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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의 경배 (1483) : 도메니코 길란다이오 (Domenico Ghirlandaio)

by 이종한요한 posted Dec 2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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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자들의 경배 (1483)

작가 :도메니코 길란다이오 (Domenico Ghirlandaio)

크기 :목판 템페라 167×167cm

소재지: 이태리 피렌체 성삼의 대성당 (Basilica di Santa Trinita)

 

   인간성의 재발견이란 뜻의 르네상스 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피렌체는 중세기에 꼭 필요했던 새로움이 시작된 곳이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아름다움, 새로운 인간다움을 추구하면서 예술 학문 등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획기적 모습을 보였고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로서, 르네상스 미술사에 획기적인 선을 그은 작가이다. 로마와 피렌체를 오가며 그리스도교의 편협성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던 그리스 로마의 인간 중심의 예술을 소개하는 일방, 당시 북유럽에서 유행하던 플랑드르 예술을 과감히 도입함으로서 표현의 깊이와 넓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풍요로움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당시 피렌체에서 상당한 거부였던 사세티 집안의 경당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이것은 성서의 다음 내용을 전하는 것이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루카2,8-10.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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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 성모님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세로 앉아 계시는데, 아기 예수님은 성모님은 망토위에 로마 무덤의 석관을 배경삼아 누워 계신다.

 

   석관을 배경으로 소와 나귀가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경배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주님을 구세주로 맞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것의 암시적 표현이다. 여기에서 소와 나귀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상징이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기에 새로운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 예수님께 대해 아무런 개념이 없는 이교도들도 주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바람의 상징이다.

 

  짚더미 위에 성모님의 망토를 깔고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다. 이 아기는 세상의 어느 아기와 너무도 닮아 어떤 신성도 발견할 수 없는 평범한 모습으로 표현되면서, 그리스도는 우리와 꼭 같은 인간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너무도 앙징스러운 모습으로 누워 계신 예수님의 머리에는 붉은 십자가 형상의 후광이 있다. 이것이 바로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다.

 

  그전에 그리스도는 어디까지나 만민의 왕으로 공경 받았기에 그분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대단히 힘 있고 권위로운 존재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인성이 강조되고 우리와 꼭 같은 허약한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표현함으로서 인간적인 친밀성을 더하고 있다.

 

   예수님 머리맡에는 로마 시대의 석관(石棺)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죽은 이를 장례식용이나 작가는 그 안에 짚을 넣어 말구유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이것은 작가 나름대로의 신앙 표현인데,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실 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한마디로 성탄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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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의 뒤편에는 성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몰려오고 있는 삼왕의 행렬들을 바라보고 있다.

 

   성 요셉은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흰 수염의 노인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구세주의 양부라는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고 귀인의 자태로 등장하고 있다.

 

   삼왕의 일행이 말구유를 향해 오고 있는 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크리스천들의 집단이기에 푸른 들에 생명이 넘치고 있다.

 

  삼왕과 함께 아기 예수를 경배키 위한 행렬은 영원한 생명을 담고 있기에 더 없이 역동적인 생기를 풍기고 있다 반면 소와 나귀의 뒤편은 예루살렘의 상징으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의 상태가 죽음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무 가지는 말라있고 어떤 생명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적막감에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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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이 목동들을 당시 유럽 사회에서 유행하던 플랑드르 학파가 사용하던 기법으로 표현해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가 지닌 국제적인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목자들은 오늘 우리들의 개념의 목자와는 전혀 다른 존재들이었다. 현대에 와서 목자란 번거러운 도시 환경을 떠나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픈 젊은이들이 선택하는 튀는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이들이 선택하는 것이라면, 당시의 목자는 여러 면에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생계 유지 수단으로 선택하던 막바지 직업이었다.

 

 인간들과 단절된 산이나 들판에서 살아야 하는 목자란 직업은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생존경쟁에서 탈락된 사람들이 선택하던 직업이 되었고, 그러기에 목자에 대해선 도둑 사기꾼과 같은 악명이 뒤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면서 인간 사회에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당신 성탄의 소식을 알리셨고, 이들이 이 소식을 베들레헴 주민들에게 전함으로서 그들은 역사에서 첫 번째 선교사라는 명예로움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세 명의 목자 중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두 손을 모우고 있는 목자 곁에서 왼손으로 아기 예수를 가르키고 있는 목자는 바로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중세기에는 작가가 작품 속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자신을 그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작가는 여기에서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가르키는 자세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표현하고 있다성모님 뒤편에 있는 말안장과 포도주 운반통이 있는데 이것은 성요셉과 마리아가 고향인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향했던 여행을 상징하고 있으며, 땅바닥에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방울새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

 

   중세 화가들은 작품에 많은 상징들을 사용함으로서 관람객들에게 순수하고 심원한 의미 전달과 감동을 줄 수 있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의 여러 부분에 이 작품을 주문한 사세티 가문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 명의 목자들 중 뒤편의 목자는 어린양을 안고 있는데, 이것은 말구유에 탄생하신 아기는 세상의 죄를 대속하신 어린양의 상징임을 알리고 있다.

 

   아기 예수 뒤에 배치된 석관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새 생명에 대한 상징이며, 관 옆에 새겨진 곡식 묶음들은 성체성사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작가는 당시 새로움의 발견에 몰두하고 도취되어 있던 피렌체의 정서에 어울리게 많은 상징을 도입하고, 북유럽의 양식까지 도입함으로서 크리스천 신앙의 풍요롭고 너그러운 면모를 매력적으로 표현했다.


 작가는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목자들의 경배라는 일화를 통해 그리스도 삶의 전체를 소개하는 한편의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아름다움의 표현을 목표로 하는 예술은 공기와 바람처럼 막힘이 없으나, 어떤 사건이나 개념을 정확히 표현해야 하는 진리 표현의 수단인 신학은 어쩔 수 없이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기에 벽처럼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가톨릭 신학은 교계 제도안에서 성장하면서 이런 면이 어느 종교 못지 않게 강한 것이 특성이며 이것이 자유로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새로움 추구를 목표로 시작된 르네상스의 진원지에서 인간적인 표현을 통해 신앙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표현함으로서, 신앙의 제도적 경직성에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큰 매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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