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선
"얘(게)야, 어디라고 겁도 없이 땡볕에 여기 나와 있는 거니?"
해녀 아줌마, 할머니들과 헤어진 직후 화순이라는 마을을 향해 땡볕 속 해변가 차도를 따라 걷던 중이었다. 대로 포장도로에서 손바닥보다 좀 큰 게와 만났다.
바다와는 제법 멀리 떨어진 곳까지, 게다가 "차에 치면 어쩔려고 그렇듯 나와 있을꼬...?" 안스러움에 게에게 말을 건네니, 약간 붉은 색을 띈 그 커단 집게를 쫙 벌리며 자못 방어 자세인 거다. 아마도 자신을 해치려는 존재로 여겼나보다. 워낙 덩치가 큰 녀석이라 집게 발에 물릴까봐 등산용 지팡이로 건드려 바다 쪽으로 밀어넣으려 했지만, 더욱 화를 내는 자세로 꼼짝하지 않는 그 자세가 매우 재밋고 흥미로왔다.
"땡볕이건 찻길이건 내 맘인디...갈 길이나 갈 것이지 왜 시비를 건다요?"
"얘야, 내 널 잡아먹으려 이러는 거 아니니 어여 네 집 저 바다로 들어가거라, 잉!" 랬더니,
그 왕망울 같은 눈을 굴리며 공격 자세이던 집게 발을 금방 풀으며 온순한 자세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바다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
"암, 그래야지...! 잘 가그레이...다시는 차도로 나오지 말고...쌩쌩 달리는 차에 치이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게와 헤어지고 갈 길을 재촉하니, 참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랬다. 새벽녘 깅바닥에 나와있는 지렁이들을 수없이 풀섶으로 넣어주거나 간혹 어미와 떨어져 길바닥에
나앉은 새새끼를 잘 보살펴준 적은 있어도, 바다 게와의 이런 해후는 처음이었다.
* * *
족제비를 만난 건 매일 살다시피하는 정원에서였다.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작년 텃밭에서 내 앞을 여유만만히 지나가는 녀석을 목격해,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었다.
밖으로 나 있는 광 앞에, 직경 15Cm 크기로 사이가 제법 떨어진 물받이 홈통이 있다. 그 홈통에 머리를 쏘옥 내밀고는 빤히 바라보는 거였다.
"어...? 너 작년에 본 그 족제비 아니니? 오랫만이다. 그런데 참, 귀엽게 생겼구나! 그래 잘 지냈니?"
"저는요, 이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자주 뵈어 오랬만이 아니거든요. 근데 짐 뭐하셔요?"
"보다시피 고춧대를 찾고있거든..."
그러는 찰라 홈통 속으로 머리를 감추었다가, 다시 나타내어 보이더니, 이러는 거였다.
"아저씨, 저 옆 소나무 가지 속에 직박구리가 둥지를 틀어놓고 요즘 새끼를 깐 것 보셨나요?"
"엉-! 알고있다마다. 아침이면 어미들이 먹을 것 물어나르느라 몹씨 분주하더구나. 그건 그렇고 너
저 녀석들 절대 건드리지 말그라, 알았제?
"아휴, 아저씨두!...제가 쥐나 잡아먹지 저 높은 곳엘 어케 올라가나요? 길고양이면 모를까...?"
그러더니 다시 머리를 감추었다. 혹시나 해 휘파람을 불어 다시 불러 보았다.
세번째로 고 귀여운 머리를 또 내밀고는, "왜요...?
"기념으로 널 사진에 담으면 좋겠구만, 기다릴 수 있겠니?"
"전 지금 바쁘거든요. 직박구리만 새끼가 있는 게 아니라, 저도 아이들이 있거든요. 갸들 키우느라 한가할 새가 없는 거지요. 걍 빠이빠이할게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