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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도 독또리 (Gerardo Dottori) : 장미의 기적 Il miracolo delle rose (1953)

by 이종한요한 posted Oct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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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2).jpg


제      목 : 장미의 기적 Il miracolo delle rose (1953)

작      가 : 제라르도 독또리 (Gerardo Dottori : 1884 - 1977)

소 재 지 : 이태리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도서관

 

예수회 출신의 교종이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하여 프란치스코의 말이나 글의 인용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프란치스코를 보이면서 교회 안에 생기가 돌고 있다.

 

시대 착오적인 답답한 교리의 일방적 강조와, 복음적 정의와 사랑의 증거 보다는 체제 유지를 더 중요시 여기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어리석은 처신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에 실망하며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태리는 세계 문화재의 40%를 보유한 나라이기에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으나 근래에는 관광 차원이 순례의 차원으로 승화되는 분위기여서 관광으로 온 사람들이 교종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교회에 대한 매력으로 순례 성지도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작가는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인 움브리아 출신답게 프란치스코에 대한 많은 그리움과 존경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피조물 안에 있는 하느님의 선성을 발견했기에 그에게 있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형제자매의 관계임을 강조했다.

 

그는 결코 모든 것 안에 신성이 있다는 범신론자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주권 아래 살고 있는 형제성을 강조했다.

 

그의 명작 태양의 노래피조물의 노래로도 불릴 만큼 그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하느님의 작품이기에 우리의 형제자매임을 주장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좀 특별하고 예언적인 차원이 있다.


먼저 그는 당시 교회에서 까지 버림 받았던 나환우들을 우리가 사랑해야 할 가장 가까운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이런 나환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것이다.

 

오늘도 아시시 입구 마을인 리보 또르토에는 시냇가에 거처하고 있는 나환우들을 위해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이 함께 머물던 흔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나환우들이 교회에서 까지 냉대를 받는 처지에서 프란치스코 형제들을 보호와 도움을 통해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의 대상은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임을 성 프란치스코는 나환우들의 환대로 표현했다.

 

프란치스코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독신을 지키는 수도자였으나 남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사랑차원에서 보았기에 너무도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들었다.

 

독신생활이 성을 배제하고 경제하는 관계가 아니라 성을 초월해서 하느님안에서 만나는 관계임을 성녀 글라라의 관계를 통해 표현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으며 자란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사랑에 매혹되어 아씨시에서 미친 사람으로 소문날 만큼 자기에게 돌아올 모든 풍요와 안락을 포기하고 나섰을 때 장래가 총망되던 아씨시 귀족의 딸인 글라라는 광인처럼 보이는 성 프란치스코 내면에 있는 하느님 사랑의 깊은 차원을 발견하면서 그녀 역시 프란치스코처럼 살고픈 강한 열망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프란치스코는 28살 정도이고 글라라의 나이는 17세 정도였으나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를 스승으로 여겨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걷고자 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자기처럼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바치고자 하는 글라라의 맑은 열정을 읽었기에 글라라를 제자로 받아 들였으나, 당시 상황에서 여성에게는 봉쇄생활 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글라라를 이웃 베네딕도 수녀원에 맡겼다가 다미아노 수도원을 만들면서 그곳을 글라라와 자매들이 거처할 수녀원으로 만들었다.

 

글라라는 프란치스코를 영적인 아버지와 오라버니로서 성 프란치스코를 대했고 프란치스코 역시 영적 동반자로서 글라라를 대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영적으로 깊어졌다.

 

이런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프란치스코는 새로 시작된 글라라 수녀원을 돕기 위해 수녀원을 출입하는 일이 잦았고 얼마 후, 이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적 도움을 주기 위한 수녀원 출입이 프란치스코 공동체에 불편한 심기를 일으키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다.

