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페사로의 마돈나 (1518)
작 가 : 티치아노
크 기 : 캠퍼스 유채 (4.85x2.70m)
소재지 : 이태리 베네치아 프라리(Frari) 성당
오늘 베네치아는 이태리 북부의 도시이며 과거 찬란한 문화가 남긴 여러 예술품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나 과거 베네치아는 도시 국가로서 유럽 여러 나라와 어깨를 겨루며 무역을 하던 힘 있는 나라였다.
갯벌 위에 건설된 도시는 화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정착된 정확성과 자기 방어력으로 천년 이상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문화를 정착시킨 자랑스러운 나라였다.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도 자기들의 화풍을 정착시켜 자기들만의 독창성을 창출했다. 특히 미술에 있어선 화려한 색체 처리로 당시 유행하던 피렌체와 구별되는 화풍을 구현했고 티치아노는 바로 이런 화풍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남긴 대표 작품의 하나로 르네상스 화풍의 아름다움을 대단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 작품이 있는 성당은 콘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원 성당으로 프란치스칸 가족 중에서도 예술에 대한 특별한 안목과 보존에 지혜가 있는 형제들이 모인 수도자들에 의해 기라성 같은 성당이 많은 베네치아에서 산 마르코 대성당 못지않게 기품 있는 성당이 되었다.
이 성당엔 베네치아 여러 총독들의 무덤이 대표작으로 남아 있으며 그 외 유명한 조각가인 안토니오 카노바의 무덤, 또 중앙에 있는 성모 승천 작품은 년 전에 소개한바 있는 대작이며 베네치아 종교 미술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여기를 여행하는 가톨릭 신자라면 미리 안내인에게 부탁해서 방문할 가치가 있는 참으로 고급 성 미술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작품을 봉헌한 페사로(Pesaro)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함대 사령관으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명령에 따라 산타 마우라 섬에서 터키와의 해상 전에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광을 재현한 공로자였다.
그는 당시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던 티치아노에게 부탁해서 바로 이 성당 한 장소에 제단을 만들어 자기 가족들의 경당을 만들면서 이 작품을 봉헌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적이었던 터키에 대한 승리의 표현이고 이런 승리를 거둔 것은 자기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 가족 경당에 이 사건을 신앙의 차원에서 정리해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전쟁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감사의 표현으로 남긴 것이다.
중세기 유럽의 여러 성당은 더 좋은 성당으로 건축을 위해 많은 재원이 필요했는데, 십시일반으로 신자들의 정성을 모으기도 하고 또 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족 경당을 만들어 주는 조건으로 무덤을 겸한 작품을 봉헌하는 예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바로 페사로 가문의 영광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하느님께 봉헌한 역사적 사건의 서술이면서도 강한 신앙을 담고 있다.
먼저 아래편엔 봉헌자와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이 바로 승리를 이끈 페사로이며 그 오른편엔 그들의 가족들이 나열해있다.
사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페사로이지만 그의 복장은 그리 화려하지 않고 무릎 꿇은 자세는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는 자세가 아니라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더 없이 겸허한 자세이다.
그 이외에 오른편에 비단옷을 입은 남자와 준수한 복장의 인물들은 바로 봉헌자의 가족으로서 자기 가문에 받은 영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등장해 있다. 요즘도 교황님의 해외 방문 때 정부 고관들이 자기 자녀들을 공항에 대기시켜 교황의 강복을 받으려는 것과 비슷한 사연이다.
어린 조카 하나가 다른 가족들이 성모님을 우러러 보는 것과는 무관하게 관람자들에 시선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의 호객행위처럼 많은 사람들이 성모자를 경배할 수 있도록 안내역을 행하는 것과 같다.
화사한 밝은 붉은색과 청색이 조화되는 옷을 입은 성모님께서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쓰신 자세로 예수 아기를 안고 계신다. 성모님의 모습은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님이란 교회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 그는 어머니처럼 베드로 사도와 봉헌자가 있는 곳을 향하지 않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아기 예수의 모습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위엄 있는 모습이 아닌 이웃집 귀여운 아기처럼 장난끼 어린 모습이다.
이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면서도 인간 세상의 요셉과 마리아를 해 오신 더 없이 인간답고 어린이다운 표현이다. 이 작품 제작 당시 유럽에는 인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르네상스 운동이 퍼지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작가는 예수님을 바로 가장 인간 어린이다운 모습으로 과감히 표현했다.
