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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면 동물의 왕국에서 사는 것입니다.

(무죄한 아기들의 순교 축일에)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면 동물의 왕국에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힘센 놈들이 힘없는 놈을 잡아먹는 현실을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기를 포기한다는 말은 사람에 대한 존중심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지배하는 왕국과 그 왕국에 저항하는 이들을 폭력으로 억압하거나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성탄과 함께 무죄한 아기들의 순교 축일을 지냅니다. 자기 왕권을 지키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들을 죽이는 헤로데 왕의 폭정을 폭로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몸에 들어오셨다는 육화의 신비는 인간의 몸이 얼마나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들자라고 창세기의 저자는 전해줍니다.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과 인간 말살의 피 흘리는 현장을 매일 목격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빼앗고 죽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저지르는 현상은 동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짓밟고 빼앗고 죽입니다. 더 많은 이들을 효과 있게 죽이기 위해 무기들을 만들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수고로 얻은 재화를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거나 무기를 사들이는 데 사용합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사람 없는 하느님은 의미가 없고 하느님 없는 사람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과 사람은 구원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창조의 이야기부터 예수님의 육화와 더불어 사람을 살리시는 지상 생활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활동과 하느님 나라, 그리고 사람을 끝까지 돌보시는 결과가 수난과 죽음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신 구원의 역사가 하느님과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서 관계의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사랑하면 죽는지도 모르게 죽는다는 사실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어둡고 비뚤어진 세상에 관계를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과 하느님을 닮아가는 인간 사이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내어주는 사랑에 초대하셨습니다. 자신을 내어주시는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사랑은 내어주는 응답으로 관계를 비춥니다. 하느님과 닮은 존재인 사람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부터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가 시작됩니다. 너는 더 이상 지배의 대상이 아니며 경쟁의 대상도 아니고 돌보고 협력해야 할 대상입니다. 공존을 위해 하느님의 선을 공유하는 관계는 창조적입니다. 허물어진 관계, 단절된 관계, 멀어지거나 부담을 주는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입니다. 선은 아버지로부터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전달된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어둡게 하거나 가로막는 죄는 자신만을 위한 지배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다가 결국 파멸의 길로 끝납니다. 자신도 죽고 다른 사람도 헤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즐기는 사람은 사람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선을 공유하는 공존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너 죽고 나 살자, 너 죽고 나 죽자, 너도 살고 나도 살자.”에서 상생의 길을 선택합니다. 무죄한 어린 아기들의 죽음은 헤로데만이 저지른 폭력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저지른 무수한 태아 살해를 비롯하여 자살폭탄테러와 지배자들의 노동착취와 성적 노예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간 상호 간의 관계가 무너지면 결국 우리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말로 해서 안 되면 즉시 자신이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불이익을 주거나 빼앗거나 폭력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은 나만을 위한 선물이 아닙니다. 공존을 위해 살리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총인 것은 대가 없이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가로 받은 것은 거래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바쳤거나 희생을 많이 바쳐서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가로 얻었다고 말하고 인과응보의 논리로 해석합니다. 하느님을 거래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쳐서 얻는 구원이 아니라 받아서 얻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바쳐서 얻는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꼭대기에 올려놓기 때문에 관계를 부담스럽게 만듭니다. 우월감에 중독된 광신자들이 날로 늘어가는 교회의 모습은 선을 어둡게 하는 환상에 빠져있습니다.

 

육화는 구원입니다. 말씀을 잉태한 모태는 관계 안에 출산하는 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 있는 땅에서 말씀을 잉태한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육화가 선의 출산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압니다. 인간의 몸은 그래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성장합니다. 몸은 물리쳐야 할 원수가 아닙니다. 몸이 없으면 잉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영혼만 있는 존재는 이미 사람이 아니며 몸만 있는 존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는 창조가 이루어지는 현장이며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상대방을 이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치유하는 사람, 용서하는 사람과 품어주는 사람,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에 따라 사는 사람은 이미 선이라는 아기를 출산한 사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창조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문화에 길들어 자신도 모르게 관계를 힘들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는 사람은 이미 받을 벌을 받은 사람입니다. 선은 그 자체로 보상이며 악은 그 자체로 처벌이기 때문입니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육화의 신비는 감탄하는 신비입니다. 무죄한 어린 아기들의 죽음을 묵상하는 오늘, 주님의 성탄과 아기들의 죽음이 말해주는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기들의 죽음의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으셨던 예수님은 홀로 죽음을 택하시고 인간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수많은 생명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이 인간 구원에 도움이 되었다면 그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남으셨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아기들의 죽음이 인류 구원에 협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죽으면서 살리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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