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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엣 브라운(Henriette Browne) : 애덕의 딸들 (The merciful sisters)

by 이종한요한 posted Oct 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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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덕의딸들1.jpg

제목 : 애덕의 딸들 (The merciful sisters : 1859)

작가 : 헨리엣 브라운 (Henriette Browne : 1829- 1901)

크기 :켐퍼스 유채

소재지 독일 함부르크(Hamburg) 미술관

 

수도생활은 인간의 갈망을 극대화한 현상이기에 어떤 종교에도 다 수도생활은 있으나 가톨릭 교회의 수도생활은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

 

수도생활의 시작은 하느님을 외골수로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수도자들은 세상을 피해 한적한 사막이나 광야에 가서 하느님을 찾다가 점점 복음의 틀 안에서 수도생활을 바라보게 되었다.

 

즉 크리스챤의 이상적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인간에의 사랑을 조화시키는 삶임을 알게 되면서 하느님을 찾기 위해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여기던 은둔과 봉쇄의 삶을 벗어나 가난한 사람들 틈에서 사신 예수님처럼 세상을 수도원으로 여기는 사도적 삶에 투신하게 되었으며, 현대에 와서 수도자들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더 열악한 삶의 현장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성소의 감소로 수도생활이 양적으로는 위축되고 있으나, 현존의 방법은 점점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증거하는 심화된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수도자들은 세상 수준의 사회사업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 깊은 곳에서 나누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도적 삶의 큰 기틀을 마련하신 성인은 이 작품에 나타나는 애덕의 딸들수도회 창설자이신 성 빈센트 폴 ( Vincent de Paul: 1581- 1660)성인과 그의 협조자였던 루이즈 드 마리악 (Louse de Marillac : 1591- 1660) 이었다이들에 의해 교회 안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셨던 갈릴래아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활동 수도회가 탄생했다.

 

 이들이 사셨던 17세기 프랑스는 가난한 자들, 농촌 사람들, 빈자들로 구성된 2천만의 인구로서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상태에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선 기도에만 몰두하는 봉쇄 의 삶은 비현실적임을 알고 사람들 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삶의 수도생활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인 애덕의 딸들 이란 수도회의 시작이 되었다.

 

작가는 외교관의 부인으로서 유복하고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처지에서 당시 서양의 작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유행처럼 몰두하던 중근동에서 볼 수 있는 이색적인 동양 문화의 여러 측면을 묘사하거나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성격이 강한 작품 작품에 몰두하면서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정복하면서 거기에서 발견한 문물을 서양에 소개하는 서구인의 시각에선 새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들의 우월감에 도취할 수 있는 주제였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유행과 전혀 무관한 자기의 조국인 프랑스에서 시작된 애덕의 딸들 수도회의 삶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오늘도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웃돕기 운동의 상징과 같은 빈센트 성인의 정신을 너무도 정확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애덕의딸들1.jpg

당시의 수도 복장인 코르넷을 쓴 수녀가 병약한 아이를 돌보고 있다.

이 여아의 창백하면서도 여윈 모습은 그의 부모들의 열악하고 비참한 삶의 반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를 부모로 태어나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 버려진 상태에서 얻어진 병의 모습이 역력하다.

 

소녀의 여윈 모습은 그의 육체적 영향 상태만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태의 비참하고 두려운 삶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소녀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긴 병이 수녀의 사랑어린 간호에 의해 치유되어 비록 병의 흔적이 역력한 몸에서도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생명의 생기를 보이고 있다.

 

 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수녀의 모습은 외모만으로도 너무 아름답고 깨끗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결핍 투성이의 소녀의 모습과는 전혀 대비되는 너무도 갖추어진 모습이다.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 세상적인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에서 소외된 소녀와 달리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영혼의 아름답고 충만한 모습이다.

 

한마디로 병약한 소녀의 모습은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상처받은 영혼의 상징이라면 수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 소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상징이다.

창설자인 빈센트 성인의 권고에서 당시 수녀들의 삶은 얼마나 파격적인 환경이었던 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애덕의 자매들은 병자들의 집과 그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수도원이며 , 셋방이 바로 수녀들의 수방(修房)입니다. 성당은 이웃 본당 성당을 사용하고 ,도시 거리가 바로 봉쇄 구역이어야 합니다.”

 

이 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수녀들의 삶의 환경은 세상과의 구분을 수도생활의 목표로 여기며 모든 것을 다 수녀원 안에 갖추고 살았던 이전 봉쇄 수녀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갈릴래아 해변을 거닐며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 돌보던 예수님이 사셨던 환경의 재현을 목표로 했기에, 하느님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의 풍요로움이 수녀의 얼굴에 드러나고 있다.

