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4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T 온 누리에 평화

 

  공부들 하시느라 어려웠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니,

잊혀졌던 그 반대의 옛 일들이 하나 둘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동안 과외를 했지요.

너나없이 넉넉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엄마는 제가 원하는 거면 다 해주실 정도로

뒷바라지를 잘해 주셨거던요.  아마도 그때 과외를 하지 않았다면 제 성적이 그렇게 상위권에 들지는

못했으리라 봅니다.  

 

  과외 선생님이 어찌나 요점 정리를 잘 프린트해서 주셨던지...아주 쏙쏙 머리에 잘 들어와 재미가 있었고,

한 10명 정도의 과외 그룹 맴버중에서 저는 늘 1등 자리를 지켜, 선생님 편에서도 제가 늘 자랑스런

제자였다는 것을 느끼셨을 테지요.

 

  그렇게 저는 당시 서울시 입확률 중에서도 가장 높았던 '덕수중학교'에 1/4의 경쟁률을 뚫고 

그것도 아주 상위 성적으로 무난하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나 지금이나 저는 원래 무어든 잘 먹지를 않고 소식하는 편이어서

한때는 "영양실조"라는 진단이 나와 '원기소'라는 영양제를 복용하기도 했죠.

얼마나 덩치가 작았던지, 중학교 입학 당시 학교에서 준 커다란 국어사전을 하학길에 들고 오는데,

제가 생각해도 국어사전이 저보다 더 큰 것 같은...그렇게 낑낑대며 겨우 들고 집으로 왔던 자신의

왜소한 자화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으니...!

  훗날 엄마로부터 가끔,  "예야, 왜 난 너에게 그토록 좋아하던 제과점 빵같은 걸 가끔 사 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챙겨드리는 데만 신경을 썼단다." 라면서 후회의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엄마, 괜찮아요.  대신 할머니가 절 끔찍히도 잘 해 주셨잖아요."        

 

  그런 어린시절에 비하면 비록 여전히 소식이지만, 가리는 것 없이 얼마나 잘 먹고 지내는지 

제 자신이 대견스러운 겁니다.   

 

  아, '만주벌판'이란 여러분의 쓰거운 체험과는 달리, 동작동에서 흑석 2동으로 이사한 동네가

바로 중앙대학교 옆이요 상도동 고개로 넘어가기 바로 전에 있던 기와집이었지요.  그게 초교 4학년 무렵이었고, 어느 날 막내 삼촌의 심부름으로 아랫 동네의 만화가계에서 여러 권의 만화책을 빌려 왔죠.  그 중에

'복수의 칼'이란 제목의 만화를 신파극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이후 돈만 생기면 쪼르르 만화방으로 달려가는 재미를 쏠쏠히 붙혔답니다.

  "할머니, 만화...!"하면, 금새 눈치를 채시곤 두 말씀 없이 쌈지돈을 꺼내주시곤 했으니,

그렇게 만화는 곧 상상력을 잘 길러준 제 어린시절 정서의 큰 몫이었습니다. 

  제가 유독 여행을 잘 할 수 있고 호기심이 많은 근간도 만화에서 길러진 것이라면 좀 과언일런가요?

 

  또 하나 제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황량했던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 길'!

  저는 그 길을 떠올리면, 마치 산적이라도 나오거나 서낭당이라도 있어야 할  법한 인적이 매우 드믄

비포장 도로였지요.  아마도 긴 세월 동안 별로 아주 드믈게 흑석동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어서

자못 그 길을 넘노라면 잡초조차도 자라기 싫은 황량함에 지신 밟듯 가야하는 매우 한적한 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곤 했죠.  그런 고갯길을 동재기 시절, 몸에 탈이 나면 할머니와 함께 '이화약방'이라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넘은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곳엘 가면 남바위 쓰신 할머니의 모습이 선연히

나타나실 둣 하답니다.   

 

  중대 옆 동네에서(초교 4학년 때) 할머니는 저희 집 최초로 '허 마리아'란 본명으로 영세를 하셨지요.

  매일 새벽 미사를 마다하지 않으셨던 할머니를 쫒아 그 추운 엄동설한에도 성당엘 가면- 당시 가난했던

시절이라 성당에 어디 난방을 했나요?, 유독 손발을 시려하는 저였지만 한결같이 할머니 꽁무니를 쫒아

다녔으니, 그 기도의 염력이 지금의 생활에도 변함없이 생기는 거지요. 

  그런 은총의 고리를 주신 하느님과 할머니께 더없이 감사!!!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7 화장실 배수관 이것은... 인내 화장실 배수관 파이프를 구입하는데 정확히 3시간 하고도 20분이 걸렸다.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선정한 다음, 1차 영수증 발급을 받고 그 영수증을 가지고 계산대... 3 로제로 2008.11.21 2266
506 형과의 만남 T 평화가 강물처럼...   "여기 이 사진의 작은 한옥식 대문 자리가 바로 동작동 현충원의 지금 입구란다. 그 오른쪽이 '이수교'로 넘어가기 전 '동재기 나루... 김맛세오 2013.07.01 2199
505 현실과 진배없는 나의 꿈 T 평와와 선 나는 평소 꿈을 잘 꾸는 편입니다.  꿈은 대부분 현실이 아니지만, 생생한 꿈을 꾸고 일어난 날에는, 그 꿈의 내용이 하도 현실과 같아 다른 이들에... 김맛세오 2020.09.27 786
504 현란한 꽃의 반란 T 평화/ 선 예전에 네델란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튜립이나 안네의 일기, 또는 램블란트, 고흐로 유명한 작은 나라면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들이 많은... 1 김맛세오 2012.05.30 2626
503 현란한 꽃의 반란 T 평화/ 선 예전에 네델란드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튜립이나 안네의 일기, 또는 램블란트, 고흐로 유명한 작은 나라면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들이 많은... 1 김맛세오 2012.05.30 2960
502 행복한 생일 타령 T 온 누리에 평화 형(수)한테서 생일 전 전화가 왔었습니다.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역시 사랑하는 큰이모도 똑같은 전화를 주셨지요. 그러나 지... 김맛세오 2012.10.24 3329
501 행복한 그리움들 T 평화와 선. 일을 하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온갖 그리움들이 모락모락 피어 올라, 파아란 하늘에 묻어나는 얼굴들... 할머니,할아버지,엄마,한동네에 사시던 ... 2006.01.26 3182
500 행복한 그리움 T 평화/선 소나무들은 잘 있을까. 선경을 방불케 하는 '십자가의 길' 주변 사물들은 여전할까. 심심찮게 뾰로롱 나무와 나무 사이 그네를 타는 듯한...작은 새무... 4 2009.12.12 2555
499 행복의 조건...? T 평화와 선   어제 저희 공동체에서는 1박 2일의 피정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손들을 놓고 모처럼 그렇듯 자연의 품 속에서 침잠해 보는 시... 3 김맛세오 2013.06.26 2690
498 행복- 공감 T 온 누리에 평화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만족도가 55%랍니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하면 낙제점이란 건 뉘나 알고 있지요. 걸핏하면 "세계... 김맛세오 2013.06.17 2361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