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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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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로 드러나는 신앙

 

예수님의 말씀에서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것은 신앙을 판단하는 매우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믿는다고 말하는가보다, 그 믿음이 관계 안에서 어떤 열매로 나타나는가입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마태 7,16-20; 루카 6,43-45). 여기서 나무는 우리의 마음과 존재, 열매는 그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행동, 그리고 관계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앞서 묵상한 네 눈의 들보와 깊이 연결됩니다. 내 안에 교만이 있으면 판단이라는 열매가 맺히고, 두려움이 있으면 통제라는 열매가 맺히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크면 비교와 경쟁이라는 열매가 나타납니다. 반대로 내 안에 하느님의 자비가 깊이 자리 잡으면 기다림과 용서가 나오고, 겸손이 자리 잡으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이 자리 잡으면 상대방을 이용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고 살리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열매는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랑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 말이 계속 상대를 위축시키고 상처 입히고 관계를 단절시킨다면, 그 열매를 바라보며 내 사랑의 방식 안에 무엇이 섞여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칸의 회개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변화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많은 기도를 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한때 역겨워했던 나환자를 향해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변하자 사람과의 관계가 변했습니다. 내면의 회개가 관계의 열매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현주소를 알고 싶다면 아주 단순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를 만난 사람은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가, 아니면 위축되는가? 내 말은 사람을 살리는가, 판단하고 규정하는가?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이해하려 하는가, 이기려고 하는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빛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는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비로울 수 있는가? 상처받았을 때 보복보다 용서를 향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가? 결국 좋은 나무가 된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뿌리를 어디에 내리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릴수록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을 지나 관계 속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말씀을 이렇게 바꾸어 묵상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내 기도의 길이보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 만나는 사람에게서 드러납니다. 기도의 열매가 자비이고, 가난의 열매가 나눔이며, 겸손의 열매가 받아들임이고, 형제성의 열매가 환대이며, 사랑의 열매가 용서라면, 마침내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참된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가 증언합니다. 나무는 자신이 좋은 나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말씀을 관계의 현장으로 가져오면, 좋은 열매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열매가 있기 전에 뿌리와 흙, 물과 햇빛, 가지치기와 기다림**이 있듯이 관계의 열매에도 긴 과정이 있습니다.

 

열매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

우리는 흔히 상대방의 행동이라는 열매부터 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하지?”, “왜 나를 무시하지?”, “왜 늘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열매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그 열매가 어디에서 자라났는가를 보게 합니다. 관계의 실제는 대개 이런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 내 해석 감정 욕구와 상처 선택 말과 행동 관계의 열매, 예를 들어 공동체 회의에서 내가 낸 의견을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봅시다. 사건 자체는 단순합니다. ‘내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즉시 해석합니다. “나를 무시하는구나.”

 

그 해석에서 서운함이 생기고, 서운함 밑에는 나를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으며, 더 깊은 곳에는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다음 단계에서 열매가 나옵니다. 말수가 줄어들고, 상대방에게 냉담해지고, 다른 자리에서 그 사람을 비판하거나 다음 회의에서 일부러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열매는 냉담과 판단이지만, 뿌리까지 내려가 보면 그곳에는 뜻밖에도 인정받고 싶은 가난한 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관계의 회개는 행동을 억지로 고치는 데서 시작하기보다 내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열매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상당히 친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 오래 살아가는 사람 앞에서는 숨겨진 나무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누군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내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이 나보다 인정받을 때,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데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을 때, 피곤한 순간에 누군가 부탁할 때가 그렇습니다. 바로 그때 내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기도할 때는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지적하는 순간 방어합니다. 형제애를 말하지만 마음에 맞지 않는 형제를 피합니다. 가난을 이야기하면서 내 자리와 권한은 쉽게 내려놓지 못합니다. 순종을 말하면서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편해집니다. 이것이 위선이라고 자신을 정죄할 일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가 나의 진실을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관계는 내가 얼마나 완성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시험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아직 복음화되지 않은 곳을 보여주는 거울이 됩니다.

 

갈등은 뿌리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평온할 때는 어떤 나무인지 잘 모릅니다. 바람이 불어야 뿌리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오해하는 사람,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 앞에서는 내 깊은 곳이 드러납니다. 그때 우리는 쉽게 상대방을 문제로 만듭니다. “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먼저 묻게 합니다. “지금 저 사람 때문에 내 안에서 무엇이 드러나고 있는가?”

 

화를 들여다보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질투를 들여다보면 비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지나친 간섭을 들여다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통제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계속 상대를 가르치려는 마음 안에는 내가 옳아야 한다는 집착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눈 속의 들보를 보는 순간입니다. 들보를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의 티끌을 고치기 전에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의 상태부터 살펴보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순간

관계의 열매를 바꾸는 중요한 지점은 감정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화날 수 있습니다. 서운할 수 있습니다. 질투할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감정 다음에 무엇을 선택하는가입니다. 누군가 나를 공격했을 때 즉시 공격으로 돌려줄 것인가, 잠시 멈출 것인가. 오해받았을 때 끝까지 나를 증명하려 할 것인가, 필요한 만큼 설명하고 놓아줄 것인가. 다른 사람이 칭찬받을 때 비교할 것인가, 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것인가. 누군가 실수했을 때 역시 저 사람은 안 돼라고 규정할 것인가, 다시 시작할 자리를 남겨줄 것인가. 바로 이 작은 선택들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프란치스칸 관계성에서는 더욱 구체적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회개의 열매는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가감이었습니다. 피하고 싶었던 나환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사건의 핵심은 프란치스코가 갑자기 나환자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혐오와 두려움보다 하느님의 사랑이 행동을 결정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나환자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이미 판단을 내려버린 사람, 내 방식과 너무 다른 사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칸 관계성은 바로 그 사람 앞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이 형제를 바꾸려 하는가, 아니면 받아들이려 하는가?” “나는 이 사람을 내 기준으로 소유하려 하는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바라보는가?” “나는 이 사람을 판단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선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여기에서 가난과 겸손과 형제성이 추상적인 덕목에서 실제 삶으로 내려옵니다. 가난은 내 뜻을 반드시 관철시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되고, 겸손은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간이 되며, 형제성은 그럼에도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는 충실함이 됩니다.

 

결국 열매는 이렇게 익어갑니다. 관계의 성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화를 내고 나서야 알아차립니다. “, 내가 또 내 옳음을 주장했구나.” 조금 성장하면 화를 내는 중간에 알아차립니다. “지금 내가 이기려고 하고 있구나.” 조금 더 깊어지면 말하기 직전에 알아차립니다. “잠깐, 이 말을 하면 형제를 살릴까, 상처 입힐까?” 그리고 은총이 더욱 깊어지면 상대방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집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가난한 사람이구나.” 바로 여기에서 자비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한 번도 화내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와 상처와 갈등을 통과하면서도 조금씩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건을 만납니다 감정이 일어납니다 내 안의 욕구와 상처를 봅니다 내 눈의 들보를 발견합니다 하느님 앞에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상대방을 다시 바라봅니다 사랑에 맞는 행동을 선택합니다 관계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가 기다림이고, 경청이고, 용서이고, 양보이고, 환대이고, 상대방이 나와 다를 자유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깊은 열매는 이것일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형제를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것. 그때 비로소 관계 안에서 복음이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열매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어떤 하느님이 살아 움직이고 계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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