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큰 진리는 광야로부터 나옵니다. 고독을 넘어 사랑의 현신으로

 

광야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불러주던 이름도, 나를 증명해 주던 직함도, 나를 둘러싸던 익숙한 온기도, 그곳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광야는 나를 지탱하던 모든 외적 기둥을 하나씩 거두어 갑니다. 마치 저녁 기도가 끝난 뒤 꺼진 성당의 등불처럼, 하나씩, 하나씩, 내가 의지하던 빛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겨지는 것은 단 하나,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하고 있음이라는 떨림뿐입니다. 나는 그 떨림 앞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만납니다.

 

광야에서는 배고픔이 스승이 됩니다. 목마름이 질문이 되고, 고독이 거울이 됩니다. 그 거울은 잔인할 정도로 정직하여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소유의 그림자를 드러냅니다. 내가 정의라고 믿었던 분노 속에 숨겨져 있던 복수의 씨앗을 보여주고, 내가 헌신이라고 부르던 행위 속에 은밀히 스며 있던 인정받고 싶은 갈망을 침묵 속에서 끌어올립니다. 광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나의 모든 거짓을 무너뜨리는 가장 정확한 언어입니다. 나는 그 앞에서 변명할 수 없고, 숨을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마침내 나의 탐욕을 봅니다. 타인을 이용하여 나의 존재를 지탱하려 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실은 소유하려 했던 마음의 방향을, 평화를 말하면서도 내 뜻이 관철되기를 바랐던 숨겨진 폭력을 봅니다.

 

광야는 나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는 시작됩니다. 회개는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흐르던 생의 물줄기를 타인을 향하여 조용히 돌려놓는 일입니다. 광야에서 나는 알게 됩니다. 진리는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열리게 만든다는 것을, 진리는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흐르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광야의 가장 깊은 신비는 고독이 사랑으로 변형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고독은 나를 무너뜨리는 공허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공허를 견디고, 그 공허 속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이상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채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고 싶어집니다. 누군가의 상처 속으로, 누군가의 어둠 속으로, 누군가의 침묵 속으로. 누군가의 필요 속으로, 광야에서 태어난 사랑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조건을 묻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자신을 내어줍니다. 그때 나는 깨닫습니다. 광야는 사랑을 제거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 정화되는 장소라는 것을. 광야에서 제거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리고 있던 두려움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거짓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중심이 태어납니다. 그 중심은 더 이상 가 아니라, 흐르는 선()입니다.

 

이제 나는 관계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 곁에 머무르는 순간, 누군가의 실수를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해답을 주려 하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압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이 흐르는 관계 안에 있습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는 나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나를 세상 속으로 다시 보내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나는 내어주는 몸이 됩니다. 나는 쏟아지는 피가 됩니다. 나는 사랑이 지나가는 통로가 됩니다. 광야는 나를 비워 사랑이 머물 수 있게 한 거룩한 빈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압니다. 큰 진리는 광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이 되는 순간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나를 내어줄 일들이 보입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내어줄 자리를 보게 됩니다. 측은함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가 중심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먼저 봅니다. 그러나 측은한 마음이 열릴 때 나는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응답해야 할 부름이 됩니다. 지친 얼굴 하나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머물러야 할 성소가 되고, 말없이 견디고 있는 침묵 하나가 그저 지나쳐도 되는 풍경이 아니라 내 존재가 건너가야 할 다리가 됩니다.

 

측은한 마음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들어주는 시간, 판단하지 않고 머물러 주는 침묵,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상대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순명을 보여 줍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랑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발견된 필요 앞에서 자신을 거두지 않는 용기라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상처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사랑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자리들로 가득한 곳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서 조용히 나를 내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큰 진리는 광야로부터 나옵니다. 고독을 넘어 사랑의 현신으로 큰 진리는 광야로부터 나옵니다. 고독을 넘어 사랑의 현신으로   광야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불러주던 이름도, 나를 증명해 주던 직함도, 나를 둘러싸던 익...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2.27 9
1771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 - 압도적인 사랑이 부르는 자기 심판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 - 압도적인 사랑이 부르는 자기 심판 사랑의 빛 앞에 선 영혼은 존재의 밑바닥부터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믿음과 영적 체험의 극치에... 이마르첼리노M 2026.02.26 51
1770 요나의 표징은 태도적 변화의 서곡 요나의 표징은 태도적 변화의 서곡   요나 예언자의 표징은 성경에서 '회개'와 '부활'이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관통합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이마르첼리노M 2026.02.25 38
1769 관계의 심연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 관계의 심연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   &quot;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quot; 이 한 구절은 기도의 중심이 ‘나의 소원 성취’가 아니라 ... 이마르첼리노M 2026.02.24 51
1768 관계의 심층에서 읽는 마태복음 25장 관계의 심층에서 읽는 마태복음 25장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이 말... 이마르첼리노M 2026.02.23 67
1767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과 나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과 나   “돌을 빵으로” – 인정 욕구의 광야 광야의 첫 유혹은 배고픔이 아니라 존중받고 싶다는 허기였습니다. 나에게 건네온 무... 이마르첼리노M 2026.02.22 84
1766 무의식의 수면 아래서 건져 올린 가난의 노래 무의식의 수면 아래서 건져 올린 가난의 노래   아침 빛은 소리 없이 낮은 담장을 넘습니다. 그 빛은 화려한 치장을 거부하고, 가장 어둡고 습한 구석부터 조용... 이마르첼리노M 2026.02.21 110
1765 거룩한 허기 (단식) 거룩한 허기 (단식)   참된 사랑은 내 배를 채우는 욕망을 멈추는 '단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가두었던 나의 편견과 요구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주... 1 이마르첼리노M 2026.02.20 132
1764 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날마다 져야하는 십자가의 진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가복음 9:23)   날마다 지는 ... 이마르첼리노M 2026.02.19 145
1763 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 (재의 수요일) 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   인간은 누구나 높은 '이상'을 꿈꾸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늘 비루하고 나약한 '현실'입니다.... 이마르첼리노M 2026.02.18 149
1762 믿음이 시련을 받으면 믿음이 시련을 받으면   믿음은 시험이라는 가마에 던져질 때 비로소 자기 색을 드러냅니다. 말로 고백하던 신뢰는 상실의 바람 앞에서 비로소 뿌리를 드러내고,... 1 이마르첼리노M 2026.02.17 165
1761 10. 오상 이번 에피소드는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대한 것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그에 담기는 사랑이, 프란치스코에게 또한 일어난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 김상욱요셉 2026.02.16 150
1760 도구적 존재로서의 지혜 도구적 존재로서의 지혜   세상은 늘 분주하게 계산합니다. 어느 편이 이기는지, 어느 쪽이 더 높이 오르는지,누가 더 많은 박수를 받는지. 눈에 보이는 승리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2.15 170
1759 계산기가 없는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 계산기가 없는 나라에서 누리는 자유   인과응보의 계산을 넘어, 존재 그 자체를 향한 창조적 사랑에 참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 자유를 맛봅니다. 인과응보... 이마르첼리노M 2026.02.15 193
1758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 형제 이번에 소개할 프란치스코 에피소는 퀸타발레의 베르나르도 형제입니다. 이 형제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형제들과 함께 회개생활을 하는 ... 김상욱요셉 2026.02.13 232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9 Next ›
/ 11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