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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십자가에 내리신 그리스도: 피에타 (1712-1728)

작   가 : 니콜라스 코스투 (Nicolas Coustou, 1658-1733)

크   기 : 대리석 230 X 280cm

소재지 : 프랑스 파리 노틀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은 어떤 견해를 가진 사람도 다 인정하는 파리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다 비슷하듯 프랑스 역시 현실적으로 가톨릭 국가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교회를 떠난 자유로운 나라가 된 처지에 아직 대성당이 파리의 상징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1163년에 기공해서 1330년 완공되었는데, 완벽한 비례에 절제미를 갖추고 기품있게 서 있는 이 대성당은 아름다움이란 공통의 갈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는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품처럼 안기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기에 매년 약 1200 만명의 사람들이 이 성당을 관광 목적으로든 순례의 차원으로든 방문하고 있다.

이런 현실과 함께 이 대성당은 가톨릭 신앙의 최고를 표현하는 대성당이면서도 대성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다양한 영욕의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하다.

 

이 작품은 대성당 제단 쪽에 있는 십자가의 특별한 표현이다. 보통 성당 제단의 십자가는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의 표현이 대종이나, 노틀담 대성당에는 몸체 없는 십자가와 피에타의 조각이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피에타는 성모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둔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 위에 놓고 안고 있는 유형을 말하며 이것이 11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강조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까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집중적으로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인성에 대한 강조는 부족했다.

 

이 영향으로 교회는 수직의 권위조직으로 변하면서 성직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신권을 전수받은 존재인양 처신하자, 교회는 예수님이 그토록 강조하신 수평적 차원의 형제적 인간미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관으로 변질되면서 부패의 나락에 빠지게 되었다.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던 끌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부터 시작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위시한 탁발 수도자들이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인간 예수의 모습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피에타에 대한 신심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다.

 

피에타에 대한 신심이 프랑스에 유행하게 된 데는 시대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세기에는 전염병, 백년전쟁, 불균형한 영양상태 등으로 인해 어린이 사망 비율이 높았고,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성모님을 자비의 어머니로 의지하는 신심이 생기면서 우리 어머니라는 뜻의 노틀담(Notre Dame)성당이 우후죽순처럼 프랑스 전역에 세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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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모습을 표현했기에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게 만들었다.

 

십자가에서 숨진 그리스도를 내려 어머니 성모님의 무릎 위에 그리스도의 몸을 받치고 있는 모습은 많은 신자들에게 성모님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심을 키우게 만들었다.


작가는 프랑스 리옹에서 출생해서 어릴 때 파리에 와서 조각을 익혔고자기 만의 독창성을 키우기 위해 로마로 가서 4년간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면서 이태리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바로크 작가로서 준수한 작품을 많이 남긴 알가르디(Alessadro Algardi :1598-1654)의 작품에 심취하면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자기가 익힌 지식의 장점을 복합하여 작가 나름의 독창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안타깝게도 프랑스 혁명 중 대부분 파손되었으나 이 작품은 용케도 파손을 피해 오늘 노틀담 대성당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기에, 피에타에 대한 주제로 4개의 작품을 남긴 미켈란젤로에 비겨 특별한 탁월성은 없으나, 노틀담 대성당이 겪어야 했던 역사 때문에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회를 느끼게 만들고 있다.

 

노틀담 대성당은 신자나 비신자를 막론하고 파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방문 장소이며 프랑스의 상징과 같은 건물이나 많은 영욕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 가톨릭의 상징과 같은 이 건물이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잠시 나마 어이없게도 무신론자들의 센터 역할을 하게 되는 슬프고 치욕스런 역사를 지닌 곳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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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까지 가톨릭교회는 왕권을 둘러쌓고 있는 왕족과 귀족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 프랑스 전체에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집단으로 변질했다. 막대한 조세 수입과 소작료 수입과 소위 오늘 이 땅의 일부 개신교에서 금과옥조처럼 강조하고 있는 십일조로서 교회는 거대한 착취 기관으로 변신했다.

