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바람 형제 (2002년)
작가 : 피에로 카센티니 (Piero Casentini: 1963)
소재지 : 이태리 아씨시 산 다미아노 수도원
성 프란치스코의 작품 중에 “태양의 노래”가 있는데 이것은 성인이 귀천하시기 직전인 1226년 지으신 것이며, 중세 이태리 문학에서 단테의 작품과 겨루는 수작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가르침인 “가난한 사람의 행복”을 외면하고 세상적 권세에 집착함으로서 부패하고 생기 잃은 중세 교회를 다시 복음적 가난으로 채운 성인이기에 교회 쇄신의 산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이태리 문학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신곡에서 단테는 중세 부패한 교회를 향한 포화를 터트리며 부패한 교황 여러 명을 지옥에 보내는 충격적인 표현을 하면서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해선 특별한 찬사를 올리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아직 젊었을 때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대한 덕의 표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죽음만큼이나 무섭게 여기며 피하던
복음적 가난을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의 격노를 무릅쓰고 주교와 아버지 앞에서
일생을 복음적 가난 안에 살겠다는 것을 선포했다....프란치스코와 복음적 가난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단테의 신곡 천국편 11장)
태양의 찬가에서 성인은 첫 구절을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좋으신 주님,
찬미와 영광과 영예와 모든 찬양이 당신의 것이옵고“(묵시 4,9.11 참조)
라는 시작으로 하느님께 최고의 찬사를 드린 후
“내 주님을 찬미하고 찬양들 하여라.(다니 3,85 참조)
감사를 드리고, 한껏 겸손을 다하여 주님을 섬겨라”
라는 결구로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참 모습인 겸손으로 끝내셨다.
이 두 표현에서 성인의 위대한 신앙표현이 드러난다.
많은 부처들에 의해 꽃으로 장엄된 세계에 관해 설명하는 대승경전으로 평가되는 불교의 화엄경처럼 세상 만물을 다 하느님의 찬미로 초대하고 있다.
첫 번으로 해와 달과 별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자고 초대한다.
“내 주님, 당신의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찬미 받으시옵고 (토비 8,7 참조)
그 중에도 각별히 해님 형제와 더불어 찬미 받으사이다.
아름답고 장엄한 광채로 빛나는 해님은,
지극히 높으신 당신의 모습을 지니나이다.
내 주님, 달 자매와 별들을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 (시편 148,3 참조).
당신께서는 빛 맑고 귀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그 다음 바람과 공기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현상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고자 초대 한다.
“내 주님, 바람 형제를 통하여 그리고 공기와 흐린 날씨와 개인 날씨와
모든 날씨를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다니 3,64-65 참조)
저들로써 당신 피조물들을 기르시나이다.“(시편 103,13-14 참조).
이어서 성인은 동양의 노자가 도덕경에서 예찬했던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바위를 뚫을 수 있는 물을 인용하여 찬미에로 초대하신다.
“내 주님, 쓰임새 많고 겸손하고 귀하고
순결한 물 자매를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시편 148,4-5 참조)
이어서 불을 형제라 부르시며 우리를 초대하신다.
“내 주님, 불 형제를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다니 3,66 참조)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시편 77,14 참조)
그는 아름답고 쾌활하고 씩씩하고 힘차나이다.”
마지막으로 그분은 땅으로 우리 시선을 돌리며 찬미에로 초대하신다.
“내 주님, 우리 어머니인 땅 자매를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다니 3,74 참조)
그는 우리를 기르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더불어 온갖 열매를 낳아 주나이다.”(시편 103,13-14 참조).
그 다음 성인은 오욕 칠정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인간 삶의 여정들에서 만나는 미움과 용서, 병고에서의 인내, 마지막으로 모든 인간의 종착역인 죽음을 자매라 부르며 찬미하고 있다.
“내 주님, 당신 사랑 까닭에 용서하며(마태 6,12 참조),
병약함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이들을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
평화 안에서 이를 견디는 이들은 복되오니(마태 5,10 참조),
지극히 높으신 이여, 당신께 화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 주님, 우리 육신의 죽음 자매를 통하여 찬미 받으시옵소서.
