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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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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실재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우리 일상의 관계 안에서 이 말씀은 거창한 종교적 승리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회나 시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세상은 사랑보다 경쟁을, 존중보다 지배를, 신뢰보다 두려움을, 섬김보다 자기중심성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인간 내면의 흐름까지 포함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누군가를 굴복시키거나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 안에서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계산보다 신뢰를 선택하며, 지배보다 섬김을 선택하는 존재의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믿음은 교리만 동의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가장 구체적인 자리는 언제나 관계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특별한 기적 속에서만 하느님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오히려 가장 평범한 일상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실재가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 상처받았지만 다시 손을 내미는 용기, 억울함 속에서도 악의로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이미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현현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조급하게 만듭니다. 빨리 결과를 얻으라고 재촉하고, 사람을 효율과 성과로 판단하며, 약한 이들을 쉽게 밀어냅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른 속도로 살아갑니다. 믿음은 한 사람을 기다려 줄 줄 알고, 실패한 사람 안에서도 가능성을 바라보며, 관계가 깨어졌을 때 먼저 화해를 선택하게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성격의 온순함이 아닙니다.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어떤 사랑의 흐름이 내 안을 통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는 늘 두 개의 힘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움켜쥐려는 힘입니다. 인정받고 싶고, 우위에 서고 싶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힘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내어주는 힘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고, 관계를 살리기 위해 자기 자리를 조금 비워내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힘입니다.

 

복음은 바로 이 두 번째 흐름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늘만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 안에서 드러납니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피곤해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작은 친절을 반복하는 것, 사소한 감사 표현을 잊지 않는 것, 누군가의 약점을 조롱하지 않는 것. 이런 작고 보잘것없는 행동들이 사실은 세상의 논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복음적 혁명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것을 아주 깊이 이해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세상을 이기는 길을 높아짐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아짐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소유를 내려놓고, 타인을 형제로 받아들이며, 모든 피조물과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는 삶. 그것은 패배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려움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 자체보다 비교와 경쟁과 자기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인간을 내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풀어줍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선의를 선택하고, 상처받아도 다시 신뢰를 배우며, 배신당해도 완전히 냉소주의자가 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이미 세상을 이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신 세상은 로마 제국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간 안에 자리 잡은 증오와 두려움과 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십자가 위에서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일상 안에서 조금씩 세상을 이겨 갑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 용서하기 어려운 이를 위해 기도하는 순간, 자신의 이익보다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고난이 없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이 오늘도 우리 가장 평범한 관계 안에서 조용히 세상을 이기고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분 안에서 얻는 평화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의 문장이 아닙니다. 삶의 가장 깊은 어둠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건네시는 존재의 선언이며,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주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주 정직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고, 기다리기 때문에 외롭고, 믿기 때문에 흔들립니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실망을 경험하고, 몸의 한계를 느끼며,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눈물짓습니다. 때로는 선의를 품고 살아가는데도 오히려 오해와 냉대와 침묵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 위에 세워집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평안하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면 안심하며,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런 평화는 상황이 흔들리면 함께 무너집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얻는 평화는 환경의 평온함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폭풍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함께 계시는 분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 한가운데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마치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표면에는 거센 파도가 일어나도 깊은 바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영혼도 그러합니다. 삶의 표면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뢰가 살아 움직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이 말씀은 스스로 강해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억지로 이를 악물고 버티라는 말도 아닙니다. 참된 용기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힘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 안에서 용기란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끌어안는 사랑의 힘에 더 가깝습니다. 미움 속에서도 선의를 잃지 않는 것, 상처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간직하는 것,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을 계속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 복음적 용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실 때, 그 승리는 권력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칼과 힘으로 얻어낸 승리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심으로 얻어낸 승리였습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미움은 사랑을 이기지 못했고, 죽음은 생명을 삼키지 못했으며, 어둠은 빛을 꺼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고난이 없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고난보다 더 깊은 사랑이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세상 속에서 작고 약한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진정 강한 사람은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오늘도 우리 안에는 수많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관계의 상처, 상실의 아픔, 혼자라는 외로움. 하지만 주님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이미 그 길을 지나왔다. 그리고 너와 함께 걷고 있다.” 그래서 믿음은 고난이 사라지는 기적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함께 걸어가시는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 신뢰 안에서 인간은 조금씩 세상을 이기는 법을 배웁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미움과 두려움과 절망에 삼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마침내 평화란 모든 것이 잘되어서 얻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사랑받고 있으며 혼자가 아니다라는 깊은 확신 속에 머무는 삶인지도 모릅니다. 사랑 받고 있기에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의 응답이야말로 관계 안에 흐르는 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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