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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 백색의 십자가

by 관리형제 posted Jan 2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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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백색의 십자가 (White Crucifixion)
크기 : 155 X 140cm (켄버스 유화, 1938)
장소 : 미국 시카고 예술 전시관


성미술 주제에 있어 <그리스도의 수난>은 양이나 질에 있어서 단연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과거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전혀 다르게 작가가 살고 있던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과 그 과정에 있었던 유태인의 수난을 배경으로 그렸기에, 이 비참한 전쟁을 십자가 사건과 연관시킴으로 과거 어떤 십자가에 대한 그림 보다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생각할 면을 제시한 작품이다.

먼저 작가는 유대교 신자로서는 드물게 그리스도를 이해했는데, 이것은 그가 사귀었던 크리스챤 친구들의 덕분이었다. 그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편협함이 없이 모든 것에 있는 선과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했기에, 폭넓은 교우 관계를 가질 수 있었고, 그 중에 특히 그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쟈크 마리땡 내외였다

쟈크 마리땡 (Jacques Maritain, 1882-1973)은 프랑스 여건으로는 좀 예외적으로 프로테스탄 가정의 배경에서 태어나 솔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회의주의적 분위기에 휩쓸려 사회주의에 빠지기도 하면서 사상적 방황을 하던 중 카톨릭 학자인 베르그송(H. Bergson)과 레옹 볼로와(L. Boly)의 영향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토마스 신학(Thomism)의 전문가로서 탁월한 신학과 깊고 순수한 신앙이 조화된 휼륭한 신자생활을 하였고, 그의 아내 라이샤 마리땡 (Raissa Maritain, 1883- 1960)은 유대인으로서 철학에 심취하면서 쟈크 마리땡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향으로 유대교에서 개종해 크리스찬이 되었으며, 이들 부부생활의 아름다운 기록인 “위대한 우정 (Les grandes Amities)”은 오늘도 읽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는데, 이들의 개종을 도운 이는 바로 작가인 레옹 볼로와였다.

철학은 의심으로 시작해서 논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고 신앙은 믿음으로 시작하는 진리 추구의 전혀 다른 길인데, 마리땡 부부의 개종은 철학과 전혀 무관한 레옹 볼로와의 감화에 의해서였고, 레옹 볼로와의 신앙 여정 역시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레옹 볼로와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작가로서 공산주의에 심취해 있었는데, 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쓰고자,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어느 성탄절날 노틀담 대성당 저녁기도에 참석했다.

비판하고 헐뜯을 영감을 얻을 생각이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아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기둥에 몸을 숨기듯 움츠리며 참석한 저녁기도에서 살돈느 소년 합창단이 성모찬송인 <마니피캇: Magnificat>을 부를 때,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에 성 바오로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자기의지와 전혀 무관한 하느님 은총의 인도를 느끼면서 <여기에 바로 진리가 있다>란 참으로 자기 힘으로 주체할 수 없는 강한 힘에 이끌려 교회를 반대하던 생각에서 벗어나 개종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반교회적이었던 공산당 지성인이 회심하여 세례를 받자, 프랑스 사회에 큰 화제거리가 되었으며, 쟈크 마리땡은 이런 볼로와의 영향으로 그를 대부 삼아 세례를 받게 된다.

쟈크 마리땡은 아내와 사별 후 사르르 후꼬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해 여생을 수도원에서 기도와 저술에 몰두하다가 선종했는데, 샤걀은 이런 아름다운 영혼들의 영향으로 개종이 아닌 유대교에 머물면서도 크리스챤 신앙을 수용하고 이것을 자기 작품으로 표현하는 <익명의 크리스챤>이 되어 <골고타: 1912>, <십자가: 1951>, <출애굽: 1951> 등에서 그리스도를 표현했으나, 이 작품은 어떤 작품에서도 표현하지 못했던 시대적 특수성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정확한 이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자기 동족임과 동시에 자기들의 신앙을 배신하고 자신을 메시아라고 부른 거짓 예언자이기에 박해와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요한복음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 <유대인>이란 단어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로마의 종교가 되면서 박해받던 처지에서 가해자의 처지가 되어 유대인들을 박해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무지하고 순박한 신자들은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원수로 여겨 미워하고, 교회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유대인을 박해하거나 권리를 제한하고 거주제한을 해서 모든 사람을 다 형제로 사랑하라는 크리스챤으로서 부끄러운 전과를 남겼다. 한마디로 유대인과 크리스챤들은 동일한 야훼 하느님에의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서로 간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 분담을 번갈아 해 왔다.

이 그림은 바로 히틀러로 시작된 유대인 인종청소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십자가 쪽에 붉은 모자를 쓴 나치 당원들이 유대인 회당을 불지르며 파괴하자 불길은 회당을 치솟고, 회당에서 사용하던 의자와 성물들이 밖으로 팽개쳐져 있는 아래, 유대교의 경전 두루마리인 토라(Torah)가 불타고 있으며, 이 불길을 가로지르며 유대교 사제인 랍비가 황망히 도망을 치고 있다.

