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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호 - 해질녁에 씨 뿌리는 사람

by 이 요한 posted May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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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호 제목 : 해질녁에 씨 뿌리는 사람 (1888년)
작가 빈센트 봔 고흐 (Vincent van Gogh: : 1853- 1890 )
크기 : 켄버스 유채 : 32X 40cm
소재지 네델란드 암스텔담 반 고흐 미술관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4장 13- 20 과 26-29절에 "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때 예수님의 처지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군중들이 열광했으나 점점 반대 세력이 생기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예수께서 정신 병자 취급을 당하게 되고 이것을 안타까워 한 성모님과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셨다는 내용이 있다.(마르코 3:20- 21: 31- 35)

이런 처지에서 주님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은 당시 예수님의 감회를 표현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죄와 불의가 만연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으나 반응은 너무도 엉뚱해서 반대와 모함을 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런 처지에서 그분 역시 인간적인 실망을 할 수 있었으나 성부께 대한 믿음으로 이것을 극복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아무리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드라도 굳굳히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소신을 펴신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바로 이런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을 내딛고 일어서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여러 몰이해와 반대로 역경의 수렁에 빠진 자신의 모습은 너무 무능하게 보이지만 겨자씨 처럼 언젠가 큰 결실을 맺게 되리란 희망을 조용하면서도 힘차게 전하신다.



vincent2.jpg


성화 해설 27번 : 성서가 있는 정물 "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 처럼 작가는 경건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목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으나 , 항상 교회가 제도화되면 생길 수 있는 복음적 맑음 을 퇴색시키는 인간적 술수의 어둠이 동아리를 틀고 있는 교계의 현실과 타협하기에 그의 영혼은 너무도 순수했다.

그는 아버지 처럼 주위의 인정을 받는 안정된 처지에서의 목회 생활에의 꿈을 접고 가난한 탄광촌인 보리나주에 가서 순회 선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비참한 광부들의 삶에 동참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갱으로 들어가서 광부 생활을 했다.


그가 받는 월급은 다 광부들을 위해 사용하면서 민초들의 삶을 함께 나누는 복음 전파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 마저 제도적 틀에 짜인 기성 교회의 시각에선 파격적인 그의 목회 스타일이 문제로 보여 그를 목회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판단해서 해고시켜 버렸다.

그가 새롭게 미술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의 뇌리에는 그가 탄광촌에서 만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야훼의 가난한 사람" 들에 대한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없었고 이것이 그의 남은 일생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밭에서 노동을 하는 농민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 중 마지막 으로 그린 것이다.


이처럼 그의 영혼이 너무도 순수한 것 저편에 그는 많은 성격적인 약점이 있어 주위와 좌충우돌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가족들의 반대까지 받으면서 건강이나 인간 관계 등 여러 면에서 실패와 단절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의 인생은 사도 바울로가 한탄하신 다음 말씀의 축소판이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 잡히게 합니다.
과연 나는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구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로마7: 21- 24)


그러나 유일하게 그를 이해한 동생 테오의 도움과 격려로 미친 듯이 작품 활동에 몰두하면서 자기 삶의 어둠과 슬픔을 빛과 삶의 환희로 승화시켰다.
그러기에 그의 많은 작품을 통해 연상되는 것은 강렬한 태양과 해바라기였다.


동생 테오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작가의 인생 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오르시는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져 준 키레네 사람 시몬 처럼 형을 도우면서 기인과 같은 작가의 삶 안에 들어 있는 맑은 인간성과 복음적인 갈망을 이해하고 격려했다.

목회의 길을 포기하고 예술가로서 삶을 시작하기 위해 동생이 있는 빠리에서 머물다 주위의 인정을 받지 못한 실패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간 형을 동생 레오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형은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찬란한 빛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입니다.
형은 따뜻한 마음을 가졌고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계속 노력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그의 간질병은 너무 빨리 진전되어 간혹 환각 증세까지 느끼게 되어 귀를 자르는 소동을 벌리게 되면서 완전히 정상인들과 단절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처절한 실패 체험에서도 그는 작품 활동에 마지막 정열을 쏟았으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의 기억이다.

이 작품에서 태양은 그의 다른 작품이나 해바라기에서 나타나는 뜨겁게 이글거리는 싱싱한 태양이 아니고 생명력을 잃고 시들어진 피곤한 모습인데, 이것은 그의 사그러지는 건강과 함께 여러 가지 질환이 겹쳐 심리적 절망 상태에 빠진 작가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농부가 씨뿌리고 있는 대지 역시 절망의 짙은 색깔이 감돌고 있어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던 작가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씨뿌리고 있는 농부의 모습은 짙은 어둔 색깔로 절망의 상징처럼 드러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씨뿌리는 비유의 주인공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했으나 심리적 충격으로 발작을 일으키면서 혼미한 상태가 되었다.

이 작품 제작 한 달 후 급기야 자신의 귀를 자르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며 이것을 보고 너무도 놀라 그가 상대하던 창녀들이 경찰에 신고함으로서 그는 미친 사람으로취급되어 병원에 구금되는 신세가 되었다.

광기와 맑은 정신의 불가사의한 방황속에서 작가는 37세의 짧은 인생을 권총 자살로 마무리 했다.
형의 죽음을 지켜 본 동생 테오는 가족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썻다.

"형의 죽음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마치 웃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순교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큰 실패와 비참한 죽음의 상징인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주님께서 어느 인간도 누리지 못했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해서 그분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 세상 어떤 어려움과 유혹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자살로서 마무리 된 작가의 삶은 그의 죽음 후 생명의 놀라운 능력이 드러나게 되었다.

동생 외에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작가로서도 철저히 인정받지 못한 작가의 작품은 생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팔리지 않아 작가는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 덕분에 작가의 작품은 고스란히 동생이 보관할 수 있었고 작가의 진가를 인정하는 후세인들에 의해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미술관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작가의 삶은 우리에게 불운과 행운 , 성공과 실패라는 인간 드라마의 실상이 무었인지를 너무도 극명히 제시하고 있다.

800여점이 넘는 그의 작품 가운데 생시에 팔린 것은 한점 밖에 없었으나 1990년도 그의 작품 한 점이 일본 어느 보험회사 그룹에 8200만 달라로 낙찰되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의 가격이 되었다.

오늘도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많은 관람자들은 몰이해와 불운 속에서도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 처럼 맑은 인간성과 거짓과 위선의 탈을 벗은 순수한 복음을 살고자 혼신의 노력을 했던 구도자적인 작가의 삶을 흔적을 발견하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을 대하노라면 그의 생애가 떠오르면서 마르코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 수난 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연상된다.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 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하고 말하였다."( 마르코 15: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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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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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데레사 2010.07.26 17:01:59
    고흐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아릿한 슬픔이 느껴져요. 어둠속에서도 존재를 드러내는 절규도 함께 들리는 듯합니다. 너무 귀한 해설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에디따 2010.07.26 17:01:59
    요즘 저의 믿음이 너무 없음을 알 게 되었어요.
    습관같은 믿음이었어요.
    주님께 청하고 있지요.^^ 감사히 옮겨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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