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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놀데 Emile Nolde : 실락원 (Paradise Lost: 1919)

by 이종한요한 posted Jul 2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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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jpg


제   목 : 실락원 (Paradise Lost: 1919)

작   가 : 에밀 놀데 Emile Nolde (1867- 1956)

크   기 : 캠퍼스 유채 (86.5cm X 100.5)

소재지 : 독일 제빌(Seebull) 놀데 미술관

 

   작가는 북 독일의 작은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예술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도시에 나가 수공예 가구 제작을 익히는 것 외에 이렇다 할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독학에 의해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독일적이라는 개념 안에 자기 예술을 묶어둔 전형적인 독일 작가이다. 식민지 관리국의 요청으로 남태평양 여행길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 여행에서 접촉한 이국적인 대상에 대단한 매력을 느꼈고 이것이 그의 작품에 드러나고 있다.


  작가는 20세기 초에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전개되었던 표현주의(Expressionism)라는 태도로 접근하는데, 이것은 그전까지 표현의 기본으로 여겼던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감동, 감정의 직접 표현이야 말로 예술의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선, 형태, 색깔이 이런 목표를 향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런 관점에 있어서 대표적인 역할을 했기에 그의 작품은 강렬한 색채와 선의 사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상상력의 표현은 그의 종교화에서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의 종교성은 기성 종교에서 체계화되어 있는 교리나 신조의 표현과는 무관한 자유분방한 것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개신교 신앙의 바탕에서 성장했으나, 하느님, , 영원성, 악마, 십자가의 구원 등의 표현에 있어 제도적인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가 아닌 자유로운 견해를 지니고 있었고 그렇다 보니 그의 종교성의 표현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었다.

 

   그는 1911년부터 예수의 생애라는 주제로 9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작가의 종교성의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그중에 <십자가에 매달리심>이라는 작품은 십자가를 중앙에 배치하고 예수의 육체적 고통을 너무도 직설적으로 표현함으로서 예수 고난이 시각적 형상만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깊은 감정이입을 호소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의 주제인 창세기는 구약성서에서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인데, 전통적으로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잘못으로 낙원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제시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은 원조들이 자기들의 잘못으로 낙원에서 추방되는 처지를 몹시 마음 아파하면서 어린이처럼 통곡하며 떠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관례였으며, 그 대표작으로 성화해설 앞부분에 나타나고 있는 르네상스 작가 마사치오의 작품이 있다.

 

   성서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창세기 3: 16- 18)


  작가는 이 성서의 접근에 있어 기성 작가들처럼 아담과 이브가 자기의 잘못된 어리석음을 뉘우치는 통곡하는 모습이 아닌, 낙원에서의 추방을 기성사실로 인정하고 그들이 살아야 할 실낙원의 처지를 바라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의 원죄 문제를 볼 수 있도록 우리들 초대하고 있다.


  뱀.jpg


   아담과 이브를 유혹했던 뱀이 낙원의 중앙에 아담과 이브 사이에 붉은 기둥에 둥지를 틀고 둘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 삶에서 성적인 욕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 1939)가 성욕을 인간 생활에서 주요한 동기 부여의 에너지로 정의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그 상징으로 뱀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뱀의 상징을 성욕의 상징으로 드러내면서 이것이 인간 삶에서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원조들을 유혹해서 범죄로 빠트림으로 낙원에서 추방되게 만든 뱀은 원조들과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 오늘도 뱀으로 상징되는 성욕에의 유혹은 낙원의 선악수 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현장에 있다.


  아담.jpg


   아담은 너무 갑자기 생긴 변화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듯 멍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깊은 눈으로 현실을 응시하는 과정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싸우거나 투쟁해야 할 투쟁자로서 자기의 새로운 처지를 확인하고 그가 해야 할 역할은 바로 투쟁자라는 것을 되새김하고 있다.

 

   아담의 뒤 편에서 먹이를 입에 물고 어슬렁대는 사자가 아담의 새 역할의 분신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는 이 역할에 대해 서글픈 감회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에 가득 차 나르시스적인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아담의 손은 이미 피에 젖어 있다. 하느님의 뜻을 어긴 벌로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의 후손들은 전쟁을 만들어 계속 피를 흘리게 만들었으며, 이것은 현대에 와서도 조금도 정화되거나 개선된 점이 없는 남성의 특성으로 정착되어 있다.

 

   전쟁은 생존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할 남자의 통과의례의 상징이다. 아담의 두 발은 나무를 오르거나 가지를 움켜쥐기 위한 포즈를 취하는 날렵한 원숭이처럼 새 환경에 적응할 만반의 준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와.jpg


  하와 역시 자기가 새로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 전혀 인지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눈을 크게 뜨고 놀람의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것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녀평등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여성에게 있어 아직도 정착되지 않았다. 여성의 존재성은 교회 안에서 역시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전통이라는 밀림에 갇혀 있는 현실이다.


  로마 가톨릭은 어떤 면에서 가장 남성성이 강력한 집단이며, 하느님의 본성을 표현하는 어머니로서의 여성성은 제도적으로 억압된 처지에 있다.


  하와의 젓 가슴은 더 없이 풍만한데, 이것은 하느님의 피조물중에 가장 하느님의 창조성을 대행하는 자랑스러운 존재로서의 여성성을 보이는 것이다.


  아담은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으며 하와는 이런 아담의 좋은 반려자로서 그의 풍만한 육체를 도구 삼아 출산을 통해 생명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원조 주위의 짙은 초록빛 색깔은 상징적으로 낙원의 평화로움과 안정의 상징이다. 이것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살아야 할 아담의 몸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또 다른 안정성의 상징이다.

 

   작가는 빨강과 노랑과 초록이라는 원색적인 대비를 통해 시각적인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원죄 신학은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범하고 낙원에서 추방됨으로서, 자신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나, 작가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비록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낙원에서 추방되긴 했어도 하느님을 찾는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행복과 구원에의 잠재적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것은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Henri-Louis Bergson:1859-1941) 모든 생명계, 인간의 삶은 진화한다. 이 진화는 내적 충동력인 곧 생명의 비약“ ( 엘랑비탈(elan vital),에 의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진화라는 이론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여기에서 전통적인 교회의 원죄론을 뛰어넘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서사시인 존 밀턴( John Milton : 1608- 1674)실락원(Paradise Lost), 이어 복낙원(Paradaise Regained, 1671)을 저술하여 구세주의 구속 행위를 통해 지상낙원이 인간에게 다시 회복된다는 내용을 장엄하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이 에덴동산을 떠나게 된 것이 과연 죄의 벌인지 숙고하며 현대인들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밀턴의 작품으로 대표되고 있는 원죄의 운명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며 원죄론이 인간을 묶어두는 족쇄가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 도구로서의 원죄론을 제시하고 있다.

 

   하느님의 뜻을 어긴 결과로 아담과 이브가 받은 것은 창세기 3장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힘든 노동과 자녀 출산의 고통이다. 아담의 후손들이 노동한다는 것을 과연 원죄의 벌로 볼 수 있느냐는 오늘의 우리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은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자기 이상을 실현함으로서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자녀 출산은 여성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의 분신을 만듦으로서 상호 사랑의 연결고리를 만들면서 하느님 생명의 재창조에 참여하는 큰 축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창세기에 나타나고 있는 원죄의 벌인 노동과 출산은 새로운 차원에서 재해석 되어야 할 주제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관람자들에게 창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인간 현세 삶의 긍정적인 차원으로 눈길을 돌리게 초대하고 있다. 


실낙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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