살아있는 어느 사람도 이를 벗어날 수 없나이다.”
작가는 현존하는 젊은이로서 어릴 때부터 예술적 기질을 발휘해서 작가로서의 길을 탄탄히 시작했는데, 특히 성서와 성 프란치스코 생애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이 분야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작가는 거의 독보적이라 여겨질 만큼 복음과 성 프란치스코에 심취해서 작품의 대부분이 바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과 프란치스코의 생애 였으며, 특히 이 작품은 태양의 찬가에 등장하는 내용을 여덞 장면으로 나누어 성인의 영성을 시각화 시켰다.
성인을 평화의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지상 인간들 간의 다툼과 분쟁에서의 평화만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의 평화임을 이 작품은 드러내고 있다.
이태리 교회에서 발간하는 예술잡지 “LOUOGHI del INFINITI” 5월호는 예수회 출신의 교황이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선택하면서 교회에 일으키는 희망의 변화된 모습을 당신이 수호성인으로 선택하신 성 프란치스코의 위의 작품에서 “바람 찬가”와 연결시켜 새 교황님은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실 분으로 표현했다.
성서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성령”을 상징하는 대단히 중요한 용어이다.
모든 크리스챤들은 성령의 인도를 통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으나, 교회가 제도화되고 법제화 되면서 실재 우리 교회의 현실은 많은 신조와 법으로 지어진 난공불락의 성이 되면서 성령의 질식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영광과 조직에 도취된 삶을 살아왔다.
인간이 만든 조직이 아무리 선의에서 만들어진 이상적인 것으로 치더라도 생명이 없는 것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의 생명력을 표현할 수 없는 법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복음이 교회 부패에 의해 질식 상태에 있던 시기에 복음이란 바람을 교회 안에서 일으킴으로 교회 개혁과 쇄신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중세 교회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바탕이 열악한 상태에서 바라본 프란치스코는 제도적인 교회에 순종한 사람으로 찬사를 받고 있으나 이것은 대단히 왜곡되고 축소된 성인의 이미지이다. 무지한 선의이긴 해도 이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마치 호랑이를 큰 고양이로 표현한 것처럼 안타깝다.
당시 교회는 갈릴래아의 어부 예수님의 가르침인 하느님의 나라 건설 보다는 지상 최고의 권력집단을 만들기 위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처참하고 명분 없는 전쟁이었던 십자군을 일으키는 광기에 빠졌을 때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런 교회의 잘못된 광기에 일조의 협력도 관심도 없이 의연하셨다.
당시 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하던 한다한 성인들도 하나같이 모두 십자군 모병 책임자로 참가했던 시절 프란치스코의 의연함은 복음의 기본을 망실했던 교회에 충격적인 밝은 모습이었다.
이런 면에서 성 프란치스코가 “제 2의 그리스도”로 평가되는 것은 복음에 바탕을 둔 혁명가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새 교황님의 행보에서 “바람 형제”를 찬미하신 성 프란치스코의 모습이 보인다.
보통 새 교황님이 선출되시면 전임자의 이름을 따르는 게 관례이다.
시대 착오적인 제도들과 법으로 밀폐되어 답답해진 교회를 쇄신하시려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으신 요한 바오로 1세 교황님을 이어 보에티아 추기경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셨다.
그 후 라칭거 추기경님은 베네딕또 16세로 이름을 정하셨는데, 이 이름 안에 교황님의 교황으로서 사목의지가 함축되어 있다. 저명한 신학자였던 그분은 교회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쇄신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을 교회를 혼란시키는 것으로 판단하시고 질서를 잡는 것이 당신의 역할로 판단하고 로마 제국 후기의 혼란기를 사셨던 베네딕또 성인을 당신의 수호자로 선택하셨다.