 

교회가 지닌 이런 막강한 부와 권력은 결국 부패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 국민들의 생각은 성직자들의 부패는 바로 자기들로부터 착취한 토지세와 십일조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폭발된 것이 바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으며, 이 혁명은 정치 차원에 대한 불만이나 반대와 함께 부패한 교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폭발이라 볼 수 있다.

 

이 혁명에 의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던 기관인 왕정이 무너지고 십일조와 다른 토지세로서 신자들을 괴롭히던 성직자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기득권을 다 포기하면서 이 악업의 업보를 교회가 떠맡게 되어 교회에 대한 수모 수준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런 부패한 왕정과 교회를 무너트린 혁명정부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전혀 반대되는 무신론에 바탕을 둔 이성의 신에 대한 공경”(Cult of Reason)을 유일한 종교로 인정하고 권장했으며 오랜 세기 동안 프랑스를 지배했던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미신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멸시하면서 이성을 삶의 최고 기준으로 두는 무신론적인 견해가 프랑스의 공식 종교로 등장하게 되었다.


혁명 정부는 프랑스 국민을 인간다운 삶을 외면한 비참한 상태에 빠트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철저히 뿌리 뽑기 위해 주일을 폐지하고 열흘을 주기로 하는 새로운 달력을 만들기도 했다.

 

주일을 지킨다거나 성인 축일을 기억한다는 것을 다 불법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런 공포와 절망의 시기가 12년 계속되었다.

 

이 와중에 프랑스 전국에 걸쳐 많은 성당에서 성물과 성화들이 처참하게 파괴되거나 소각되었다.

 

노틀담 대성당 역시 엄청난 성물이 파괴되었다. 정문 앞에 있는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28명 왕들의 조각을 혁명군들은 프랑스 왕들의 조각으로 착각해서 모두 머리를 잘라버린 비참한 만행으로 이어지는 와중에 하느님의 뜻인지 이 피에타 상만은 극심한 훼손 상태에 이르면서도 적어도 파괴는 피하면서 이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혁명 기간 중 이들이 주장하는 이성의 신(Cult of Reason)을 공경하는 예식을 노틀담 대성당에서 거행하는 충격적 만행이 혁명군에 의해 자행되었다.

 

혁명이나 전쟁에 의해 다른 종교를 믿는 집단이 들어와 성당을 파괴하거나 훼손한 예는 있지만 대성당에서 가톨릭 교리와 반대되는 이론이나 실천을 거행하여 성당을 모독한 것은 참 드문 일이었는데, 이 대성당에서 바로 수치스런 슬픔의 만행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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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파리에서 소문난 여자를 성당 제단에 올려놓고 경배하는 만행을 저지르므로 피에타 성모상은 이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는 고통과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인류를 향한 큰 사랑의 표현인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성찬례 거행의 제단이 예수님을 모독하기 위한 이상한 여자를 올려놓은 제단이 되었고 성모님은 당신 아들을 무릎에 안고 이 참혹한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 보아야 했다.

 

당신 아들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당시 지도자들의 반대를 받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것처럼 교회 지도자들의 시대 징표를 읽지 못한 무지한 처신과 부패한 악행으로 노틀담 대성당은 더 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얼마 동안 성전의 기능을 폐쇄되면서 곡물 창고로 전락되었다.

 

우리는 교회가 외부 세력으로부터 어떤 박해를 받을 때 교회가 박해를 받았다는 정서로 즉시 순교자 망상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부패한 교회 지도자와 성직자들의 악행를 혁명군을 통해 하느님께서 철퇴로 치신 것이며 프랑스 혁명의 구호는 교회가 실천해야 할 평등 자유 박애와 같은 복음적 가치였다.

 

이런 과정에서 다시 엄청난 파괴를 겪어야 했으나, 1804년 나폴레옹이 로마에 있는 교황 비오 7세를 파리에 불러 황제로 즉위식을 위해 이 대성당을 사용하면서 황제의 즉위식장으로서의 체면치레를 위해 보수와 단장을 했다.

