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촉진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3-5)
제자들은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의지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땅의 주민들을 구원으로 부르라고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돈주머니와 여행 보따리, 신발마저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바삐 다녀야 할 몸입니다. 주님의 이 지시는, 거룩한 사도들이 생필품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발을 신었느냐 벗었느냐가 무슨 큰 문제이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명하심으로써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살아가는 일을 온전히 당신께 맡기는 법을 배우고 실
천하기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시편 55.23)고 노래한 성인을 닮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당신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을 넉넉히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2
창조 – 밖으로 흐르되 안에 머물기
말씀을 선포하시오(2티모 4,2).
끝으로 “모든 일에 몰두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순수하신 하느님보다 온갖 사물에 더 빠져 있는 자신을 보거든, 여러분의 몰두를 검사해 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모든 일에 몰두하되”, 여러분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은 “네 머리를 들라’는 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네 머리를 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뜻은 이것입니다: 네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비우고, 너 자신을 하느님께 내드려라, 하느님께서 스스로 자신이 되신 것처럼, 너 자신이 되게 하여라, 그러면 그분은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네게도 하느님이 되실 것이다. 진실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나는 누구에게서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만일 내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네 머리를 들라”는 말의 둘째 뜻은 이렇습니다: 네 모든 일을 하느님께 맞추어라.
놀랍게도, 이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을 알아듣고자 한다면, 속세의 모든 것을 초탈하고, 현세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완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108)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1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요한 8-10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금요일 성인의 날
영적 삶의 샘(디다케에서 아우구스티노까지), 요한 봐이스마이어 외 지음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은 350년경 안티오키아에서 고위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바와 같이 그도 어른이 되어서야 바로소 세례를 받았다(372). 그 이후 4년 동안 안티오키아에 있는 수도원에서 수도자로 살다가, 근처에 있는 산으로 들어가 2년간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도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사제품을 받았다. 신부가 된 그는 안티오키아의 주교좌 성당에서 강론을 하는 데에 정열을 쏟았고,그 결과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금으로 된 입(金口)을 의미하는 크리소스토모(Chrysostomu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398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사목적인 일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또한 강론하는 일과 저술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시간 이상 지속되는 강론을 하기도 했는데, 풍부한 회화적 표현들과 비교, 비유,시대의 감각에 맞는 사유들과 예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의 주의력을 잃지 않았다. 그는 동방 교회에서 풍부한 저술을 한 사람 중에 속하고 그가 저술한 문헌들이 오늘날까지 비교적 많이 전해져 있다. 우리는 그가 남긴 문헌들에서 창세기, 복음서들, 바오로 서간들에 대한 주석서, 축일들에 행한 강론, 성인들에 대한 강론, 교의적이고 호교론적인 강론들과 많은 편지들을 볼 수 있다.(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