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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 베드로의 배반(Saint Peter’s Denial)

작가 : 루이 르냉(Louis Le Nain : 1600- 1648)

크기 : 컴퍼스 유채- 92 x 118 cm

소재지 :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사도 성 베드로의 배반 사건은 네 복음사가가 모두 기록할 만큼 그리스도 수난 사화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소 예수님으로부터 제자단의 책임자로 임명받은 그가 스승이 체포되는 어려운 처지에서 스승을 배반했다는 것은 인간적인 면에서도 충격일 수 있기에 성서 기자는 모두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세 형제가 화가로 살면서 일생을 농부들의 삶을 사실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려 이 방면의 대가로 남아 있다. 사실주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묘사하려는 예술 표현으로 작가의 의도 보다는 관람자의 주관에 작품의 판단을 맡기고자 하는 화풍이며, 이런 면에서 추상이라는 것과 반대되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작품의 대상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리는 통념과는 달리,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어렵고 척박하고 비참한 삶의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미를 표현하는 것이 작품의 대종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개인소장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프랑스 동북부 르네빌(Runeville)의 어떤 집 다락방에 있던 것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농부들의 삶이 대종이었던 작가의 작품 경향으로 보아 이것은 예외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주의적 표현으로는 탁월함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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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기록으로 끝낸 요한복음을 제외한 다른 세 복음은 거의 비슷한 정확성으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그러자 베드로는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하고 부인하였다.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하였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하고 주장하였다. 베드로는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하고 말하였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루카22,54-62)

 

   작품에서는 베드로를 예수의 제자로 고발하고자 하는 하녀를 위시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나 여기에서의 주인공은 두말없이 사도 베드로이다. 인생을 살만큼 산 베드로이지만 상당히 당황하는 표정이다. 자기 앞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있는 스승처럼 그의 제자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의 운명 너무도 뻔 한 것이기 때문이다. 높은 절벽에 올라가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아찔한 공포를 느낀 순간의 베드로 표정이다.

 

   이런 현실로 닥친 공포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양심의 부담이다. 자기의 여러 부족함을 알고 꾸짖으면서도, 자기를 끔찍이 믿고 사랑하던 스승 예수가 아니었던가? 주님을 만나면서 너무도 감동받은 그는 생업인 그물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처지가 아닌가?

 

   자신의 부족하고 약함 부분을 알면서도 교회의 으뜸으로 그를 선택할 만큼 주님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든가? 이런 주님을 배반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이 베드로의 정서였다. 베드로는 이런 양심의 목소리에 고뇌하는 순간 그는 며칠 전에 했던 다음과 같은 말도 떠올랐을 것이다.

 

   “ 시몬아, 시몬아! 보라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베드로가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루카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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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서로 착잡한 베드로는 이 순간 어느 때 보다 더 강한 생의 애착에 빠지게 된다.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떳떳하고 용감히 죽자는 생각 보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삶에 대해 버리고 싶지 않는 애착을 느끼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살아야 한다는 집념에 초점을 맞춘다.

 

   베드로의 이런 결심은 온 몸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가 입은 푸른 빛 옷은 주님을 향한 그의 초심(初心)을 표현하고 있다. 주님, 제가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루카22,33)

 

   그러나 그의 이런 마음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스승을 생각하며 느끼는 공포 때문에 가려진다. 겉에 걸친 외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스승을 바라보는 공포로 뒤집어진 그의 어둔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스승에 대한 많은 사랑의 기억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스승처럼 초연히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삶의 확실한 기준으로 여기며 꿋꿋이 스승을 따라 십자가를 향해야 하는데, 생의 애착과 죽음에의 두려움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손의 표정은 더 처절한 모습으로 죽음에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고 싶은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으로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냐는 하녀의 질문에 강한 거부의 몸짓을 하고 있다.

 

   이 질문에 바른 대답을 하면 그 역시 스승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살기 위해 강한 몸짓의 거부를 표현하고 있다.

 

   왼손은 자기 옷을 움켜지는 몸짓으로 생에의 강한 집념을 표현하고 있다. 이 순간 베드로는 스승의 다음 말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진공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교회 역사에서 순교는 신앙의 최고 상징임과 동시 배교는 더 없는 치욕적 행위였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의 긴 종교 박해에서 벗어나 종교 자유를 얻고 났을 때 가장 심각하게 대두된 문제가 바로 배교자들의 처리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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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 교회에서 가장 크게 다룬 죄목은 배교와 살인과 간음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태도는 너무 다르다. 주님께서는 교회 역사에서 첫 번째로 당신을 배반한 베드로에게 교회의 으뜸인 교종의 자리를 맡기셨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는 이때의 배반을 일생을 두고 후회하며 뉘우치는 삶을 살다가, 그도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순교해야 했을 때 이제야 스승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감격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죄인인 자기는 주님처럼 십자가에 바로 달려 순교한다는 것은 부당하기에 거꾸로 달려 죽겠다는 제안을 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위시해서 베드로의 순교는 거꾸로 십자가에 달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베드로가 겪은 배반의 유혹을 죽음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계속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크리스천이라면 하느님의 뜻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베드로와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넘어졌더라도 실망이나 절망은 금물이다.

 

   베드로처럼 뉘우치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일어난다면 우리에겐 새로운 인생이 열리게 마련이다.

 

   베드로는 이런 배반 후에도 주님으로부터 교회의 으뜸인 교종(敎宗)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많은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희망의 극치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닌 뉘우침이요, 뉘우침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이다.

 

   한번 부러진 뼈를 잘 치료하면 부러진 부분이 치료받기 전보다 더 단단해 진다는 것이 교훈이다. 뼈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성한 뼈를 부러트릴 바보는 세상에 없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여정에서 우리가 어떤 잘못에 빠지더라도 그것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믿으며 신앙적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 것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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