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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부르심

by 관리형제 posted Nov 3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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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도 베드로와 안드레아의 부르심
제작년도 : 1389- 1404
소 재 지 : 미국 LA. 폴 게티(Paul Getty) 미술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순례의 삶을 선택한 성 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무소유는 자신이 선택한 삶의 필수적 요청이었기에 모든 점에 있어서 간소함과 검박함을 강조하셨으나, 성찬에 관련되는 제구와 성서에 대해서는 대단한 관심과 존경심을 보이셨으며, 자기의 제자들도 이것을 계승하도록 유언에서까지 이것을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주님의 이름과 말씀이 기록된 책을 부당한 곳에서 발견하면, 그것을 주워 모으기를 원하고, 또한 다른 이들도 이것을 주워 모아 합당한 곳에 모시기를 부탁합니다(유언 13).”

이 작품은 15세기 이태리 볼료나(Bologna)에서 무명의 작가, 아마도 수도자에 의해 제작된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미사 경본의 한 부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리스챤 문화권, 특히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경배에 사용되는 모든 전례 용품에 대해서는 대단한 정성을 보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불교 승려들이 불경을 필사할 때 일자천배(一字千拜)의 정성으로 한 것처럼, 중세 수도자 역시 성서나 미사경본을 필사할 때 대단한 정성을 다해서 작업 자체가 정성어린 기도요, 하느님을 향한 경건한 봉헌이 되도록 했으며, 이 작품도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내용은 루가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제자로 부르는 것인데, 겐네사렛 호수의 낭만이 풍기는 서정적인 모습이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아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 저희가 밤새토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지게 많은 물고기들을 잡게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 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물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 (루카 : 5, 4-6, 8-9, 11)

이것은 새로 태동하는 교회의 책임자로 불리게 되는 베드로와 그의 형인 안드레아의 소명에 관한 것인데, 이 장엄하고 긴장되기 쉬운 장면을 너무도 여유 있는 해학으로 처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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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왼편에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께서 붉은 옷을 입고 서 계시는데, 붉은 색은 인성(人性)의 상징이기에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시어 인간적인 모든 것을 나누고 사시며, 우리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분임을, 그분 인성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이지만 하느님의 아들로서 이 장면에서처럼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신 주님의 모습은 너무 특징이 없는 평범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땅딸막한 키에다, 그 얼굴 표정이나 전체 용모 어디에서도 번뜩이는 지성이나 위엄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인상의 모습으로 갑자기 얻은 횡재로 정신이 없는 모습의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바라보시며, 제자로 부르는 당신의 명령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살피시듯 응시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고기가 많이 잡힌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그런 기적을 이루신 주님께 정신이 팔려 있다. 겐네사렛 호수라면 손바닥 읽듯 환히 아는 그가 그날 따라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못해 망연자실한 심정일 때,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그물이 찢어지게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고기잡이에 관한한 자신만만했던 자신감이 무너지면서 “주님 저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라는 자기 고백을 하면서 사람 낚는 어부로 불림 받은 자신의 새 운명을, 당황함속에서도 과거에 대한 모든 미련을 시원히 떨쳐 버리고 당당히 받아들이게 된다.

그 옆에 약간 뚱뚱보의 모습으로 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잡고 갑자기 얻은 횡재를 꿈인지 생시인지 의아해 하는 모습의 베드로의 형 안드레아가 있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얼굴 표정은 주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예기치 못한 횡재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충격과 당황함을 드러내고 있다.

주님과 그들 사이에 있는 회색빛의 나무는 자신도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에 의해 뿌리채 들려 위로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지금까지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던 두 제자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사도로 변신되는 과정은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큰 힘에 말려드는 것과 같음을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란 인간의 척도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나무가 뿌리채 끌려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하느님의 힘에 말려드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던 시골뜨기 어부들이 당시 세상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누리던 로마 제국을 거점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새로운 일꾼으로 불림 받은 것은 하느님 무상의 은총이요 거부할 수 없는 끌림임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도 평범한 모습의 예수님이지만 제자들보다 더 넓은 황금빛 후광에는 붉은 십자가의 모습이 완연한데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기가 많이 잡힌 횡재에 끌려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십자가의 지혜를 가르치신 스승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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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작가는 안드레아와 베드로를 상하로 배치하여 그들의 사명을 전하고 있다. 안드레아 사도는 순교 순간에 십자가형을 받은 것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반면,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교회의 으뜸으로 불림을 받으면서 그에게 맡겨진 사명의 상징인 천국의 열쇠(마태오 16, 19)를 쥐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안드레아 사도는 그리스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서기 70년경 자기를 제자로 불러준 스승 예수처럼 십자가형을 당했기에, 이 상징적인 것을 통해 그의 충실성이 주님을 닮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두 사도의 배경을 금색으로 처리한 것은 이 제자들의 지상 여정은 여느 어부처럼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다 순교한 것이지만 이것은 이 세상 여느 중생들이 꾸려가고 있는 지상의 사건이 아니라 비록 지상에서 이루어 진 것이긴 해도 하느님의 안배에 의한 천상의 사건임을 표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가는 주님의 선택에 의해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의 수위권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안드레아에게 새로운 조명을 하고 있다.

