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가 점차 끝을 향해 가기에 독서와 복음은
주님께서 왜 죽임을 당하게 되는지와 관련된 것들입니다.
오늘 지혜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정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우리(악인들이)가 죽이려고 들 때 그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살리실 거라는 논리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인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런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호하고 구해주실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반대되는 짓을 할 때
그런 짓을 하도록 보호하거나 구해주지 않으실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께서 보호하고 구해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지요.
문제는 그 악이 어떤 악인가 그것입니다.
그 악이 우리가 싫어하는 그런 악인가,
하느님께서 싫어하시는 그런 악인가?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싫어하는 그런 악들, 예를 들어,
병이나 실패 같은 것들로 우리를 오히려 시험하시고 단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선 그런 악에서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으시고,
어떤 때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주시어 우리를 진짜 악에서 보호하십니다.
진짜 악.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짜 보호받아야 할 것은 진짜 악들로부터입니다.
진짜 악은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인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께
가지 못하게 하고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 세상에서의 시련은 우리를 세상에서 떠나
오히려 아버지 하느님께 우리가 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사람들이 악한 의도로 주는
시련과 악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악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가지 않고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서.
그런데 오늘 지혜서를 묵상하면서 제게 더 강렬하게 다가온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To us he is the censure of our thoughts; merely to see him is a hardship for us.”
하느님의 아들이 악인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짐이 된다고 하는데
내게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람들은 힘이 되는가? 짐이 되는가?
이 점을 묵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