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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과일 행상들:발톨로메오 뮤릴로 (Barthomeo Esteban Murillo)

by 이종한요한 posted Aug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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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어린 과일 행상들(Vendedores de fruta : 1675) 

작   가 : 발톨로메오 뮤릴로 (Barthomeo Esteban Murillo(1617-1682)

크   기 : 캠퍼스 유채 149 X 113cm

소재지 : 독일 뮨헨 고전 회화관 (Alte Pinakothek, Munich)


작가는 스페인 바로크 화풍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풍요 사회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남겼기에 스페인의 라파엘로로 불릴 만큼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가정환경 역시 안정되고 부유했기에 온실과 같은 환경에서 인간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작가 작품의 특징은 어떤 사상성이나 문제를 제시하기보다 신앙 안에서 아늑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것이었기에 누구든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인생의 후반기에 좀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주제의 접근을 통해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의미성을 제시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기성 가치에 대한 의문 제기와 함께 복음적인 가치에 눈뜨게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여기에 속하는 것이다.


작가는 생전에 거지 소년이나 아니면 과거 풍요로웠던 시절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들을 덮어두지 않고 제시함으로서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예술적인 시도를 하게 되었다.

 

작가에게 이런 작품 경향이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스페인의 현실 변화 때문이었다. 무적 함대라는 막강한 군대로 남미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만든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풍요에 도취되어 살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이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서 국력이 줄어들고 여기에 자연스런 부수 현상으로 닥치게 된 것이 바로 새로운 가난한 계층이 형성되고 이들에 의해 길거리에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비참한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시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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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을 연상시키는 어린 소녀가 동생처럼 보이는 소년과 함께 그날 과일 장수를 해서 번 동전을 손바닥에 놓고 기뻐하고 있다. 그 옆에는 팔다 남아 놓인 포도가 담긴 광우리가 있는데, 팔다 남은 과일이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싱싱해서 한 폭의 격조 높은 정물화의 싱그런 인상을 주고 있다.


이 남매가 입고 있는 옷이나 몸 매무새는 손바닥에 놓인 몇 푼 되지 않는 동전으로 기뻐할 처지로 보기엔 안정된 생활을 하던 어린이들임을 알리고 있다.


한 마디로 스페인 사회가 경제적으로 심한 혼란을 겪을 때처럼 이 남매 역시 갑자기 닥친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어려운 처지에 떨어짐으로서 궁여지책으로 과일 행상에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가난이 몸에 밴 처지가 아니라, 갑자기 당한 처지이나 당황하지 않고 의연히 이 가난 앞에서 기품 있게 처신하는 모습이다.


비록 과거 잘 살던 시절에 입던 단정한 옷을 입은 남매이지만   이들의 현실은 참으로 궁색하고 비참한 처지이기에 가난의 비참함과 궁상과 같은 어두움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들에게는 전혀 가난이 주는 비참함이나 절망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팔다 남은 과일 바구니와 하루 번 동전 몇 닢을 손바닥에 놓고 기뻐하는 모습은 가난이 세상의 눈으로 본 비참함과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여유와 기쁨의 상징임을 보이고 있다.

 

마치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동전을 찾아 기뻐하는 과부의 이야기처럼 부유한 처지에서 누리기 어려운 삶의 기쁨과 희열을 느끼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평소에는 무심히 흘려 넘기기 쉬운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크리스챤적인 가난의 메시지가 너무도 아름답게 드러나게 된다.


작가는 경건한 크리스챤으로서 프란치스칸 재속 회원으로서 초기의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운 처지가 된 스페인 사람들에게 부요할 때 느끼지 못했던 신앙의 지혜를 가르치기 위해 이 작품 안에 성서적 가난의 정신을 담았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무엇보다 가난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가난을 기쁨에 찬 가난으로 표현할 만큼 가난을 신앙으로 수용했을 때 인간을 찌들리고 움츠려 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의 경지에 초대한다고 믿으며 가르치고 있다. 소년은 누나 인 듯 보이는 소녀가 손바닥에 담고 있는 동전에 눈길을 돌리며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누나처럼 흐뭇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곁에는 팔다 남은 것이지만 너무도 탐스럽게 보이는 포도들과 두 개의 배가 이들의 현실적 가난과 무관한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 이들의 밝은 마음을 표현하듯 탐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소녀의 손바닥에 있는 몇 푼 안 되는 동전은 스페인에 갑자기 닥친 경제적 어려움의 상징이라면 광우리에 담긴 탐스러운 과일은 가난이 영적으로 승화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부유함이 주는 것과 또 다른 풍요의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다.

