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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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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종 라우렌시오 형제를 떠나보내며

 

먼저 떠난 형제에게

 

형제라는 이름 아래 함께 해온 날들

그 긴 여정에서 형제를 떠 올리며

지난날들을 회상해 봅니다.

수련기를 마친 어느 날

휴가를 내어

형제와 나와 오바오로,

우린 광주 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탓지요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

글라라 수녀님들이 챙겨준

와인을 한 모금씩 하던 날

우린 마냥 즐거워했지요.

 

유기서원기를 보내던 날

역촌동 시립병원에 결핵병동을 찾아가

형제가 손수 만든 음식을 전해주면서

어려운 이들에 대한 형제의 따뜻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형제의 소임은 주로 경리와 주방 담당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

도시락과 반찬을 나누는 재가 복지의 현장에서

기쁨에 찬 모습으로 말없이 살아왔지요

 

삶의 신선한 감동들은

한적한 산골 마을의 아침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렌즈에 포착된 기억의 장면들 속에서

형제는 나에게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흘 전 형제와 카톡을 주고받은 것이

마지막 이별의 소식이 될 줄이야!

 

아직도 다 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포도송이처럼 무르익어

언젠가는 진한 포도주가 되어

서로의 잔을 채우려 하는데

형제가 없는 빈자리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먼저 떠난 형제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감의 충동 안에서

오랜 시간 견디어 낸 뒤에 찾아오는 기쁨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자기 목소리를 얻어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하는 이때,

형제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는 소식에

나는 글썽이는 눈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먼저 떠난 형제여!

우리에게 있어

춥고 암담한 자아를 영원히 맡겨 둘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상처 난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무너지려는 영혼을 감추지 않아도 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어놓아도 되는

아버지의 품이 있다는 것,

그것은 세월이 주는 가장 깊은 선물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데려가지만

참으로 소중한 것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망각과 상실의 아쉬움 속에서도

과정이 남긴 선들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과정은 우리를 가르쳤고,

과정은 우리를 단련했으며,

과정은 우리 안에 능력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얻어낸 깨달음들은

감동과 감격과 감탄의 흔적으로 남아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밝혀 줍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진정 찾았던 것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과정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을 사랑했습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순백의 도화지 위에

거침없이 삶의 진실을 써 내려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을은 저무는 계절이 아니라

열매가 익는 계절이며,

형제란

내 삶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함께 익어가며

관계 안에 흐르는

선한 포도주가 되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형제와 함께했던 날들이

그리움의 저편에서 손을 흔듭니다.

 

형제여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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