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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by 이종한요한 posted Oct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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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해바라기 (1888)

작    가 :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크    기 : 캠퍼스 유채 : 92.1 X 73cm

소재지 : 영국 런던 국립 미술관


  해바라기는 반 고흐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제이다. 원채 많은 해바라기를 그렸기에 자연스럽게 그의 대표작이라 여기고 있으며, 여기에 겹쳐 그의 인간으로서 작가로서의 동정을 금할 수 없는 수렁에서 허덕댄 그의 삶을 보면 그는 이 해바라기를 통해 자기 불행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것은 절대 아니다.

 

   이 해바라기는 여느 작가가 그린 것처럼 장식용 정물화가 아니라, 그 작가로서는 삶의 최고 경지에서 만난 신상의 표현이었다.

 

   명망 있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 역시 예수의 제자로 일생을 살기위해 성직의 길을 택한 작가는 교회 안에 들어오자  안에서 보이는 교회 현실은 복음과 거리가 먼 위선과 형식으로 가득 찬 것을 발견하면서 그의 맑은 영혼은 큰 충격과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런 제도적 교회의 위선적 현실에 실망했으나,  예수의 제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사람의 형제로서 살기 위해 벨기에 접경의 보리나주 광산 교회에서 광부들을 위한 목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충격적인 야비한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선교비를 지원하는 선교단의 목표는, 오늘날 우리나라 개신교 일각에서 보이는 야비한 위선으로 포장된 것이었다.

 

   이 지역이 가톨릭 지역이라 신자들을 가톨릭교회에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게  이 선교단의 목표이기에 사랑과 평화의 복음과 거리가 먼 이중적인 처신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실망했다.

 

   이 선교단은  순수한 복음 정신을 살고자 하는 작가와 같은 목회자는 이용가치가 없다는 판단으로 선교비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교회를 떠났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복음을 순수하게 살기 위한 작가 결단이었다.

 

   그가 교회를 떠난 것은 예수를 떠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자기 조직 유지와 확장의 수단으로  만든 교리로서의 예수가 아닌,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을 찾기 위해서였고 복음과 거리가 먼 퇴행적 종교와 결별하고 화가로서의 삶을 통해 아름다움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찾기로 했다.

 

   그의 이런  화가로서의 삶은 교회 역사에서 면면이 이어오면서 교회를 소생시킨 종교개혁자 쇄신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과거 예술가들이 추구하던 것과 전혀 새로운 길을 택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나 행적을 그리는 것을 철저히 피했다.


  그에게 있어 예수의 모습이나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내용을 그린다는 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며 감성의 순수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그의 선배이며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스의 밀레나 세쟌느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일생을 성서를 통독하며 살았으나, 예수님의 모습은  그리지 않고 흙처럼 소박한 농부들의 일상 삶을 그린 것과 같다.

 

   이처럼 그가 종교적 주제를 그리는 것을 포기한 것은, 그의 맑은 감성과 순수한 신앙심에서 우러난 결단이었다.

 

   성서의 자구적 해석이나 교회가 만든 법규에 매달려 교리 논쟁을 일삼은 제도적 종교와 결별하면서 그에겐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는 주위 자연에 널려 있는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이 여정이 해바라기에 와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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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면에서 작가의 해바라기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정물화가 아니라 하느님을 편협한 위선의 틀 속에서 해방시킨 순수한 종교성의 표현하고 있는 성화이다.

 

   그는 하느님의 작품인 해바라기를 온 마음을 담아 그린 것이 조악하게 그려진 성화 보다 더 하느님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종교의 궁극적 목표인 거룩함을 결정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았다.

 

   해바라기는 바로 이런 작가의 신념을 단적으로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해바라기를 그림에 혼신을 다하는 작가의 삶은 처절한 구도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며 도와주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대 예술가들은 과거 교회가 부패했던 시절, 종교 개혁자들이나 청교도들이 맡았던 복음을 순수함으로 표현하는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했을 만큼 자기 삶에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화가의 길이 종교적 소명의 실천으로 연결시킨 것은 그가 남긴 글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즉 그는 예술을 억압받는 사람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는 구절처럼 그는 종교의 역할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위로하는 것 즉 어머니가 아이를 위로하듯 예술을 위로의 수단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예술에 들어있는 종교성을 명백히 표현했다.

 

   그는 선승이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계속 정진하듯, 해바라기를 수없이 그리면서 만물의 주인으로 더 없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로 사람들을 인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부패와 침체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가르치고 실천하기보다 법과 제도의 틀 안에 넣어 박제품을 만듦으로서 교회가 복음의 무덤이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종교에는 복음의 핵심을 망각한 채 교세 확장이나 다른 것에 신경을 씀으로 신앙을 박제품으로 만드는 부패와 안일이 공존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이런 박제품 교회를 떠나면서 더욱 예수를 알고 사랑하게 되었고, 이 맑은 열정의 표현이 바로 해바라기를 통해 투사되었다.

 

   작가에게 있어 해바라기로 이어지는 주제는 태양이었다. 태양은 끝없는 불바다이자 불타오르는 큰 공이었기에 그는 태양을 무척 그리고 싶어 태양을 주제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태양을 너무 바라보면 눈이 멀어지듯 그는 말년을 주위에서는 정신병이 아닌가 하고 염려하는 그런 증상을 보이면서 , 그는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는 현상적으로 보면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인생을 마무리 했다.

   이런 죽음을 맞는 작가를   담당 교회 목사는 그 시신을 교회 영구차로 옮기는 것을 막았기에 동생과 몇 명의 친구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킨 그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이는 수난 복음에 타나나고 있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그의 동생 테오는 형의 죽음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형의 죽음이 삶의 가장 큰 잔인함이라고 생각한다. 형은 미소 지으며 죽어간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일생을 이어지는 불운과 역경 속에서도 두 번의 큰 절망적 충격이 있었는데, 목회자로서 가장 순수한 열정으로 살고자 하는 그를 면직시킨 교회와 동료 목사들의 비인간적인 몰이해와, 새로운 신앙의 열정으로 시작한 그의 그림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일생을 처절한 가난 속에 산 것이다.

 

   생전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동생이 보관했던 작품들은 그의 사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천정부지의 가격이 되었다.

 

   몇년 전 일본 보험업계의 거물인 야수 고토(Yasu Goto)가 작가의 해바라기 작품 한점을 39.921.750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불하고 구입함으로서 세계 미술품 거래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일생을 하느님을 찾기 위해 온갖 주위의 몰이해와 좌절을 감내하면서 살아가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한 그가 남긴 작품들은  그의 의도대로 예수님의 모습을 하나도 그리지 않고 , 하느님의 작품인 평범한 해바라기안에서,  성서의 내용을 심혈을 다해 그린 과거 어느 작가가 표현하지 못했던 강한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다


  그는 결코 크리스챤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이 줄 수 있는 감동을 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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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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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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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이레네 2016.03.20 23:31:37
    고흐의 해바라기를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해 주시니 몰랐던 점을 발견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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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풍경소리 2015.10.24 12:33:27
    신부님...!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자 적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는 글입니다.
    제 마음 어딘가에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순수가 바로 저의 눈물로 흐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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