 

단조로운 생활 패턴의 수도 공동체에서 모든 형제들이 프란치스코의 맑고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고, 성 프란치스코의 잦은 외출은 장상으로서 형제들에게 그리 아름다울 수 없는 일임을 눈치 챈 프란치스코는 겨울이 시작되는 어느 날 글라라를 방문해서 서로의 만남을 잠정적으로 나마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승인 프란치스코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방문 중지의 선언을 들은 글라라는 이것이 하느님의 뜻으로 여겨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자매들의 지도에 대한 두려움과 스승 프란치스코에 대한 인간적 그리움을 느꼈기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성 프란치스코 역시 새로 시작되는 수도 공동체 지도자로서의 바른 처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결정을 했지만 그 역시 표현하기 어려운 섭섭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이것을 자제하면서 글라라에게 장미꽃이 피는 봄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이 약속을 남기고 자기 공동체로 향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그들은 놀랄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직 겨울인데, 그 앞에 만발한 장미꽃 넝쿨을 보게 된 것이다.

 

하느님안에서 영적으로 만난 이 두 사람은 이제 자기들의 상태는 더 이상 인간적인 차원에서 조심해야 하거나 주위를 의식해야 할 것이 없이 하느님안에 자유롭게 처신해야 함을 깨달으면서 둘은 더 자유로운 상태에서 영적인 만남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여러 제약과 규제가 필요한 상식으로 정착되게 마련이나 하느님의 뜻안에서는 하늘처럼 자유로움을 끝없이 펼쳐진다는 것을 이 영적 연인들은 깨닫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2).jpg

 

성 다미아노 수녀원을 배경으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마주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뒤에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매서운 겨울바람에 춤을 추고 있고 글라라 뒤의 앙상한 나무는 생명이 없는 겨울임을 보이고 있다. 그들 앞에는 겨울 같지 않게 만개한 장미꽃이 있다.

 

이런 황량한 겨울 밤에 핀 장미를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는 응시하고 있다. 글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로 주님을 따르고자하는 제자로서의 맑고 순순한 영혼의 상징인 듯 흰옷을 입고 있다.

 

반면 프란치스코가 입은 갈색의 수도복은 전형적 프란치스칸 색깔이면서도 새로 시작된 수도회 책임자로서 의식해야 하는 자유롭지 못한 마음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혹시 자기의 처신이 다른 형제들에게 분심과 실망의 요인이 되지나 않을까라는 무거운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둘은 그들 앞에 핀 장미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뜻을 읽게 되었다.

 

이 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영적 오누이의 관계로서 자유로웠으며 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들은 서로의 만남을 통해 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영적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작가는 생존 당시 이태리에서 일어난 미래주의라는 예술풍조에 심취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미래주의는 당시 유럽 예술계를 풍미하던 작가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함께 유럽의 새로운 화풍이었으며 이 작품 역시 이런 영향을 영성적 차원에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성을 지닌 인간 삶에서 남녀 관계는 부부관계만이 유일한 건전한 관계이며 다른 관계는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기에 영적인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성을 피하는 것이 영적 삶의 기본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며, 이것은 교회안에서 더 자연스럽게 어색함으로 남아 있다.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독신이 성직자와 수도자를 대할 때나, 독신인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서로를 대할 때 자연스럽지 못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을 치고 대해야 하는 것 같은 어색한 자연스러움이 덕스러움인 양 여겨지는 현실에서 프란치스코와 글라라가 보이는 태도는 인간이 오를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인간관계의 멋스러움을 보이고 있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관계가 남녀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 작품은 제시하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을 교회가 제정한 신조에 대한 복종 차원에서 알아듣는다면 삶은 더 경직되게 마련이고 오늘 많은 종교인들이 이런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처신하면서 복음은 매력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많은 금기사항을 지닌 족쇄로서 현대인들에게 매력을 잃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제 종교를 더 이상 죄를 피하게 하는 족쇄로서의 받아들이지 않고 복음이 말하는 자유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800년 전에 보인 이런 상쾌한 공기를 작가는 당시대 사람들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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