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07.12.12 11:03

회상- 엄마와 기차

조회 수 246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T 평화와 선.

기차는 그리움이다.
특히 석탄이나 디젤로 움직였던
"칙칙폭폭" 긴 연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내 어린시절의 기차는
요즘에는 느낄 수 없는
향수나 미지의 세상을 향한 아련함을 실어 왔다.

유년 시절
외가집, 의정부에서도 외진 수락산 자락 밑,
동막골이란 마을로 가려면 꼭 기차를 타야했다.
(그 때는 뻐스가 없었나보다)
서울역에선지 청량리역에선지 출발역에 대한 기억에 없지만,
엄마와 내가 기차에 몸을 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차창 넘어로 보이는 넓은 세상- 수유리, 도봉산 등지였으리-은
지금처럼 조밀한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
민가가 거의 없는 평범한 시골 전경이었음에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으니,
아마도 엄마와 함께 어쩌다 외가집엘 가는 설레임 때문이었으리.
그리고 거기엘 가면,
날 귀애해 주시는 외할아버지,할머니며 외삼촌들이 계셨고
뒷 곁 나즈막한 산으로 가면 밤나무가 많아
때로는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알암을 줍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엄마가 간혹 나를 데리고 어델 가시려면,
평소와는 달리 꼭두새벽부터 치장을 해야했다.
세수를 빡빡시키시고- 그럴 때마다 대조적으로 살살 씻겨주시는
할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은 그렇게 좋을수가!- 얼굴과 손에
로숀을 잔뜩 발라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로숀의 그 향긋함이 싫지 않았음에도
나는 로숀 바르는 걸 몹시 싫어했다.
로숀하면 엄마의 외출 표시 암시이니까,
정작 엄마의 외출이 달갑지 않았던 게다.

엄마와 함께
의정부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호기심 가득찬 치기어린 소년에겐
온 세상이 다 신기하기만 했으니,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행복 자체였다.

그런데 요즘이면 1시간 남짓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그땐 왜 그리 기차 시간이 길었던지...
마냥이어서, 족히 2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의정부가 가까와지면
도봉산 아래 넓다란 미군부대가 보였고,
때로는 무얼 잘못했는지, 산 쪽으로 쫒기는 이가 보이고
그 뒤를 총을 쏘아대며 쫒아가는 미군!
그럴 땐 어린 맘에도 아무리 잘못했어도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양코배기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어
적개심마져 솔솔 일어나는 거였다.

의정부역에서 내려서도
외가집에 닿으려면 제법 큰 냇물, 징검다리를 건너
족히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외가 동네가 한 눈에 들어 와선지 마냥 신나는 걸음걸이였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깍깍...!" 짖어대는 까치 소리.
낯선 손님에 대한 상큼한 예우소리가 그리 싫지는 않았다.

엄마와 기차-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실을 가능케하는 아름다운 회상들.
곱디 고운 엄마의 모습- 우리 엄마가 예뻤다는 걸 그땐 전혀 몰랐는데
세월이 훨씬 지나 사진을 보니 '와-! 엄마가 참 예뻤다'.
그런 엄마의 나들이 옷 중에 유난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까만 비로도 치마였다.
비로도의 보드란 촉감이 내 조막손에 자근자근 느껴지면서
엄마와 내가 동리에 들어서면,
우선 엄마는 여러 어른들을 만나 그동안의 소식을 들으시며
때로는 뉘 돌아가셨는지 엄마의 눈에선
금방 닭똥같은 눈물 방울을 뚝뚝 떨어졌고,
그런 엄마의 슬픈 모습을 보는 건
참으로 싫었고 나도 맘 속으로 울음이 나왔다.

그랬다.
기쁨인 듯 슬픔이련 듯
하얗게 긴 하품을 토하며 달리는 기차는
어쩌면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내달리는
한 켠 내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하늘 엄마가 보고프면
영락없이 기차의 기적 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7 <공지> 생활단상 게시판 사용 이곳은 생활 단상 게시판입니다. 이름은 거창하나, 특별한 목적을 지닌 게시판은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이곳에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 ... 관리형제 2006.01.19 4544
516 한사랑공동체 윤석찬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신문기사 평화와 선 행려자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작은형제회 윤석찬 프란치스코 형제님의 기사를 나눕니다. 기사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file 홈지기 2013.01.30 4437
515 너무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에 너무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에 시간을 보고 자야겠다 싶었습니다. 항상 다음 날이 걱정이기에 해야 할 의무처럼 침대에 누워 스피노자의 사과나무처럼 자명종을... 1 honorio 2006.01.23 4055
514 상호적 관계 T 평화/ 선 제 방엔 늘 작은 화분의 꽃이 있어 그 자라고 피고지는 화초에 자연스레 물을 주고 때로는 거름을 주기도 하며 수시로 사람에게처럼 대화를 ... 김맛세오 2013.01.02 3946
513 소철 이야기 T 평화/ 선 제 방 창가엔 '사랑초'와 '(종류 이름?)키작은 란', 그리고 작은 '소철'- 세 종류가 있어 모두가 키우기에 그리 까다롭지 않답니다. 세 종... 김맛세오 2013.03.25 3906
512 예루살렘의 안베다 신부님 T 평화를 빌며. 예루살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안신부님! 매년 부활과 성탄 즈음엔 카드를 보내드렸고 또 신부님께서도 저를 위해 특별히 미사 ... 1 김맛세오 2012.12.15 3899
511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 T 온 누리에 평화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10여년을 살았던 흑석동보다는 초교 3학년 까지의 어린 시절을 보낸 지금의 '현충원' 자리를 단연 내 고향이라 하겠... 김맛세오 2012.07.03 3825
510 게으름의 변명 T 평화를 빌며... 혼인이 많은 주말이면 늘상 수도원 정원으로 와 2-3일씩 묵어가는 행려자가 있습니다. 30대 중반쯤으로 겉보기엔 체격이 아주 건장해 보이는 사... 김맛세오 2012.06.27 3786
509 내 마음은 물이 가득 차 있는 깡통인가?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제일 두드러진 점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생각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생각하느 ㄴ갈대... 김요아킴 2006.01.24 3742
508 세째 외삼촌의 칠순 잔치 T 평화가 강물처럼. 지난 토요일, 분당엘 다녀왔다. 평소 늘 가까이 지내온 외삼촌의 칠순 잔치에 초대받아... 몇 가족만 초대하신다기에 초촐한 자리겠구나 여겼... 2008.12.16 3699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