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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 리피노(Filippino Lippi : 1457- 1504) : 성 베르나르도에게 나타나신 성모님

by 이종한요한 posted Jun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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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발현(전체).jpg


제  목 : 성 베르나르도에게 나타나신 성모님

           (Apparizione della Vergine a san Bernardo, 1482)

작  가 : 필립보 리피노(Filippino Lippi : 1457- 1504)

크  기 : 목판 유채 210X 195cm

소재지 : 이태리 피렌체 바디아(Badia)

 

끌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는 성 프란치스코 이전 유럽 전체에 가장 영향력이 있던 수도자로 서방 교회 안에서 교황의 명칭을 지니지 않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실재로 그의 영향력은 교황이 끼친 것 보다 더 컸다.

 

그의 매력적인 인품은 참으로 그 시대 교황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1090년 프랑스 디종의 귀족 아들로 태어나, 1153년 귀천할 때까지 164개의 수도원을 자기가 세운 클레르보 수도원에 속하게 만들었다.

 

그는 기품 있는 귀족 출신이 보일 수 있는 고귀한 인품과 따뜻하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그를 만나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성 베르나르도가 활동하던 11세기는 중세를 표현하는 암흑 시기라는 표현이 적절한 처지였는데,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교회의 핵심인 수도자들로 부패나 안일에 빠진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이런 수도생활 타락한 현실을 마음 아파하며 어렵고 척박한 소택지에 수도원을 세워 성 베네딕도의 목표인 기도하고 일하는 삶을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으며 그의 매력적인 인품은 수도자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한 감동을 주었다.

 

그는 자기의 제자가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이 되자, 교황의 요청에 의해 교황직 수행에 도움이 되는 영성 지도서(Considration)를 할 만큼 명실상부한 유럽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하느님 사랑과 그리스도의 강생,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명쾌한 강론으로 그전까지 그리스도의 신성의 집중적인 표현으로 그동안 미개발 상태에 있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표현했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이해를 키움으로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균형 있게 조화시켰다.

 

그의 감미로운 성격은 자연스럽게 감칠 나는 강론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신심은 우리 성가에도 나오는 생각하소서 성모님‘ (Memorare)” 라는 성모 찬송도 만들었으며, 오늘도 교회 전례 안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성모 찬송(Salve Regina)의 보급에 일조를 했다.

 

작가는 르네상스 예술의 진원지인 피렌체 인근에서 태어나 보티첼리의 지도를 받으면서 피렌체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로서 인정을 받았으며, 이 작품은 작가의 황금시기의 작품이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위시해서 너무도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을 탄생시켰으나, 작가 역시 피렌체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

 

성모발현.png


이 작품은 피렌체 프란체스코 경당을 위해 제작했는데, 이것을 주문한 사람은 피에로로서 오른편 아래 기도하는 자세로 있다. 중세 성화에 많은 곳에서 그것을 봉헌한 사람의 초상이 등장하는 예가 있는데, 이것은 오늘의 시각에서는 좀 생경스러운 일이다.

 

이것을 기증하기 위해선 많은 돈을 써야 하는 처지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 6:3) 는 성서 말씀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란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과 다르다. 중세 그림에서 기증자가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자기 과시의 표현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죄인으로서 성인들의 전구를 요청하는 겸손한 자세이며,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증거의 중세적 신앙 표현이기에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나타나고 있다.

 

문구.png


 성 베르나르도는 느슨한 베네딕도 회를 개혁하기 위해 철저히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의 규칙에 충실했으며, 부유한 인상을 주는 모든 것을 배격하고 검박한 환경의 수도원을 만들었다.

 

작품의 성 베르나르도는 일상 수도승의 일과대로 성 독서를 하고 있는 순간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배경이 험한 바위가 있는 산이 있는 것은 베네딕도 영성이 공주 은수 생활로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임을 표현하고 있다.

 

수도원 건물과 험한 산들이 배경이 된 것은 성 베르나르도의 영성은 도시 안에서 광야의 영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성 베르나르도 앞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대견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어느 수도회 성인인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없을까만 성 베르나르도 성모님의 신심은 어머니로서 깊은 정감을 지닌 관계였다.

