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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보엘 - 인생무상

by 관리형제 posted Nov 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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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인생무상( Vanity: 1663)
작 가 : 피에르 보엘 (Pietre Boel: 1622- 1674)
크 기 : 207 X 260cm
소 재 지 : 프랑스 릴레 Musée des Beaux-Arts

성미술의 주제가 성서를 중심으로 한 사건을 통해 하느님을 따르라는 권고의 방향과 함께 이 세상의 허망한 실상을 제시하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라는 권고를 하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교훈적인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그중에 대표적인 하나가 구약의 지혜서에 속하는 코헬렛이다.

코헬렛은 다윗의 아들로서 대단한 지혜를 가진 인물이었으며 인생의 실상을 깊이 관조한 후 남긴 글들이기에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들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렛 1,2).

이렇게 서두를 던진 저자는 허무의 실상을 조목조목 제시하면서 독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데, 2장에서 세상 사람들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이승의 복락 실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너를 즐거움으로 시험해 보리니 행복을 누려 보아라 !
그러나 보라! 이 또한 허무였다”(코헬렛 2, 1).

저자는 이어 인간들에게 큰 유혹과 올가미가 되고 있는 권력과 재물의 허구성을 제시한 후 행복의 역설적 상대성을 제시하고 있다.

“명성이 값진 향유 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 보다 낫다”(코헬렛 7장 1- 2).

이어 저자는 인간들이 얻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모든 것들의 공통점이 허무임을 강조한 후 하느님만이 참된 행복의 원천이니, 신앙만이 참된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 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야 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렛 12장 14).

작가는 바로 이것을 전하고자 하는 교훈적 내용을 주제로 그렸기에 표현에 있어 예술성 보다 교훈성이 강조되어 조선시대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서민성이 풍기는 작품이지만 표현 하나 하나에 대단한 교훈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시각적 형식의 강론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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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영국인 하워드 카트가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에서 발견한 투탄카멘(Tutankhamen 1370- 1352 B.C)왕의 무덤은 이집트의 지배자였던 파라오의 생활이 얼마나 화려했던 지를 단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죽은 파라오임에도 불구하고 도굴되지 않은 그의 무덤 안 부장품은 하나 같이 값진 것들이라 오늘도 카이로 국립 박물관에서 대단한 빛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내용 역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값진 것들을 펼쳐 놓고, 이것의 허상과 함께 삶의 실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웅장하고 긴 아치로 이어진 회랑에 서 있는 여신상은 바로 이교 신전의 상징이다.
이교 신전일수록 그 대단한 시각적 효과는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족하다. 장엄한 음악, 인간적 이익이나 친교의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달콤한 요소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마비시키고 있다. 그 시각적 효과가 주는 장엄함에 매혹되어 이런 외형적인 분위기에 쉽게 휩쓸러 이성을 마비시키면서 서서히 광신자로 변질되면서 야훼 하느님을 떠나 교주가 자기 편리에 따라 만든 인조 하느님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부류는 믿음에 몰두할수록 더 건전한 상식이나 이성을 망각하면서 이상해지는 그런 광신자의 모습이 바로 이교 신전의 상징이다. 건강, 성공, 현세 축복과 같은 현세적 가치를 신의 이름으로 살 수 있다는 복권을 팔고 있는 이교 신전에는 예나 오늘이나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공산주의 창시자인 레닌은 당시 러시아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보면서 종교를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아편으로 매도했으나, 현대 우리 주위의 잘못된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 일으키는 문제는 아편의 수준을 넘어 독약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처지에서 작가는 종교의 독성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이교의 허구성과 사기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야훼 하느님께 몰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나라 신들을 붙좇는 자는 저희들 고생을 더할 따름이오나
나만은 그들처럼 피의 전제를 아니 올리리이다.
신들의 이름을 입에 아니 올리리이다”(시편 1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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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값진 것들이 많으니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 맨 위에 월계수로 예쁘게 장식된 해골이 놓여 있다.

