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와 묵상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가사 원문: 프리드리히 실러의)를 가톨릭 신학·영성 어휘로 정제하여 옮긴 번역·의역본입니다. (전례적인 엄밀한 번역이라기보다, 가톨릭 신앙 언어로 번역한 영성적 번안에 가깝습니다.)
1. 도입부
기뻐하라, 은총의 불꽃이여,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의 숨결이여.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간다. 그대의 빛은 모든 상처를 봉합하고 찢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묶는다. 원한으로 갈라진 이 세상에 화해의 잔이 다시 채워진다.
2. 형제애와 공동체
주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고 자비의 손길이 세상을 감싼다. 한 분 아버지의 자녀로 부름받아 서로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기쁨. 가난한 이의 눈물 위에, 연약한 이의 침묵 위에, 사랑은 십자가의 모양으로 서서 끝까지 함께 머문다.
3. 창조와 섭리
별들이 노래하는 질서 속에 창조주의 숨결이 살아 있고, 우주의 모든 생명은 그분의 뜻 안에서 안식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 계신 하느님,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 계신 하느님, 당신의 섭리는 폭력이 아니라 온유한 인도로 우리를 이끄신다.
4. 기쁨의 신학 (환희의 핵심)
환희는 소유에서 오지 않고 환희는 승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기쁨은 완성된다. 십자가의 어둠을 지나 부활의 새벽으로 나아가는 이들, 그들의 노래는 세상의 소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숨결이다.
5. 찬미와 신앙 고백
아버지를 찬미하라,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을. 그리스도를 찬미하라, 형제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을. 성령을 찬미하라, 우리를 하나로 묶는 사랑을. 이 기쁨은 명령이 아니라 은총이며 이 일치는 강요가 아니라 선물이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지고 주님의 길을 노래하며 걷는다.
6. 종결부 – 파견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라, 평화의 도구로, 화해의 증인으로. 환희의 노래는 끝나지 않고 삶으로 계속 울려 퍼지리라. 주님 안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이며, 모든 역사는
사랑을 향해 열려 있다.
묵상시
환희는 노래가 아니라, 낮아짐의 숨결입니다.
환희는 높은 곳에서 울리는 승리의 합창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들판 한가운데서 조용히 피어나는 감사의 숨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쁨을 쟁취해야 할 무엇으로 오해하며 더 많이 가지려 손을 움켜쥡니다. 그러나 기쁨은 붙잡을수록 사라지고, 내려놓을수록 남아 우리 안에 머무릅니다. 프란치스코가 그랬듯,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형제로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환희는 비움의 깊이만큼 우리 안에 자리를 만듭니다.
세상은 강한 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지만, 하느님의 기쁨은 늘 작은 이들의 호흡에 깃들어 있습니다. 상처 입은 형제의 눈빛 속에, 말없이 밥을 내어놓는 손길 안에, 이름 없이 하루를 견뎌낸 가난한 저녁의 침묵 속에 환희는 숨어 있습니다. 그 기쁨은 웃음이 아닐 때도 많고, 눈물과 구별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기쁨이 머무는 자리에는 언제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창조의 숨결 아래 숨을 쉬는 모든 생명들이여! 우리는 같은 하늘을 소유한 이들이 아니라 같은 하늘 아래를 함께 견디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경쟁시키기보다 서로의 짐이 되게 하셨고, 홀로 빛나게 하기보다 서로의 어둠을 덜어 주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환희는 완벽한 조화에서 나오지 않고, 서로 맞지 않는 삶들이 끝내 떠나지 않기로 선택할 때 비로소 태어납니다.
별들이 제 자리를 지키며 아무 말 없이 밤을 밝히듯, 우리 또한 눈에 띄지 않는 충실함으로 세상의 어둠을 견뎌냅니다. 하느님은 천둥 같은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시고, 빵 부스러기 같은 일상 속에서 “여기서 함께 머물자”고 속삭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간, 환희는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이 됩니다.
환희는 십자가를 모른 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나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그분의 길 위에서 조용히 자라납니다. 그래서 참된 기쁨은 항상 겸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늘 타인을 위한 자리를 자기 안에 남겨 둡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노래를 부르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고독 곁에 머물고, 한 번 더 용서하기를 선택하고, 다시 형제로 부르는 그 순간, 환희는 이미 우리의 삶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기쁨은 크게 울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처럼, 작고 조용하게,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게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면 됩니다. 기쁨은 그 자체로 온 몸으로 표현하는 매우 현실적인 복음입니다.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보물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어주시는 관계적 사랑의 샘에서 선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내어주는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나의 자유를 주님의 손에 도구로 내어드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에 굴복하고, 누리고, 나누는 우리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음에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믿음이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인과응보적인 믿음의 틀은 자기를 우상화 시킵니다. 우상은 우리를 사로잡히게 하고, 노예로 만들고, 결국 파멸시킵니다. 우리는 자기 왕국을 만들기 위한 이 틀에서 해방되어야 자유를 누리고 기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쁨이야말로 복음의 완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