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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달리(Salvatore Dali: 1904- 1989) : 최후의 만찬(1904)

by 이종한요한 posted Sep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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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후의 만찬(1904)

작가 : 살바토레 달리(Salvatore Dali: 1904- 1989)

크기 : 캔버스 유채 : 2.67 X1.67m

소재지 : 미국 워싱턴 국립 미술관

 

   작가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기상천외의 착상과 작품 제작으로 많은 비난과 열광을 아울러 받은 사람이다.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반()예술 운동인 초기 다다이즘으로부터 생겼는데, 이것은 부정 그 자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강조했다. 그는 비현실 초현실 사이를 흔쾌히 넘나들며 인간의 무의식을 개발하여 작품에 표현함으로서, 과거 어느 작가도 표현하지 못했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였고, 많은 비난과 열광 속에서 피카소만큼 많은 작품을 팔아서 유복한 생활을 한 작가이다.

 

   그는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유복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려움 없이 미술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가 유복한 환경에서 구김살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자부심을 비난이 빗발치는 현장에서도 언제나 지니고 살았다.

 

   그는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면서 이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자 했고, 이런 생활 태도는 자연스럽게 기괴한 행동과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함으로서 세상 사람들의 비난과 관심을 얻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너무도 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남긴 통속적 주제이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것이다.

 

   작가는 공관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만찬사화를 여느 작가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먼저 긴 직사각형의 식탁에 주님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제자들이 앉아 있으며 주님을 마주 보고 두 명의 제자가 무릎을 꿇고 있다.

 

Dali-The-Sacrament-of-the-Last-Supper-Detail-disciples.jpg

   그런데 모두 얼굴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익명의 모습으로 오직 주님만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은 만찬에 초대 받은 열두 제자의 상징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특정 인물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크리스천들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작가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가 만찬방에서 저녁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열두 방향으로 표현하면서 최후 만찬의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것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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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당신의 선교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 호수를 배경으로 앉아 계시며, 호수엔 그분이 타고 다니시던 배가 떠 있다. 그분 앞에는 성찬식에 사용될 포도주 잔과 두 조각의 빵들이 놓여 있다. 역시 성찬의 사건을 방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과 전체로 관계되는 것임을 표현하고자 했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다니면서 그분이 하셨던 많은 설교와 기적들을 다 이 성찬의 사건과 연관시켰다.

 

Dali-The-Sacrament-of-the-Last-Supper-Detail-torso.jpg  

   예수님 위에는 가슴을 드러내고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팔을 펼친 남자가 있으며, 주님께서는 오른손을 위를 향해 펼치시고 왼손을 당신을 가르키고 있다.

 

   위에 계시는 분은 성부 하느님이신데,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내용, 즉 성자 예수를 본 사람은 성부를 본 사람이라는 내용을 상기시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느냐?” (요한14,8-10)

 

   성부는 전통적인 성화에서는 상상이 어려운 나신(裸身)으로 제자들이 모여 앉은 성찬의 식탁을 향해 양손을 펼치고 축복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개신교 진보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같은 이도 이 작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접 쓰레기 같다고 혹평을 했다. 반면 어떤 이는 이런 부정적 평가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열광했다.

 

   작가는 결코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락방에서 이루어진 지상 사건으로서의 최후 만찬이 아닌, 하느님의 아들이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심으로서 최후만찬은 하느님의 사랑이 온 세상에 드러나는 우주적 사건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과거 선배 예술가들이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나게 되었으나, 46세가 되었을 때 다시 회심하고 교회로 돌아왔으며 , 그가 회심의 기념으로 제작한 성모화를 교황 비오12세가 축성하시면서 그를 교회의 아들로 다시 받아들이셨다.

 

   오늘은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보다 훨씬 더 인간의 무의식이나 초현실 차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것들이 인정을 받으면서, 작가의 작품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실재를 바로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비현실적인 차원, 초현실적 차원, 무의식의 차원에서 접근이라는 예언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의 성찬 교리는 성서의 자구적 표현과 교회 성직자들이 부패했을 때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방편으로 선포된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n)라는 교리, 즉 사제가 축성하는 성체 안에 참 예수님이 계신다는 내용으로 정착되었다. 작가는 이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리가 설정되던 시대와 전혀 다른 상황과 발전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감동으로 성체성사에 접근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작가는 성서의 표현 역시 이 시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현대에 발전된 학문과 지식을 바탕에서 새롭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임을 작가는 전하기에 전통적인 표현으로 만족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찬을 통해 표현되는 주님의 사랑을 현대인의 감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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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에디따 2015.09.11 15:37:34
    ^^
    저의 여동생과 다른 책 이야기하다 성화이야기 책 이야기도 꺼냈었더니 아마도...^^
    지난 5월에는 스페인과 루르드...마지막으로 보랭까지 다녀왔었어요.
    보랭 성모님의 메시지가 아직도 귀에 머물러있지요. "기도하라! 많이 기도하라!"였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론 스페인의 몬세라트의 블랙마돈나 성모님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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