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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 코린트 (Lovis Corinth : 1858- 1925) : 위대한 순교 (Great Martyrdom: 1907)

by 이종한요한 posted Apr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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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위대한 순교 (Great Martyrdom: 1907)

작   가 : 로비스 코린트 (Lovis Corinth : 1858- 1925)

크   기 : 캠퍼스 유채 250X 190cm

소재지 : 독일 레겐스버그(Regensburg) 미술관

 

 

작가는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 아주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작가의 어머니는 남편을 사별한 후 5명의 자녀를 데리고 자신 보다 13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개가했는데, 새 남편은 구두 수선공이었고 성격이 거칠고 난폭했다.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재혼하였으니 집안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있다. 극심한 가난한 환경에서 생계에 허덕이며 살림을 꾸려야 하는 어머니와 난폭한 의붓아버지 틈바구니에서 설상가상으로 누이와 형제도 작가를 괴롭히는 지옥과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처지에서 그림에의 관심이 작가 어린 시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다행히 작가의 화가로서의 자질을 알아본 의붓아버지가 그를 미술학교에 보내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키울 기회를 줌으로서 그는 행복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신없이 그림에 몰두했던 결과로 그는 20세에 당시 파리와 쌍벽을 이루던 예술의 도시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면서 당시 거장들로부터 전통적인 기법을 익힌 후 26세에 파리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화풍을 배우기 시작했다.

 

4년간의 파리 생활에서 작가로서의 기량을 더 확인한 후 파리에 버금가는 유럽 예술의 도시 뮌헨에 정착해서 종교 문학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려 상당한 호평을 받자, 그는 다시 수도인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당시 베를린에서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풍의 대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해서 명성을 누리는 것 보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닌 작가는 새로 시작되던 표현주의 예술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표현주의는 경제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얼룩진 20세기 초중반의 암울한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오랜 세월 유럽 사회를 석권하던 합리주의적 이성의 신화에 깊은 환멸을 느끼던 유럽인의 정신적 방황 상태에서, 불안과 절망의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을 탐구하는 실존주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려는 열망에 불타는 예술가들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는 풍경화, 정물, 누드 등 다양한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중에도 종교, 역사,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호평을 받았다.


Lovis_Corinth_Das_Große_Martyrium_1907,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2Lovis_Corinth_Das_Gro%C3%9Fe_Martyrium_1907.jpg.jpg

 

이 작품은 작가의 많지 않는 종교화 중에 수작에 속하는 것이다.

 

최후만찬이 끝난 후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신 주님께서 가야파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오르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까지 3시간의 고통으로 압축한 것이다.

 

우리는 통념적으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오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의 고통을 보통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으로 얼버무려 감상적인 차원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해 있다.

 

그러나 작가는 표현주의자답게 이것을 더 적극적이며 충격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파격적인 작품을 남겼다.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신체적 고통은 십자가의 길기도를 통해 많이 묵상하고 있으나 그분이 겪으신 심리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선 그리 깊이 생각지 않고 감상적이며 피상적인 상념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나 작가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서는 이 부분에 대해 대강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헤로데도 자기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보냈다.”(루카 23:11)

 

그러자 지도자들은 이 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 35-38)

 

군사들은 또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나서 그분께 다가가 유다인 들의 임금님 만세하며 그분을 뺨을 쳐 댔다. (요한 19: 3)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에게 그 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요한 18: 22)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유다인의 임금님, 만세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대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끌고 나갔다. (마르 15: 16-20)

 

작가는 위에 나타나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표현주의 작가답게 바로 주님이 십자가를 지는 과정에서 겪으셔야 했던 과정을 두 가지로 압축해서 강렬한 자극으로 표현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4명의 병사들이 십자가를 둘러쌓고 있다. 두 명은 예수님의 발에 못질을 하고 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다. 가느다란 발에 못질을 하는 것으로는 너무도 엄청난 크기의 망치와 못이 동원되었다.

 

마치 철로 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사용하는 연장과 같은 망치와 못으로 예수님의 다리에 못질을 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겪으셨던 신체적 고통을 극한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예수님의 가시관을 통해 예수님의 신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그다음 바라보아야 할 것이 두 명의 병졸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의 부분을 가려야 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알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고 있다. 그런데 병졸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실 준비를 하고 있는 예수님의 성기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이런 주제를 표현한 많은 작품들은 대부분 너무도 유명한 엘 그레코(El Greco : 1541-1614)의 그리스도의 옷 벗김(El Espolio: 1577) 처럼 폭도들에 의해 옷을 벗기우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이 겪어야 할 수치를 암시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면 여기서는 병졸들이 예수님의 성기를 손으로 가르키고 바라보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겪으셔야 했던 극한의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Lovis_Corinth_Das_Große_Martyrium_1907,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2Lovis_Corinth_Das_Gro%C3%9Fe_Martyrium_1907.jpg.jpg


위에 있는 병졸은 예수님의 성기 부분을 손으로 가르키면서 예수님의 지척에서 성기 부분을 바라보고 있는 병졸과 시선을 맞추고 있다.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어느 문화권이나 자신의 성기를 드러낸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며 본인에게는 대단한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표현주의 작가답게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받아 들여야 했던 고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에 위대함은 바로 이런 충격적인 수치를 동반하는 고통을 받아들임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작가는 20세기 초반에 시작되는 표현주의 양식에 심취하면서 발전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훗날 그는 많은 정물화나 풍경화를 통해 아름답게 표현한 인상주의적 표현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으나 표현주의의 진가를 깨닫고 그 특성의 상당부분을 받아들였으며, 특히 성화에 있어서는 표현주의적인 표현이 훨씬 더 복음적 메시지 전달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성 바오로는 십자가 영성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멸망할 자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십니다.” (1코린 1:18)

 

그러나 실제 크리스챤의 삶에 있어서 십자가의 의미는 단순히 희생과 인내와 같은 수덕적 차원에서 제한되어 표현되기에 실재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서는 대단히 미약한 처지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서 반사적으로 오게 되는 수치나 모욕에 대해선 교회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체면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성직자들이나 점잖은 모습으로 보이는 교우들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순간에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그것이 줄 수 있는 자기 인간적 지위와 위상의 손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크리스챤의 실제적 삶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박해 시대 있었던 순교자들을 제외하고는 형식적인 연기 수준처럼 보이는 예가 많다.

 

십자가에 대한 이런 피상적 태도는 결과론적으로 예수와 교회는 서로 다른 것이란 결론으로 끝나고 말며, 오늘날 교회가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사람들이 관심이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실의 주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수치스러움까지 다 내놓고 인간에의 애정을 표현했으나, 예수를 따르는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기로 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작가가 성기까지 노출된 예수님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그동안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성적인 표현을 과감히 시도한 것이나,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관음증이나 성적인 호기심을 부채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내어놓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과 모욕, 모멸감까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나체의 예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일반 문화권에서 생소하고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나체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통해,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고통의 예언적인 실상을 충격적이고 생기있게 제시하고 있다.

 

크리스챤이 작은 예수가 될 때 예수의 모습을 자기 주위에 증거할 수 있다면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 처신하기 위해선 오늘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위선적인 편견에서 과감히 해방되어야 함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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