해골은 죽음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가 덮여 있는 것은 죽음으로 끝날 인생을 영원히 지속되는 양 착각해서 명예와 부, 건강과 젊음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집념으로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 이것이 성공의 모델인양 착각하는 산 인간 말로가 어떠함을 충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음 성경구절을 상기시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자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장 17, 19-20)

해골에 걸린 월계수를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착각하며 우쭐대는 인간들의 행렬이 오늘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는 월계수 잎 아래에 있는 해골을 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풍요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젊음이나 건강, 미모에 대단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이것을 지키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여기로 사람을 유인하기 위해 동원되는 모든 것들은 바로 해골위에 얹힌 월계수와 같다. 앙상한 해골은 우리에게 삶의 실상을 보도록 인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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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지상 권력의 상징들인데, 회색의 터번은 무슬림 군주의 모자이며 , 지구의 아래 왕관은 유럽 군주의 상징인데, 이 둘은 다 지상 권력의 상징들이고, 중세기 유럽은 무슬림 군주들과 크리스챤 군주들의 세력 다툼의 각축장이 된 시대가 있었고, 또 양자들은 자기 세력권 안에서도 서로의 세력 확장을 위해 혈안이 되었다.

무슬림 교도는 고사하고 크리스챤 국가들 사이 프랑스와 독일, 프랑스와 영국, 이태리와 프랑스는 같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했던 부러운 역사의 근저는 바로 권력 다툼에 있었다. 더욱이 놀랍고 부끄러운 것은 사랑과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교황과 주교들이 만든 권력과 연루된 것이다.

중세기 어떤 교황은 황제와의 권력 다툼을 통한 자기 세력 확장을 위해 전쟁에 참가하기 까지 했고,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주교 역시 복음적 목자의 상징이 아니라 종교적 세력을 배경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방 군주의 모델로 등장한 예가 많았기에, 교회 역시 권력의 무상성이나 허구성을 증거하기보다 여기에 도취되는 실수를 범한 역사의 한 부분을 제시하고 있다.

하얀 모자는 교황직의 상징이며 그 옆에 비스듬히 놓인 지팡이는 주교직의 상징인데, 권력 앞에선 성속(聖俗)의 구분이 없이 추태를 연출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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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들은 값진 예술품들이다. 부와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확인을 값진 예술품으로 과시하는 경향이 많았기에 많은 왕실이나 귀족집안들은 여러 값진 예술품들을 수집하는 데 많은 노력을 바쳤으며, 이런 명품들의 소장이 자기 신분의 고귀함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강했으나, 이 역시 서글프고 허망한 것임을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모은 많은 예술품들이 개인의 사치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리개 수준에 머물거나 아니면 그 가치를 모르는 무지한 후손들에 의해 행방불명이 되기도 했다. 이런 사치스러운 취미를 일삼던 왕정이 무너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 소장품들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예술품은 그래도 다행이지만, 사치와 허영으로 이것들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생각한 사람들에겐 이것이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허상의 가면과 같았다.

예술이란 미명으로 많은 것들이 신앙의 바탕이 없을 때 보일 수 있는 허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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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보물들이 쌓여있는 한 곁에 값진 석관(石棺)이 놓여 있다. 이것의 화려함이나 규모로 봐선 지상에서 대단한 권력을 누렸던 권력자를 위한 것일 수 있으나, 아무리 화려해도 이 석관은 그 안에는 시체가 들어 있는 죽음에 흔적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석관을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여기며 자기 죽음의 흔적을 화려하게 남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마치 죽음 후에 까지도 자기 성공적인 삶의 기억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석관에는 코헬렛 1장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구절이 쓰여져 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복음적 메시지는 바로 세상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는 모든 부와 권력은 바로 코헬렛의 권고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기에, 정신을 차려 세상을 바로 살라는 강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작가는 세상살이의 허망감의 강조가 작품의 목표가 아니라, 이 실상의 확인을 통해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려 참 생명의 길을 찾으라는 초대를 하고 있는데, 시편 120편의 다음 구절을 상기시킨다.

“산들을 우러러 눈을 드노라 어디서 구원이 내게 올런고
구원은 오리라 주님한테서 하는 땅 만드신 그 님 한테서”

여러 가지 값진 것들이 널부러진 화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너무 단순하고 분명하다. 바로 코헬렛의 서두와 결론이다.

“허무로다! 허무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 !
그러니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만이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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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파란아침 2007.11.12 18:56:18
    늘 옮기며 출처를 밝혔지만
    이 곳에 옮겨 간다는 말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하게 잘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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