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2007.01.31 17:39

한 겨울 이맘때면...

조회 수 2370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T 평화가 강물같이.

나 어릴 땐,
동작동에서 바라다 본 한강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흘러가버린 과거를 기억하는 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허구일런지도 모른다.
기억이 과거의 실체가 아니라 현재의 의식 작용일 뿐일지라도
기억할 수 있는 현재라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함으로 다가온다.
상실된 과거로만 치부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눈을 감는 날까지
그러한 좋은 추억들이 있기에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무수한 현재의 시간도
매우 소중하게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은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결코 주어질 수 없기에
어쩌면 셋은 나 라는 존재 위에 하나이기 때문이리.

* * *

난 겨울만 되면 추위를 몹시 탔지만
가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꽝꽝 얼어버린 한강을 건너 백사장엘 가곤 했었는데
의식이 있기 시작한 어린 눈에
그런 볼거리는 그야말로 놀라운 신천지였다.
(당시에는 한강이 3/1정도, 백사장이 용산 쪽으로 3/2정도는
차지했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부터 그 모래들을 건축 자제로
쓰기 위해 퍼가버렸기에 그 넓던 백사장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던 것. 그 많던 한강의 모래알들은 시간과 역사 속에 묻혀버린 그리움의 점점들...일까)
그러면 어김없이 강태공들이
동그랗게 아니면 커다란 직사각형으로 얼음을 깨고
그 속에 낙싯대를 드리운 모습이 눈에 띄었다.
때로는 고기 망태에 속살까지 드러난 투명한 고기가 잡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빙어였으리라.
어떤 낚시꾼은 아예 옆에다 초고치장을 준비해 놓고는
잡히는대로 맘껏 산채로 찍어먹는 모습도 보였고,
할아버지께도 권하는 인심 좋은 낚시꾼도 있었다.

한편 종종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다가
그 구멍난 낙시터에 퐁당 빠져버려
시체도 못찾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니,
낚시터는 겨울의 위험천만한 함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작동 집에서 바라보이는
잊을 수 없는 정경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저 멀리 용산이나 이촌동, 동빙고 쪽에서
한강을 끼고 내달리는 기차였다.
기차는 달리면서 늘 아련한 연기를 뿜어내며
"칙칙폭폭, 웩웩...!!!" - 아마도 석탄이나 증기 기관차였나 보다-
소리를 질러 대었는데,
그 소리는 내 의식 속에 가장 깊이 자리한
향수의 소리만 같아 지금도 가끔 기차가 지나가는
영상이 뇌리를 스칠 때마다 꿈많던 소년의 시절로 달려간다.

또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겨울 이맘때면 으례히 한강 위로 떼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
기러기 떼가 날아갈라치면 어쩌면 그리도 멋진 열을
질서정연하게 지으며 날아갈 수 있는지,
뉘 일부러 비행 연습을 시켰을리도 없을 터인 즉,
지금도 참으로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다.
"저기 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주세요..."라는 노랫말처럼
기러기가 날아갈 때면 으례히 우체부와 소식을 떠오리곤 했다.

내 추억은 의식과 더불어
내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뒷 짐을 짓고 걸어 가신다.
때로는 이 손자의 조막손을 지그시 잡으신 채,
따스한 체온과 함께 두텁게 얼어버린 한강 위를
걸으시며 온갖 겨울 풍물을 구경시켜 주신 내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불연듯 그러워지는 겨울,
사철중 제일 싫은 겨울이면서도
내 곁엔 늘 손자 사랑이 가득하신 따뜻한 할아버지가 계시어
추워도 겨울은 늘 가슴이 따뜻해지는 계절.
  • Agnes 2007.02.04 08:30
    강 건너 사셨던분의 추억 잘 읽고 옛일 생각하며 어릴때 내 자신의 모습도 떠올려보고 갑니다.
  • 박필 2007.02.04 08:30
    음...나이가 드셨네요. 옛날 추억을 먹고 사시니...ㅎㅎ

생활나눔

일상의 삶의 체험을 나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7 <공지> 생활단상 게시판 사용 이곳은 생활 단상 게시판입니다. 이름은 거창하나, 특별한 목적을 지닌 게시판은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나누고픈 이야기들을 이곳에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 ... 관리형제 2006.01.19 4544
486 <서로 사랑하여라> &lt;서로 사랑하여라&gt;&quot;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quot;(요한 15,12). 탓 없이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 당하신 그리스도! 죄가 없으면서도 한... 고파울로 2024.05.05 37
485 <재의 수요일> &lt;재의 수요일&gt;&quot;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quot;(2,13).          1이마에 재를 받으며마음에도 받는다.부드럽고 고운 재를 얹으며말씀의 재로내 마음의 바리사이... 고파울로 2024.02.14 75
484 T 평화와 선 「평화와 선'에 관하여...」  엄격한 규율에 맞추어 십자가를 따르는 기존의 오래 된 엄격한 수도회의 수도자들에 비해, 형제애를 바탕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았던... 김맛세오 2020.10.04 976
483 [re] 깊어가는 가을 산 http://blog.daum.net/god-nim맛세오 수사님, 저는 수사님께서 제가 정동회관에서 결혼할 때 사회를 봐 주셨던 사람입니다. 벌써 28 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그 ... 아녜스 2009.10.24 1673
482 가슴 저미게 하는 이 가을!!! T 평화/선 샛노란 국화가 성거산의 가을을 알리는 신호탄인 양, 선배님들 묘지엔 구절초와 용담이 내일이면 꽃망울을 터뜨릴 새라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는 시간... 3 2009.09.16 2267
481 가슴으로 키우는 '보나' T 평화가 함께...   보통 평범하다고 하는 만남이나 이야기들이 저에겐 늘 범상치 않은 내용으로 다가 오니, 아마도 그만큼 매사 민감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1 김맛세오 2013.08.27 2430
480 가을 야생화- 용담(龍膽) T 평화가 하늘처럼. 며칠 전까지 선배님들 무덤가에 구절초가 물결처럼 피어나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구절초도 여러 종류려니- 예 피어난 구절초를 내 나름대로 '... 2007.10.12 2393
479 가을 하늘과 구름 T 온 누리에 평화 조석으로 선선하니 완연한 가을입니다. 간밤에 쏟아진 비로 덕수궁 돌담길에 떨어진 무수한 은행들을 보니 어김없는 결실의 계절임을.... 김맛세오 2012.10.24 3001
478 가을...! T 온 누리에 평화 휘영청 달이 무척 밝은 걸 보니 '한가위' 명절이 지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나 보다. 저렇듯 온 누리에 형광등처럼 달 빛이 밝은 날 밤에는, 한... 3 2010.10.23 2569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2 Next ›
/ 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