오른쪽 십자가 쪽에선 붉은 깃발을 든 폭도들이 유대인 마을을 습격해서 집을 불태우며 약탈과 온갖 만행을 저지르자, 유태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려둔 채, 배를 타고 도망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흔들며 비통한 외침을 계속하고 있다. 십자가 위의 하늘나라에서는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이 이런 아비규환의 참상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예수님의 발길엔 유대인 신앙의 상징인 메노라 촛대의 일곱 불길이 타오르면서 십자가에 달린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고통 앞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십자가에 못 박힌 무능한 모습으로 계신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동족의 후손들인 유대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끌어안기 위해, 그들의 고통 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누워계신다. 작가는 여기에서 유대인과 크리스챤의 관계만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전쟁과 미움으로 얼룩진 악순환의 인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해결사로서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신명기 6장 4-7절의 말씀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 쏟아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구약의 말씀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대결하라는> 동태 복수법(Lex talionis)으로 실천한 것이 유대인과 크리스챤이 공통적으로 저지른 잘못이었으나,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이 비참한 아픔을 통해 예수님 산상설교의 가르침만이 악순환의 역사를 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임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샤갈에 있어 그리스도는 <인생에 대해 가장 심오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며, 삶의 신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 이었구나” (마르꼬 15;39)라고 말한 이방인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일깨우면서 “그리스도 예수가 지니셨던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 (필립보: 2장 6)만이 역사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십자가를 주제로 한 그림이 암울한 색깔임과 달리, 이 작품이 백색의 십자가를 표현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주는 희망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생소하게 그려진 백색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를 때 어떤 절망의 산도 움직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유대교인으로서 한계점을 극복하고 그리스도를 역사의 중심으로 보는 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감동을 심어 준 쟈크 마리땡 내외와 레옹 볼로와의 우정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향기롭고 우아한 면을 발견했으며, 선과 사랑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매력을 줄 수 있는 가톨릭 신앙의 아름다움과 멋이 이 작품의 밝은 색깔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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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붉은 색 배경의 부부 (1983)
크기 : 81 X 65.5 (유화 캔버스)
소재지 : 개인소장


예술이 지닌 큰 장점 중 하나는 어느 분야 보다 더 오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샤갈 역시 장수를 했고, 연륜을 더 할수록 작품 활동이 양과 질에 있어 더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말기 작품으로 그의 인생과 작품 전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선 그의 인생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파란만장했다. 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독일, 미국, 프랑스를 떠도는 유랑민 생활을 했으며, 결혼 생활 역시 첫 번째 아내와 사별, 두 번째 아내와 이혼, 1953년 세 번째 아내인 발렌티나 브르도스키와 결혼해 죽을 때 까지 30년 이상 행복하게 살았다. 세 번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든 큰 상처였으나, 그는 이것을 어둡게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신선한 새 출발의 기회로 받아 들였으며, 특히 마지막 결혼은 그의 인생 뿐 아니라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큰 행복과 도약의 시기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기에 샤갈의 작품은 시편 136편에 나타나고 있는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짖노라> 같은 바빌론 유수 이래 자기 고향을 떠나 온 세상에 흩어져 살아야 하는 유대인들의 슬픔과 회한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한 여정에 있는 사람의 강한 그리움과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 희망에 차 있었기에, 슬플때나 기쁠때나 마치 슬픔이나 상실감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결 같이 행복할 수 있었다. 이 그림은 세 번째 아내 발렌티나와의 행복한 삶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먼저 제목처럼 붉은 배경의 바탕에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오른 팔로 다정히 껴안은 자세로 누워 있는데, 지난번 살펴 본 <인간의 창조>에서도 아담의 아랫 편에 껴안고 있는 연인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포옹하고 있는 연인들은 그의 많은 작품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여인은 아직 약간은 수줍은 표정이나 남자는 여인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소유 하려는 자세로 여인을 안고 있으며, 둘만의 공간을 소유하고픈 갈망의 눈빛으로, 자기들의 밀회를 지켜보는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으며 남자가 여인을 껴안으면서 버려진 책이 있다.

이 연인들의 윗부분에 있는 푸른색들은 사랑의 붉은 색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푸른 색의 복판에 화가가 팔레트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데, 꽃병이 마치 화가의 손에서 미끄러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껴안은 연인의 옆에 놓인 책은, 여인을 사랑하기 위해 남자가 포기해야 할 중요한 부분의 표현이라면, 화가 곁에 미끄러지듯 보이는 화병은 팔레트를 들고 창작을 해야 하는 창조자로서의 포기의 모습이다. 소중하고 값진 사랑을 얻기 위해 포기와 상실 체험이 필수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인생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 어려움들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샤갈의 작품에 쉼 없이 등장하고 있는 닭, 꽃 등은 그의 어린 시절 고향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다운 것들이었으며,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의 내용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그림을 통해 샤갈은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시련과 고난으로 이어진 그의 일생이지만 행복했고, 더 행복했고 가장 행복한 나날의 기억들을 일깨우면서, 사랑했기에 행복했던 그의 이력서를 펼치고 있다.

1958년 미국 시카고에서 행한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을 때,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이며, 수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 전해 온 새롭고도 오래 된 종교이다.”

샤갈의 그림은 숨막히듯 짜여진 틀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상상과 몽환의 세계로 인도해주기에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의 받으며 현대인들의 삶에 꼭 필요한 꿈과 생기를 제공하고 있다.

샤갈을 <색체의 마술사>라고 부르는데, 그는 자기 그림 색체의 특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그림의 색깔은 사랑입니다.”

추상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의 생애를 통해, 그의 작품을 통해 너무나 정확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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