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3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믿음의 뿌리를 성찰하기

 

믿음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것은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얼마나 큰 자비의 혼인 잔치에 초대되었는지 아는 것이며

타고난 존엄성과 중요성을 깨닫고

그분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부터 성장한다.

믿음은 그러한 경험을 한 뒤에 비로소 분명해지는 기쁨 충만한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죄인이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재이며

하느님께 속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께 연결되었다 해도

여전히 여러 단계의 어둠을 통과해야 하며 위험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살리기 위한 죽음의 현장에서는 고난이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가벼운 짐과 편한 멍에”(마태 11,28-30)로 그 길을 가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된 것은 우리의 업적과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총으로 주어진 것”(로마 11,6)임을 깨닫고 그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많이 바쳐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응답이기 때문에 관계를 회복하게 만든다.

관계를 좋게 만드는 데 기여 하는 것이 아니라면 많이 바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관계에 관한 말씀이고 소통과 환대를 일컫는 밀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제쳐두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의식하고 바치는 기도와 희생과 제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많은 가정에서 가족들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현실을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자신들이 대면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하느님께 숙제를 미루면서

자기가 바치는 기도와 제물에만 관심을 보이는 신자들이 너무나 많은 걸 보면 안쓰럽다.

 

많은 이들은 기도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이미 선물로 받은 하느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 경험하게 하는 내적 체험이다.

거기에는 바르고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강박관념과 부담이 없다.

스스로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하느님의 자비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그 나라에 머물기 때문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진행형 나라이며, 결론보다 과정이고, 관념보다 인격적 관계를 통해

누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보는 눈이 관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성은 생활 안에서 구체화 된다.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 협력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기도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시면 우리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이제까지 살아온 삶보다 훨씬 더 크게 느끼고

더 큰 기쁨으로 그 길을 걷는 희망을 여기에서 본다.

 

  

2020, 1. 25. 설날에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67 죽음과 부활 (관계성의 신비) 죽음과 부활 (관계성의 신비)   내어주는 죽음이 내어주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이 받아들이는 기쁨으로   내려가는 죽음이 내려가는 기쁨으로 내려놓는 죽... 이마르첼리노M 2023.04.09 313
1366 부활의 신비는 내어주는 몸과 받아들임의 신비 (성삼일의 묵상) 부활의 신비는 내어주는 몸과 받아들임의 신비 (성삼일의 묵상)   최후 만찬과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예수께서 보여주신 행동하는 자비는 계시의 완성이... 이마르첼리노M 2023.04.05 718
1365 성주간 (계시의 완성을 보는 때) 성주간 (계시의 완성을 보는 때)   자비를 깊이 바라보다가 자비가 되어 자비가 흐르도록 길을 떠나는 때   자비의 열매는 나의 필요성을 없앤다. 스스로 높일 ... 이마르첼리노M 2023.03.29 282
1364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꽃피는 계절에 향기로 다가와 볼을 비비는 이여!   벌들에게 꿀을 내어주면서도 순수한 꽃으로 남아계신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생명이 만... 이마르첼리노M 2023.03.20 243
1363 인식의 차이 인식의 차이 대해서 아는 것과 아는 것    대해서 아는 것은 객관화된 지식이지만 아는 것은 경험된 지식입니다.   경험된 지식은 왜? 어떻게? 에서 나오는 것이... 이마르첼리노M 2023.03.19 209
1362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하느님의 무상성(빚의 탕감)     &quot;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quot; (마태 18,22)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왔다... 이마르첼리노M 2023.03.15 250
1361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 의로움의 차이를 극복하는 믿음   사도 바오로는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쓰레기로 버렸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 이마르첼리노M 2023.03.03 461
1360 용서가 있는 곳에는 힘을 사용하라는 내면의 유혹이 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힘을 사용하라는 내면의 유혹이 있다.   우리는 선을 행할 때마다 측은한 마음으로 돌보시는 하느님의 자기 비움의 고통에 참여한다. 너를 ... 이마르첼리노M 2023.02.22 577
1359 무엇을 구원이라고 믿는가? 무엇을 구원이라고 믿는가?   내 믿음의 토대는 인류 구원에 대한 속죄 이론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벌적 대속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참여... 이마르첼리노M 2023.02.14 292
1358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욕구 충족의 노예에서 욕구 충족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갈등과 넘어짐을 반복하면서 하느님... 이마르첼리노M 2023.02.10 489
1357 난 너의 좋은 데를 안단다. 난 너의 좋은 데를 안단다.   세상은 온통 작은 기쁨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이 기쁨을 알아보는 능력이 없을 뿐이다.   하느님께서 새날로 주신 아침에 형제들... 이마르첼리노M 2023.01.30 442
1356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알맞게 창조된 나의 실재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육화된 하느님 현존의 실재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느님은 진리이시며 선하시고 최상의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 이마르첼리노M 2023.01.28 239
1355 힘의 원천을 성찰하기 힘의 원천을 성찰하기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 믿음의 근본을 이루는 힘의 원천을 성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신적인 ... 이마르첼리노M 2023.01.26 248
1354 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받아들여진 존재와 받아들인 존재는 하나의 몸이다.   내가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과 하느님께서 나에게 받아들여진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 ... 이마르첼리노M 2023.01.25 244
1353 신적 생명이 흘러가는 유역에서 살아가는 기쁨 신적 생명이 흘러가는 유역에서 살아가는 기쁨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은총과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삼위일체 안에... 이마르첼리노M 2023.01.21 349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01 Next ›
/ 1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