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5,21-28
이 복음은 처음 들으면 당황스럽습니다.
주님께서 이방인 여인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강아지’라는 말씀까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부들은 이 장면을
주님께서 그 여인의 믿음을 ‘끌어내어 드러내시는’
사랑의 시험으로 읽습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이 여인에게서 ‘담을 넘는 믿음’을 봅니다.
그는 일깨웁니다.
하느님의 자비에는
유다인과 이방인을 가르는 담이 없으며,
그 담을 허무는 것은 ‘겸손한 믿음’이라고.
여인은 ‘강아지’라는 낮은 자리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자리를 받아들이며 말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모욕이 될 뻔한 말을
그는 ‘믿음의 지렛대’로 바꾸어 버립니다.
여기에 오늘 주간의 세 열매가 빛납니다.
거절과 침묵에도 물러서지 않는 ‘성실’,
낮은 자리를 발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온유’,
모욕을 분노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 넘기는 ‘절제’.
이 셋이 어우러진 믿음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마침내 탄복하십니다.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주님께서 복음 전체에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신 사람은
백인대장과 이 가나안 부인 ―
둘 다 ‘이방인’이었습니다.
담 밖에 있던 이들이
도리어 큰 믿음으로 담을 넘은 것입니다.
일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여인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미리 보여 줍니다.
구원의 식탁은
핏줄이나 출신으로 닫혀 있지 않습니다.
겸손히 다가오는 모든 이에게,
‘부스러기’조차 생명이 되는 자비가 열려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거절과 침묵 앞에서도 끈질기게 청하는가?
나는 낮은 자리를 발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가?
나는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담을 쌓고 있지 않은가?
나는 ‘부스러기 은총이라도’ 청하는 겸손을 지녔는가?
주님,
거절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끈질긴 믿음을 주소서.
낮은 자리를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시고,
‘우리’와 ‘저들’을 가르던 담을 허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