아기 예수님이 손짓을 하며 시선을 두는 곳에 두 사람의 프란치스칸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 프란치스코와 성 안토니오이시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안토니오는 오늘까지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이시고 더욱이 이 작품을 둔 성당이 프란치스칸들이 사는 성당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와 봉헌자를 바라보고 계신 성모님과 달리 아기 예수님은 프란치스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당시 교회의 정서를 표현한 것이다.
당시 유럽 교회는 너무도 부패해서 뜻있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었는데 성 프란치스코만은 생기 있고 살아있는 성인의 본보기기에 그럴 수가 있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들은 이 작품 속에 프란치스칸 성인들을 등장시키고 싶어 했고 이것은 봉헌자에게도 오른쪽에 있는 그의 가족 중에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와 안토니오라는 이름을 지닌 친척이 있었기에 이들을 프란치스칸 수준에 두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기에 좀 해학적인 차원이긴 해도 두 성인이 이 작품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중세기 사람들은 사회정서에 의해 오늘 우리들에게 비길 수 없는 경직된 삶을 산 것이 확실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이 할 수 있는 신앙 안에서도 해학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왼편에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모아 기도하는 페사로 옆에 갑옷을 입고 승리의 깃발을 들고 있는 무사가 터번을 쓴 터키 포로를 감시하고 있다.
그 옆에 있는 붉은 색깔의 깃발은 봉헌자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탈취한 것이며 이 전쟁을 인정했던 알렉산더 6세 교황을 기리기 위해 그 집의 문장을 새겨 두었다.
알렉산더 6세 교황은 중세기 교황 중에서도 부패한 교황의 모델인 사람이었는데, 작가 당시는 이런 것을 표현할 수가 없기에 교황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으로 이 깃발을 그렸다.
두 계단 위에서 성경을 펴들고 페사로 추기경을 내려다 보는 흰 수염의 노인은 그의 발 밑에 놓인 열쇠로 상징되는 사도 베드로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대단히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교황의 권위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봉헌자는 교황의 명에 따라 전쟁을 해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내용이 함축된 것이다. 우리 생각에 이런 것은 너무 세속적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중세기 정서에서는 이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베드로 사도가 펼쳐서 읽고 있는 책은 성경이 아니라 페사로의 무용담을 적은 책이었으니 교황권이 얼마나 강했던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제단의 가장 높은 좌석에는 빨간 치마에 남색 겉옷을 걸치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른 마리아가 통통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무릎을 꿇은 추기경 페사로의 시선을 그쪽을 향한 베드로를 통해 높은 의자에 앉은 마리아에게 돌려지고, 오른편의 경건한 그의 가족과 성자들의 몸과 시선이 그쪽에 쏠리게 함으로써 화면에 역동감을 주었다.
성모님은 베드로 사도의 앞에 무릅을 꿇고 있는 주인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그 오른편으로 봉헌자 가정의 대단한 가족들이 기라성 같은 가족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 값비싼 비단으로 되어 있어 이들 가정의 수준을 잘 대변하고 있다. 봉헌자는 자기 가족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에게 성모자의 도움을 간청하고 있다.
인물들의 시선과 동작 때문에 오른편으로 기운 구도에 균형을 주기 위해 군대 생활로 성덕에 나아간 성 게오르구스의 깃발을 왼편에 크고 화려하게 그렸다.
관객의 시선은 계단의 대각선을 따라 높은 보좌에 앉은 마돈나와 아기 예수 또 둥근 두 기둥의 넓은 공간으로 감탄하며 달려간다.
성모자가 좌정해 있는 두 기둥 위에 날개 달린 아기 천사들이 구름을 타고 십자가를 세우려 한다. 그들의 그림자가 기둥에 부드럽게 그림자를 던지는 실내와는 달리 아치 밖에는 넓고 높은 청아한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어 먼 공간의 대비적인 아름다움으로 그림 자체의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니고 있는 힘을 과시하고자 했고 봉헌자의 가족들은 신앙 안에서 자기 가문의 존엄성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성 미술의 제작 동기가 순수한 신앙이 아니더라도 자기 가문의 과시나 재력을 과시하고자 한 것이어도 그들이 남긴 열정은 항상 많은 사람들에게 등장인물을 통해 감동을 받게 만든다. 이 작품이 있는 양쪽으로 벽에 걸쳐진 무덤이 보이는데, 이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들의 무덤이다.
이런 무덤 역시 각각 다른 성격을 표현하고 있기에 이 대성당은 큰 보물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미술의 주제는 언제나 하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간혹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인간들이 자기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으로 작품을 봉헌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한 가족이 받은 은혜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페사로의 자기 집안 위세를 표현한 세속적인 면이 있으나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바치고픈 한 인간의 염원 표현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