 

그가 비록 은수의 삶을 선택했으나 교회의 요청과 또 세상이 그를 필요로 했기에 외출을 해야 할 기회가 많았던 그는 귀원할 때 마다 가장 먼저 자식이 어머니에게 인사하듯 먼저 성모님께 인사를 하면 성모님은 마치 자기 아들을 대하듯 성인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는 감미로운 전승이 있을 만큼 아름답고 강렬했던 성모신심의 표현이다.

 

사본 -성모발현(전체).jpg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의 성모님 곁에 4명의 천사들이 서서 성모님의 시선으로 성 베르나르도를 바라보고 있다. 중세 성화에서 성모님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름다움은 또 하느님 성성의 표현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어서 당연하나 이 작품에는 좀 특별한 것이 있다.

 

성모님과 성모님 주위에 등장하는 천사들이 기증자의 아내와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현대적인 시각으로서는 이것은 이해가 어려운 것이나, 중세 성화에서는 두 가지 차원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먼저 신심적 차원에서 자기 온 가족을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뜻으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고, 그다음은 당시 피렌체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유행하던 표현을 빌려온 것이다.

 

작가의 스승인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당시 피렌체의 내노라는 귀족 가문의 부탁을 받아 성화를 제작했는데, 등장하는 인물 중에 피렌체 시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그 자녀들이나 가족들을 작품에 등장시킴으로서 주문자의 호감을 얻었고 더 많은 수입과 주문을 받는 반사효과도 부정할 수 없다.

 

작가는 보티첼리의 제자였으니 이 부분 이런 관점에서 이해 할 수 있겠다.

 

성모님과 4명의 천사들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피렌체 르네상스의 영향이었다. 이 르네상스 전성기의 미학은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동시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거룩함과 동일하다는 미켈란젤로의 미학이 다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면서 아름다움의 극상을 향해 치닫았다.

 

이것은 바로 무르익은 르네상스의 영향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구.png

 

성서를 필사하고 있는 성 베르나르도 머리위엔 항구하고 절제하라 (Sustine et Abstine) 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것은 성서 구절이 아니라, 3세기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 에피텍투스 (Epictetus : 50-135) 의 유명한 격언이다.

 

베네딕도 수도회의 개혁 성인인 성 베르나르도에게 그 유명한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bora!” 라는 성 베네딕도의 격언이 아닌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인용했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암흑처럼 고여 있던 중세의 사상적 물꼬를 트는 출발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억제되었던 인간 감정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재평가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실상을 대담하고 솔직히 표현하던 시기였다.

 

사상적으로도 크리스챤적인 것 외엔 전혀 담을 쌓고 살던 상태에서 메디치 집안의 도움으로 희랍 철학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작가가 활동하던 르네상스의 전성시기에는 플라톤 사상이 피렌체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억제되었던 인간의 감정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렸던 시기였다. 희랍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고전에 대한 많은 연구를 했던 피렌체인들은 성서의 내용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서 여물은 교훈들도 수용할 만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능력이 컸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올빼미.png


성 베르나르도 뒤편엔 사슬을 물어뜯고 있는 악마가 올빼미와 함께 있는데, 이것은 중세 영성의 표현이다.

 

수도승의 삶은 광야에서 예수님의 삶처럼 항상 악마의 유혹과 투쟁하는 삶임을 의미하며, 중세기 수도자들의 찬미가에서 성모님은 인간을 죄의 사슬에서 해방시키는 존재로 묘사되곤 했다.

 

중세에 있어 올빼미 자체는 유혹의 상징으로 그 자체 악이 아니지만 자신에게 모여든 새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상징이다. 또한 어두운 구멍에 들어 있는 올빼미는 덕과 지혜의 빛을 회피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상징한다.

 

르네상스의 전성시기의 이 작품은 참으로 대단한 가치성과 의미성이 있는 것이다. 당시 피렌체에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에 대단한 작가들도 빛을 보지 못하던 역설적 시대였다.

 

작가 역시 피렌체 밖에서 태어났다면 대단한 영향력을 줄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르네상스의 긍정적인 면을 탁월히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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