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일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주인이라는 뜻과
안식일이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의미는 서로 모순되고 충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 곧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안식일을 나를 위해 쓸 수 없고 주님께 하루를 바쳐야 할 것이고,
반대로 사람, 곧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면
안식일을 주님께 바칠 필요 없이 내 좋을 대로 써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얼마 전 한국 주교 회의가 내린 사목지침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 지침은 부득이 주일 미사를 참석하지 못할 경우
대송을 하거나 대신 평일 미사에 참석해도 된다는 것인데,
주교회의가 이런 지침을 내리게 된 것은
옛날에는 파공罷工이라고 하여 주일을 주님의 날로 철저히 지킨데 비해
요즘 신자들은 주일에 그저 집에서 쉬거나 놀러 나가는 사람이 더 많고
그래서 주일미사 참석률이 20%대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우리가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 주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주일의 주인은 주님입니까, 아니며 우리 인간입니까?
만일 주일의 주인 자리를 놓고 하느님과 인간이 자리다툼을 한다면
주일이란 말 자체가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니 우리 인간은
당연히 시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주인 자리를 내드려야하고
주인 자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주일을 하느님께 봉헌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도 이렇게 사랑의 차원에서 이해하면 다 풀립니다.
주님께서 쩨쩨하고 치졸하게 인간과 자리다툼이나 하는 분이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시고
그래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당신 자신까지 봉헌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이렇게 당신 자신을 바쳐 사랑하시는 우리 인간이 자유를 잃고
안식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주인다워야 하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주인답고, 무엇이 참으로 자유로운 것이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의 노예처럼 주일을 써서는 물론 안 되겠지만
쾌락을 위해 쓰거나 이기주의적으로 주일을 써서도 안 될 것입니다.
다만 사랑만이 우리를 주인답게 하고 자유롭게 하니
사랑으로 나를 자유롭게 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소중히 쓸 것입니다.
진정 나를 사랑하기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이며
진정 나의 인생을 사랑하기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주일을 바칠 것입니다.
명절이 가까운 오늘 부모를 찾아가는 것과 이를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1년의 그 많은 날들 중에 고작 며칠 부모를 찾아뵙습니다.
부모는 그 자식들이 오기를 훨씬 오래 전부터 기다립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들려 보낼 선물을 준비하고서.
올해도 새터민 아이들이 저를 부모 삼아 찾아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할 것이고
또 북한 음식은 스스로 만들어 먹게 할 생각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이 명절 잔치를 준비하며
아쉬울 것 없도록 우리를 위해 상을 차려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진정 우리의 주님은 풍성한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아쉬울 것 없도록 풍성한 상을 차려주시는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