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열린 하늘을 보는 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요한복음 151절로,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앞에서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향해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고백을 훨씬 더 깊은 신비로 이끄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이 말씀의 배경에는 창세기 28장의 **야곱의 사다리**가 있습니다. 야곱은 베텔에서 꿈을 꾸는데, 땅에서 하늘까지 닿은 층계 위로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봅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중요한 것은 장소입니다. 야곱에게는 베텔이라는 장소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장소를 당신 자신에게로 옮기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곧 예수님께서 새로운 베텔, 새로운 성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다리가 아니라 한 인격이 계십니다 이 말씀을 육화의 신비 안에서 바라보면 더욱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올라오라고 사다리를 내려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에는 인간의 상승보다 하느님의 내려오심이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높으신 분이 낮아지셨으며,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몸을 취하셨고, 거룩하신 분이 우리의 상처와 눈물과 실패가 있는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느님께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길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너희가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죽은 다음 하늘에 가면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쩌면 닫힌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삶에서 열린 하늘을 발견하는 삶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대로입니다. 공동체도 그대로이고, 함께 살아가는 형제도 그대로이며,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그대로이고, 반복되는 일과 피곤함과 갈등도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눈이 달라집니다. 관상의 눈이 열리면 평범했던 일상이 베텔이 됩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우리는 자꾸 하느님을 특별한 곳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화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바로 여기다. 네가 피하고 싶은 그 사람 안에, 네가 받아들이기 힘든 그 관계 안에,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되는 하루 안에,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주는 작은 손길 안에,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는 마음 안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 안에,하늘과 땅이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삶에서도 하늘은 그렇게 열렸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하늘이 열린 곳은 화려한 성당이나 황홀한 신비체험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환자를 만난 자리였습니다. 그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존재, 역겨움과 두려움을 느꼈던 그 사람에게 다가가 껴안았을 때, 그동안 닫혀 있던 세계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회심은 어쩌면 하늘이 열린 사건이면서 동시에 눈이 열린 사건이었습니다. 하늘이 닫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나환자가 하느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환자를 밀어내던 자기 자신이 만든 경계가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경계가 무너지자 프란치스코는 발견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거기에 계셨다는 것을. 그래서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가난과 겸손과 형제성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가난은 나를 비우는 것이며, 겸손은 타자가 내 삶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고, 형제성은 그렇게 열린 공간에서 서로를 통해 하느님을 발견하는 삶입니다. 결국 우리 자신도 열린 하늘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복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을 이어 주시는 분이라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삶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갈라진 사람들을 이어 주고,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밀려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 품어주고, 용서받은 사람이 다시 용서하는 사람이 될 때, 우리의 몸과 관계와 공동체 안에서도 작은 육화가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단순히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하늘이 열리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는 신앙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내가 하늘이 되는 것 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하늘이 열리도록 허용하는 것, 내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지나가도록 비켜서는 것, 내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하여 그에게 흘러가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묻는다면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하늘이 열리게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지도 모릅니다.

 

네가 사랑하는 바로 그곳에서 하늘이 열린다. 네가 내려가는 바로 그곳에서 하늘이 열린다. 네가 자신을 내어주는 바로 그곳에서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네가 형제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 너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열린 하늘은 어떤 장소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관계입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칸의 삶은 그 열린 하늘을 세상 한가운데에서 살아내는 것, 곧 내려가고, 내어주고, 받아들이고, 형제가 되어 줌으로써 우리 관계 안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육화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48 가을밤에 듣는 풀벌레들의 합창   가을밤에 듣는 풀벌레들의 합창   가을밤이 깊어지면 낮 동안 세상을 가득 채우던 말들이 하나둘 잠들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문 안으로 돌아가고, 산등성이 ...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8.25 5
» 열린 하늘을 보는 눈 열린 하늘을 보는 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update 이마르첼리노M 2026.08.24 21
1946 포르치운쿨라 전체의 마지막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전체의 마지막 이야기   포르치운쿨라는 형제들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숨어 있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세상으로 파견되기 위하여 다시 복... 이마르첼리노M 2026.08.24 20
1945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백과 삶 사이에서 바라보는 우리 믿음의 현주소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16 시몬... 이마르첼리노M 2026.08.23 22
1944 포르치운쿨라에서 드리는 작은자의 기도 포르치운쿨라에서 드리는 작은자의 기도   주님, 저희를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 주소서. 세상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안전한 성당과 공동체 안에만 머물려 했던 저... 1 이마르첼리노M 2026.08.22 29
1943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   사랑은 상대의 속도에 맞추어 걷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가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하여 걸음을... 이마르첼리노M 2026.08.22 21
1942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8월 21일 독서와 복음 묵상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   에제키엘 37장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이야기는 뼈들이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명... 이마르첼리노M 2026.08.21 27
1941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을 네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을 네 번째 이야기   프란치스코의 삶도 그가 모든 결과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제회가 미래에 어떻게 자랄지 알지 못했고, ... 이마르첼리노M 2026.08.20 33
1940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세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세 번째 이야기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형제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돌아봅니다. 더 많이 소유하는 대신 필요한 만큼... 이마르첼리노M 2026.08.19 52
1939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두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두 번째 이야기   작은 몫으로 충분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모든 가난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교회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8.17 45
1938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첫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세상 속으로 첫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에서 세상의 상처로 파견되는 작은 형제들 포르치운쿨라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숨어 있기 위하여... 이마르첼리노M 2026.08.16 76
1937 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여섯 번째 이야기 마지막 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여섯 번째 이야기 마지막   형제성은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낳는 모성적 신비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말씀을 받아 몸으로 낳으셨... 이마르첼리노M 2026.08.15 62
1936 용서하는 자비는 흘러가는 사랑입니다 2 용서하는 자비는 흘러가는 사랑입니다 2   용서하는 자비는 흐르도록 나에게 주신 선물 자비는 흘러가도록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샘물이 자기 자신을 위해 솟... 1 이마르첼리노M 2026.08.14 71
1935 용서하는 자비는 흘러가는 사랑입니다 1 용서하는 자비는 흘러가는 사랑입니다 1   용서받는 자비에서 용서하는 자비로 자비라는 말을 오래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안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이마르첼리노M 2026.08.13 80
1934 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 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다섯 번째 이야기   공동체는 일방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은총의 통로가 되는 관계입니다. 내... 이마르첼리노M 2026.08.12 77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0 Next ›
/ 13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