갑자기 몰아닥친 가난에 생계 수단으로 과일 행상으로 내몰린  이 남매는 인생을 실패한 낙오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하는 새로운 존재임을 빛의 처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소년을 향해 쏟아지는 햇살은 그의 어깨와 얼굴 전체를 환하게 비추면서 누나 손바닥에 놓인 동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소년에까지 번지면서, 이 남매는 지금 세상이 줄 수 없는 새로운 희망과 기쁨의 세계를 즐기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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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몸담았던 시기에 갑자기 닥친 스페인의 어려워진 현실에서 드러나게 되는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가난한 소년 소녀들, 거리를 방황하는 소년들의 모습에서도 크리스챤 가난을 통해 드러나는 풍요로움을 표현하면서 삶의 어떤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 크리스챤 삶의 풍요로운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한마디로 작가는 풍요로웠던 시절 성서나 교회의 가르침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신앙의 기쁨과 위안으로 초대했다면 이와는 반대의 처지에서 ‘복음의 현실적인 가치에 눈뜨게 함’으로서 신앙의 질을 높이는 복음적 역할을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크리스챤 삶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서도 시들지 않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그렸던 시기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새롭게 닥친 스페인뿐만 아니라 오늘도 어떤 처지에 살던 크리스챤들에게는 성서가 강조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행복”(마태 5:3, 루카 6:20)을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크리스챤의 삶의 질은 결코 풍요로운 순간에만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며 물질적인 여유와 풍요로움과 무관한 것임을 알리고 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작가의 시대 보다 훨씬 더 너무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명예나 인기 등 현세적인 것에서 의미를 찾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많은 종교에서는 종교가 물질적인 성공을 약속한다는 허황한 거짓으로 사람들을 모으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인 산상수훈에 드러나는 행복한 인생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두 어린이들이 과일 행상이라는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초라한 노력을 통해 얻은 수입을 대견해 여기며 자기 나름대로 만족하는 모습이야 말로 오늘도 크리스챤이 배워야 할 참 모습이다. 노력은 반드시 많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대가를 부장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때 삶을 상쾌하고 만들고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을 주고 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어떤 지역 공동체 못지않게 자신의 선교 사명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큰 신뢰를 하고 있던 필리피 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충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떤 경우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1-14)


크리스챤적인 삶은 결코 이 세상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서 면제된 삶의 형태가 아니다. 이렇게 했을 때 크리스챤의 삶은 비인격적이고 이기적인 삶의 형태로 변질되게 마련이며 오늘 우리나라 종교인들이 보이고 있는 실망스러운 모습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일용한 양식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현세적인 걷잡을 수 없는 변화에서도 부하뇌동하기 보다 신앙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쁨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작품이 소장된 뮨헨 고전 회화관은 바이에른 공국을 통치했던 비텔스바흐 왕가의 소유였던 뮌헨 레지덴츠 궁전(Munich Residenz)이 소유하던 것으로 문화와 예술에 혜안을 지녔던 루드비히 1세 황제의 의해 1826년 시작되면서 황제가 소장하던 많은 미술품이 이 전시관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그런데 자기 개인의 취미생활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기 위해 좋은 작품 모두를 전시관으로 보내면서 황제는 그 작품 중 특히 자기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모사품으로 만들어 자기 거실에 두었는데 그중에 이 작품이 있다.


왕궁에 있는 왕 전용 서재에 걸린 이 작품을 보면 착잡한 감회와 함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과일 행상 소녀와 전혀 다른 신분의 왕이 이 작품을 마음에 새기고 살았다는 것은 왕의 신앙적 인품을 느끼게 만든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사는 왕이지만 자기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어린이들을 통해 성서의 핵심인 “가난의 정신”에 대한 이 해에 접근했다는 관점에서 이 작품이야 말로 성서의 정신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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