이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당시 그리스도 제자직의 싱징인 교황직은 이미 더 이상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베드로와 연상시키기 어려운 부패와 혼란의 나락에 휩쓸리고 있었다.

사도 베드로를 위시한 초세기 교황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순교 성인들이었으나 교회가 팽창하고 세력이 확장되면서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이기 이전 정치적 군주로서 암투에 휘말리게 되면서, 나날이 성덕의 맑은 향기를 상실하게 되었다.

첫 번째 교황이며 안드레아 사도의 동생인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루까 22: 54- 71) 허약한 인간이었기에, 그 후계자 역시 중세기에 바로 부정적이며 안타까운 모습으로 스승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다.

급기야 1309년 교황 글레멘스 5세는 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기면서 두, 세 명의 대립 교황이 생기게 되는 등 혼란에 휘말리다가 급기야 부패와 타락의 상징인 알렉산더 6세 같은 교황을 배출하면서 종교개혁을 맞게 된다.

1348년 유럽 전역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부패한 교회에 내리는 하느님의 징벌로 여기면서 공포에 휘말리게 되고 종교 생활에 대한 심한 회의를 느끼면서 교회를 떠나 새로운 복음적 삶을 외치는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되었다.

종교개혁이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발이었다면 부패의 상징적 위치가 바로 교황직에 있었기에 사도 베드로는 더 이상 복음적인 상징으로 부각될 수 없었다.

자체 정화와 종교개혁으로 실추된 교회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시작된 반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에서 타락한 교황들의 행적으로 실추된 베드로의 위상 대신 감동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화된 교회의 이콘으로 사도 안드레아를 등장시켰다.

로마를 거점으로 활동한 동생 베드로와 달리 더 먼 그리스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십자가형으로 순교한 안드레아 사도는 타락한 교황들의 행적으로 실추된 교회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는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도였기에, 안드레아 사도는 이 역할을 맞게 되면서 이 시대의 종교화에 안드레아 사도가 많이 등장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처럼 동생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던 당시 너무도 황홀해서 정신이 빠진 동생을 대신해서 물고기로 가득 찬 그물을 끌어올려 동생 베드로를 도왔던 안드레아는 이제 새로운 방법으로 동생 베드로를 돕게 되었다.

반종교개혁 운동의 주역을 맞게 되는 예수회원들은 실추된 교회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화려한 장식의 바로크 양식을 선택해서 교회를 설계했으며,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1924)의 작품인 오페라 토스카 (Tosca)의 무대로 유명한 로마의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Andrea della Valle) 대성당은 바로크 건축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동생을 도와 교회를 일으킨 사도 안드레아의 영광을 전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미사경본에 두 번 나타나고 있는 안드레아 사도의 모습은 교회가 어두움에 휩싸인 순간에도 자신의 삶으로 빛을 던지며 교회를 쇄신시켜야 하는 그리스도 제자직의 참 의미를 생기 있고 매력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성 안드레아 사도는 혈육으로 베드로 사도의 형제일뿐 아니라 사명을 서로 나눔에도 형제가 되어 방황하는 신자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교회의 아름다움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저명한 미술학자 프란시스 헨리 테일러는 <위기의 시대에 미술 작품에 반영된 고대의 미소>에 관해 쓴 바 있는데, 이 작품 역시 어두움이 깔리던 시절의 작품이면서 예수님을 위시하여 두 사도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 해학적인 면을 보이며 절망이나 불안에서 헤어날 수 있는 여유를 제시하고 있다.


삶의 여유로움과 해학적 멋은 크리스챤 신앙의 중요한 매력이며 표징이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신라 시대의 석불, 한국 불교 미술의 큰 자랑인 미륵반가사유상에서도 아름답고 여유로운 미소를 읽을 수 있는데, 교회가 암울했던 시대에 있어서도 교회 미술이 절망과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많은 해학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성스러움 속에 들어있는 멋과 여유로움, 어떤 슬픔과 어둠으로도 지워질 수 없는 큰 여유로운 웃음과 기쁨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 1900)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웃음을 포함하지 않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작가는 크리스챤 신앙 안에는 이 세상 어떤 곳 보다 더 큰 웃음, 삶의 여유로움이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보이고 있다. 인간이 너무 많은 죄를 지어 하느님이 분노하신 것 같은 순간에도 하느님은 인간을 돌보시고 사랑하시기에 신앙은 어떤 처지에도 낙관적인 것이어야 함을 작가는 제시하고 있다.

첫 장에 그림과 함께 쓰여있는 오늘 미사의 입당송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리라(마태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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