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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이트 듀러-헬러 제단화

by 이요한 posted Nov 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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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헬러 제단화 (Heller Altarpiece : 1509)
작가 :알브레이트 듀러 (Albrecht Durer: 1471- 1528)
크기 : 목판 혼합안료 :190 X 260cm
소재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역사 박물관

중세 교회의 큰 진통기였던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 독일 뉴른베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는 이 시대 정신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가톨릭 신자였다가 부패한 교회 모습에 대한 실망과 함께 루터의 참신한 개혁 정신에 공감해서 개신교로 개종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가 세력이 커지면 관료집단의 근성을 띄면서 부패해지는게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교의 교훈이고, 당시 가톨릭 교회는 이런 전철의 모델이 었기에 복음의 참신함을 찾는 사람들은 교회에 실망하고 개신교로 떠나게 되었다.

이런 혼란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게 종교적 광기이며 개신교와 가톨릭의 분쟁 과정에서 많은 성화나 성상이 파괴되는 안타까움이 있었으나 작가는 개신교로 개종한 후에도 성미술에 대한 이성적 처신을 할 수 있었기에 많은 걸작을 남겼다.

이 작품은 상업 도시였던 뉘른베르크의 부유한 상인의 부탁으로 제작된 것이다.
성당에 성물을 봉헌하는 것은 가정에 필요한 은혜와 지은 죄를 보속하는 길로 여겼기에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성당에 성물을 봉헌하는 것은 고귀한 신앙행위로 여기게 되었다.

이 작품은 성모님의 승천과 하늘의 영광을 주제로 했으며 , 천상과 지상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즉 하느님 백성의 어머니이시기에 지상 삶에서의 그분의 모범은 모든 크리스챤들의 귀감이된다.

구세주의 어머니와 하느님의 딸로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기에 승천과 천상의 영광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사진2.jpg

성모님이 승천하셔서 빈 무덤을 사도들이 죄우측으로 나눈 반원형으로 둘러 쌓고 있다.
제자들의 출신 성분이 다양했음을 드러내듯 제자들의 모습 역시 다양하다
의상이나 자세 역시 다양하다
다만 제자들이 입은 옷이 당시 수준으로는 고급에 속한 것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직전 르네상스 예술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지냈던 체험이 여과된 것이다.

사도 토마는 성모님의 승천하셔서 빈무덤을 응시하고 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의 부활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 선교 여정에서 돌아왔을 때 성모님이 승천하셨기에 몹시 마음 안타까워 하며 빈무덤에라도 가보겠다고 고집을 피웠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성모님의 승천을 확인하려는듯 무덤을 응시하고 있다.

등을 보이며 서 있는 두 사람은 사도 바울로와 베드로인데 , 베드로는 벗은 발이 보이게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3.jpg

지상계와 천상계의 경계 지점에 작가가 천상 여정의 안내역을 맡은 듯 게시판을 든채 , 곳곳히 서있다.
중세 예술에서 간혹 작품의 어떤 주인공에 자신을 그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작가 역시 중요한 부분에 자신을 등장시킴으로서 예술가로서의 자기 역할은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기능인이 아니라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예언자의 역할임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가 서 있는 배경에는 뉴른베르그의 모습이 보인다.
성모승천이 바로 자기 현장의 사건으로 인식시키고자 하는 배려이다.

사진4.jpg

천상계에서는 게루빔들의 옹위속에 대관 받으실 성모님이 앉아계신다.
성모님의 옷은 감청색인데, 이 염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해서 쓰던 것으로 너무 고가의 염료였기에 성화 작가들도 성모님에게만 이 색깔을 사용했다.

성부와 성자께서 양쪽에서 성모님에게 씌울 왕관을 들고 계시며 , 그 왕관 위에 무지개 광휘속에 비둘기 모습의 성령이 보인다.

성부께서는 흰 수염을 기른 근엄하면서도 후덕한 노인의 모습으로 계시고, 그 옆에 성자는 십자가의 죽음을 상기 시키는 붉은 색깔의 옷에 오른쪽 옆구리를 드러낸 모습인데 피묻은 못자국도 보인다.

그런데 성자께서는 당시 교황이 쓰시던 삼중관을 쓰고 계신다.
교황의 삼중관(Tiara)는 중세기부터 교황직의 상징과 같았는데, 성자에게 교황관을 씌운 것은 당시 실추된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반작용의 태도 표현이였다.

교황들의 부패에 의해 복음적 권위가 실추된 안타까운 처지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 교황은 그리스도와 같다는 표현을 함으로서 실추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느꼇기에 예수님을 교황의 모습으로 표시하게 되었다.



`르네상스 정신이 투철했던 작가는가톨릭 교회의 부패한 모습에 실망하고 개신교로 개종했다가 여기에서 역시 실망을 하게 된다.

그가 복음의 순수한 증인으로 믿었던 말틴 루터 역시 자기 세력 확장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패한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과 다를바 없는 또 다른 변질자임을 발견하면서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말틴 루터의 가르침에 동조하는 농민들이 크리스챤적인 형제애에 바탕을 둔 평등사회 구현과 귀족들의 압박과 착취에 대한 반대 표시로 반란을 일으키자 루터의 큰 지지 세력이었던 귀족들이 루터를 자기 권력 유지의 장애로 여기게 되었다.

이때 자기 지지 기반에 위험을 느낀 루터는 재빠르게 귀족 편에 붙어 농민들을 비난하면서 농민반란 진압에 앞장서는 서글픈 작태를 연출하는 것을 보고 작가는 개신교도 떠났다.

종교가 추종자들이 많이 모이면서 세력이 비대해지면 순수성을 잃고 자기 집단의 실리를 더 우선시하는 이익 집단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가톨릭에 대한 실망을 개신교에서도 겪어면서 성숙한 신앙 ,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바탕을 둔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숙한 열기에 빠지게 되고 이것은 그의 성미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희원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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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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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에디따 2010.11.22 10:05:49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은가봐요.
    고맙게 읽고 옮겨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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