이런 교황님의 의지는 시대 상황에 맞지 않아 많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영웅적인 결단의 사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교회역사에서 교황의 첫 사임은 중세기 첼레스티노 5세 교황(1210- 1296)이 했으며, 그 후계자가 된 보니파시오 8세 교황(1235- 1303)사이의 역사는 교회 부패와 혼란의 치부가 너무도 드러난 시기였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은 베네딕또 수도규칙을 따르는 은수자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민심이 천심이라고 교황들의 부패에 넌덜머리가 난 신자들은, 이 은수자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교회가 순수해야 한다는 당시 하느님 백성들의 염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는 “백성의 소리를 하느님의 소리”로 알아듣고 교황이 되었으나 자기의 순수한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황직에 마음이 없던 차, 로마법과 교회법을 전공하고 출세에 대한 야심이 대단했던 베네딕도 가예타니(Benedicto Caetani) 추기경이 전임 교황을 사임시키고 보니파시오 8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이 되었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땡중 처럼” 대단한 정치적 야심을 가진 인간이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선출되는 것을 지켜 보시는 하느님의 존재성이 어떤 때 의문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는 교회역사에서 성년(聖年)을 시작한 교황이었으나 신앙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술수를 사용해서 유럽의 온갖 정치 문제에 관여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과정에서 교회의 위상을 복음과 거리가 먼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기에 단테는 신곡 <연옥편>에서 이 정치 교황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대리자에게 포로가 되시고, 모욕을 당하셨다.”는 신랄한 표현으로 고발했다.
현대 우리 교회에 중세기에 있었던 이 안타까움이 노출되었다. 성령의 바람과 같은 복음적 삶을 신조와 법으로 바꾸어 밀폐된 것이 전통이라 여기며 자기도취의 나날을 보내던 교회가 된서리의 시련을 맞게 되었다.
밀폐된 공간에 몸담아 거기에 익숙하게 되면 바깥의 생기는 잊게 되면서 부패의 악취로 풍기게 된다. 근래 교회에 터지기 시작한 성직자들의 추행, 심지어 교황의 측근이 연루되는 범죄가 드러나면서 전임 교황님을 사임이라는 대단히 복음적인 결단을 하셨다.
현대 교회가 겪은 이 부끄러움은 신조와 법으로 밀폐되었던 것을 정통으로 여기며 복음의 자유로움을 외면하고 안주했던 사람들에게 복음의 주인이신 주님이 내린 경고장이었다.
이런 시기에 새 교황님은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으로서 엉뚱하게도 프란치스코 이름을 선택하셨다. 얼마 되지 않는 그분 교황 직에서 그분은 이름이 아니라 삶으로 그분의 수호성인의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교회를 프란치스코적인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임을 너무도 명백히 보이고 계신다.
교황님의 행보 안에서 전통적인 교황의 모습이 아닌 이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상징적이긴 해도 그분은 교황직의 이미지에 대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셨다. 그분은 “세상의 군주 중인 군주”로 평가되길 원했던 교황청의 관례를 과감히 부수고 바람 형제 같은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보이는 로마의 주교가 되셨다.
어느 시골 본당신부의 손가락에서나 볼 수 있던 반지가 역대 교황이 사용하던 “어부의 반지”로 격상(?) 되었고 단순한 복장에 은십자가 하나를 건 너무도 자유로운 모습으로 행보를 시작하시며, 시대착오적인 교회법과 전통에 대해서도 파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서 세상은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즐기는 것처럼 기쁨의 탄성이 터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을 복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염려와 불편한 심기를 만들기도 하신다. 교회의 성사생활에서 제외된 이혼자들에 대해 그분은 아버지다운 마음을 보이셨다. 심리학의 발달로 새로 평가해야 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그분의 변화된 태도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을 바라보며 서 있는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 사랑의 강한 바람이 불어 성인의 모든 것이 뒤로 제쳐지고 있다. 성인의 곁에 서 있는 나무 역시 태양의 찬가에서 인용한 형제로서 성인의 자세를 따르고 있다.
복음의 생기를 막는 모든 관례나 허식의 장벽을 치우고,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과 법을 뒤로 던지고 앞을 향해 나아가라는 강한 초대를 받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늘 교황님의 모습이 어쩌면 이 “바람 형제”의 모습과 너무도 어울린다.
교회여,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정치를 하지 말고 순수해져라!
교회여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도록 넓어져라!
교회여 ,복음만이 유일한 법임을 증거하기 위해
복음적 생기를 질식시키는 모든 시대착오적인 신조와 법에서 해방되어라.!
교회여 젊어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