 

그러나 이 즉위식에서도 역사에 남는 헤프닝이 연출되어 몰락한 교회의 초라한 형색이 드러나게 되었다.

교황이 황제관을 축성해서 나폴레옹의 머리에 씌우고자 하는 순간 나폴레옹은 교황의 손으로부터 황제관을 낚아채어 자기가 쓰고, 왕비 조세핀의 관은 자기가 씌우는 무례한 처신을 함으로서 몰락한 교회가 보이는 교황권의 서글픈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참으로 엉뚱하게도 이 대성당이 빛을 보게 되었다.

 

낭만주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1862년 노틀담 꼽추(The Hunchback of Notre-Dame)라는 중세 이 대성당에서 있었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집시 여인과 흉측한 용모를 지닌 꼽추로서 집시 여인을 너무도 사랑하는 순수한 영혼의 대성당의 종직이 사이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작품화 하면서 이 대성당의 가치가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 삶에 있어 사랑과 자유로움이라는 복음적 가치를 전하는 새로운 장소로 부각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왕권과 교권의 부패하고 추악한 모습을 제거하기 위한 타당한 목적성 있는 혁명이긴 하나, 세상에 처음 사용된 단두대에서 목을 짜르는 길로틴이라는 형구까지 등장하면서 어느 혁명 못지않게 잔인한 혁명사를 남겼다.

 

프랑스 국민들은 이런 끔찍한 상처를 지울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을 재생하고 싶은 강한 열망이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인간미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고 이 작품이 부상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국가 홍보적 차원에서 이 대성당을 문화재 차원에서 수리하기로 결정했고 철저한 고증에 의한 대대적인 수리에 의해 대성당이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창고로 전락한 대성당을 제 기능을 찾게 만든 노틀담의 꼽추역시 너무도 순수하면서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꼽추와 집시 여인이라는 등장인물이 복음이 제시하는 사랑의 감동을 연출하는 것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치부를 폭로하는 것이 되었다.

 

이 작품에 아름다운 영혼으로 순수한 사랑을 하고자 하는 집시 여인에 음욕을 품고 악마의 그림자처럼 이 연인들을 해치고자 하는 대성당 고위층 성직자가 등장해서 세상 구도의 선과 악의 대결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후부터 노틀담 대성당은 더 이상 훼손되거나 평가 절하되는 일이 없이 가톨릭 대성당으로서 프랑스 정부의 모든 애환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식 장소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이 대성당이 서서히 종교성을 회복하면서 프랑스가 지키고 기억하고픈 고귀한 품위를 재현하는 장소로 변모했다. 이차 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미사가 이 성당에서 거행되면서 프랑스가 지키고픈 자존심의 확인과 프랑스의 미래 계획을 하느님께 빌고 맡기는 종교적 차원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 대성당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톨릭 신앙이 남긴 아름다운 유산 종교적 표현의 아름다움에 도취되면서도, 이 대성당이 겪어야 했던 영광과 수모를 회상하면서 진정한 종교성이 무엇인지 가슴에 손을 얹게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프랑스 교회사안에서 겪어야 했던 영욕의 시간을 지켜 본 성모님의 마음으로 다시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오늘의 교회가 신경을 써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고 있다.

 

오늘도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새 1,24) 라는 성 바울로의 말씀을 증거 하고픈 크리스챤들의 염원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영욕의 역사가 뒤얽힌 대성당을 지키고 있다.

 

오늘 노틀담 대성당은 국가 행사 외에도 전례를 통해서도 신자 비신자의 벽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가톨릭 신앙의 고귀함과 기품을 전하고 있다.

 

매 주일 노틀담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성식 만과”(Vesperas Solemnes)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창출한 많은 아름다움 중에 가톨릭 전례가 주고 있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알리는 좋은 증거로 정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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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바하(Bch)의 칸타타는 이 성당의 아름다움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이 대성당의 고귀함을 너무도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 주소를 클릭하시면 대성당을 배경으로 연주되는 바하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https://youtu.be/a3IjKUH3z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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