 

 애덕의딸들(좌).jpg

 

정상적이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 있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수녀는 단순한 불쌍한 아이를 돕겠단 요즘 사회나 교회에서 시나브로 외치는 봉사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다.


빈센트 성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로 태어나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가난한 처지에 참여하시며, 가난한 이들에게 행해지는 모든 것은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당신에게 행해지는 것으로 여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수녀는 지금 자기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허약한 이 소녀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에 더 없이 경건하고 최선을 다해 마치 성체조배를 하는 마음으로 이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탈진 상태에 빠진 소녀가 수녀의 품에 안김으로 그는 예수님이 주시는 위안과 치유의 은혜를 받게 되었다. 몸 전체가 어린이 답지 않게 탈진상태에 빠져 있으면서도 얼굴은 수녀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분홍빛 생기가 돌고 있다.

 

이 소녀는 수녀의 간호를 통해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애덕의딸들(우).jpg


 수녀의 뒤편에 또 다른 수녀가 이 소녀를 위한 약재를 준비하고 있다. 이 수녀는 열악한 처지에서 병고에 허덕이는 소녀를 구해 내어 앞의 모습으로 건강을 돌려 준 수녀의 어제 모습이다.

 

그 앞에 놓인 흰 수건은 이 소녀가 열악한 환경에서 목욕도 제대로 못했기에 더러워진 몸을 씻어준 목욕 수건이다. 소녀는 더 없이 허약한 모습과 달리 입은 옷과 몸은 정갈한 것은 수녀의 배려 덕분이었다.


이 수녀는 상처받은 인간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이 수녀가 소녀를 구하기 위해 했던 노고가 얼마나 지극한지 이 수녀의 흰 수건 부분에 묻은 땀이 증거하고 있다. 이 수녀는 인간의 이기심과 부조리의 희생물인 소녀를 소생시키기 위해 십자가의 희생으로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으로 이 조그만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뒤편의 수녀는 앞의 수녀와 다른 수녀가 아니라 아기를 안고 있는 수녀의 참 모습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병든 수녀를 안고 있는 이 수녀는 단순히 수녀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동영상에 등장하는 배우 수녀가 아니라 바로 그의 실상은 뒷면의 모습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 교회 안에 남발되고 있는 말 중에 최고 인기단어가 봉사라면 이 수녀는  이것을 자기의 땀에 짖이겨진 헌신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수녀의 헌신의 모습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타나고 있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메시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그는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이사야 53: 5)

 

이 수녀에게는 이 아기를 돌보는 것이 삶의 최우선적인 것이기에 수녀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도와 같은 것으로 여기며 기도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도에 몰두하는 모습으로 소녀를 돌보았기에 앞의 모습처럼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빈센트 성인은 자기 딸들인 수녀들에게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이 어떤 가난한 이를 도와주고자 바치는 기도를 중단하면 그것도 하느님께 고귀한 봉사를 하는 것이라 여기십시오. 사랑은 모든 수도규칙에 우선하며 수녀들은 만사에서 무엇보다 사랑의 실천을 우선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병든 어린이를 간호한다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빈센트 성인과 함께 수녀회 창설에 대단한 역할을 했던 루이즈 드 마리악의 고귀한 가르침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귀족 신분으로 11년간의 결혼 생활로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남편을 사별 후 수녀가 된 분이다. 그는 수녀가 된 후에도 자녀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보일 만큼 균형 잡힌 성숙한 어머니였다.

 

그는 귀족 신분으로 좋은 남편과 함께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더 하느님 뜻에 맞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수녀의 길을 선택했기에 그의 가르침은 미사여구의 나열이 아니라 참으로 현실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글에 환자를 간호하는 수녀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매들은 새벽 4시에 정확히 일어나서 기도를 바친 다음 집안의 허드랫 일을 하고, 여섯 시에 병실로 가서 환자들의 요강을 비우고, 병자들의 잠자리를 정돈하고, 병실을 청소하고, 약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작가는 외교관 부인이었고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당시 부유층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세상 눈높이 수준의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애덕의 딸들이 보이는 아름다운 삶에서 인생의 진면모를 발견했기에 작가의 외적 경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작가는 지상 삶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정확히 제시하고 있다. 세상의 귀족에서 복음의 사랑 실천을 최고 목표로 여기는 영혼의 귀족으로서의 전이이다.

작가의 작품에 심취했던 귀부인들 중에 이 작품을 통해 하느님 안에 어우러질 수 있는 정신적인 귀족의 모습에 매료된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은 풍요시대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시대에 표현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귀족성은 물질적 풍요가 줄 수 있는 안락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애덕의딸들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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