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루카복음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소외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강조하지요.
그래서 다른 복음에는 없는 얘기들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들려주는데
곧, 주님께서 여자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여자들이 당시 얼마나 소외받았는지에 대한 증거입니다.
당시 소외 받는 사람들 중에서 병자, 죄인, 가난한 사람들을
주님께서 차별 없이 사랑하셨음은 공관복음도 전하지만
유독 여자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드물게 전하고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빼었든 실수로 빠졌든 복음에서마저 소외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주님께서 여자들과 사랑을 주고받음이
지금 와서는 뭐 대단한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대단히 혁명적인 사건이고
이에 대한 루카복음의 기술도 대단히 소중하다 하겠지요.
당시 여자들은 자녀를 생산하는 씨받이이거나
남자들의 사랑의 대상까지는 될 수 있었지만
남자들, 특히 주님의 제자들이나 사도들처럼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나
주님의 구원 사업을 함께 행하는 자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서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 구원 사업의 꼭 필요한 협조자로 소중히 받아들이셨던 겁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에 꿰인 것일까요,
이 여인들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인데
아예 주님을 따라나서고, 주님께서는 스스럼없이 그들의 시중을 받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사도들은 다 도망쳤어도
이 여인들은 주님의 수난 현장에까지 함께 하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됩니다.
하찮은 사람조차 당신 구원 사업의 소중한 협력자로 삼으시는 주님과
이런 주님 사랑과 선택을 소중히 여기며 그 역할을 다하는 여인들의 관계가
사랑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찌질한 제자들과 주님의 관계와 비교가 되어
오늘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아니 주님과 저의 관계를 성찰케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로 나를 쓰시고자 하시는데
나는 제자들처럼 그 귀함과 소중함을 모르고
그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지는 않는지.
여전히 어린애처럼 구원을 달라고만 하고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는 생각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