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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베클린(Arnord Bocklin: 1827-1901) : 그리스도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는 마리아 막달래나 (1868)

by 이종한요한 posted Nov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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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의 시신 앞에서 통곡하는 마리아 막달래나 (1868)

작가: 아놀드 베클린(Arnord Bocklin: 1827-1901)

크기: 캠퍼스 유채 : 85X 149cm

소재지: 스위스 바젤 쿤스트 뮤지엄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외에 많은 여성들도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을 도운 것이 나타나고 있다. 교회가 교계 제도의 성격을 정착시키면서 남성 위주 성격을 지닌 집단이 되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여성 제자들의 역할이 탁월했기에 오늘 교회 일부에서 여성 사제직에 대한 주장은 성서적 맥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스위스 출신으로 상징주의(Symbolism)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상징주의의 목적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다.

  

   작가는 로마를 방문하면서 여러 예술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많은 은유적이며 신화적인 요소에 감동을 하게 되고 그전까지 유럽 화풍을 지배하고 있던 자연주의에서 탈피해서 상징주의로 전환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여러 신학자들이 신자들의 신심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연구를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성서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함으로서 예기치 못했던 실수와 착오가 생긴 것도 있는데, 성녀 막달레나에 대한 교회 전승이 그중에 하나이다.

 

   성서에 성녀 막달레나에 관해 나타나는 내용은 다음 것이 전부이다. 그 뒤 예수께서는 여러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루카 8,1-3)

 

   이처럼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기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생긴 복합 정신 장애로 허덕이다가 주님을 만남으로서 치유될 수 있었다. 의학과 심리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의 신경증상의 표현은 모두 마귀의 조종으로 보았기에 일곱 마귀에 걸렸다는 것은 복합적인 정신 장애를 말한다.

 

   이후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연스럽게 자기에게 새로운 인생길을 열어준 예수님을 따르면서 제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심으로 그는 주님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요한 20, 11-18)

 

  헌데 교회 역사에서 비이성적이고 맹신적인 신심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되었고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다음 구절을 그녀에게 덮씌우기 시작했다.

 

   루카 복음 7,36-50절에 나타타나고 있는 동네에서 죄녀로 소문난 어떤 여인”(루카 7,36)으로 자기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발에 향료를 발라드리고 자기 머리칼로 닦아 드렸다는 내용을 앞에 구절에 덮어 씌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죄 많은 여인이란 칭호를 달았다.

 

   그 다음 요한복음 12장에 나타나고 있는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요한 12,3) 역시 값비싼 향유로 예수님을 발을 닦아드렸다는 내용도 붙이면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죄 많은 여인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녀였다는 결론이 13세기에 저술된 성인전인 황금전설(Legenda Aurea)에 삽입되면서 교회 안에 정착되었다.

 

   이것은 아주 저질이었던 창녀에서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었다는 드라마적인 효과는 있지만 성서적인 바탕이 없기에 오늘날은 처음에 인용한 주님의 도움으로 일곱 마귀로부터 치유된 여인으로서 정착시키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막달래나는 회개의 모델이기 보다 주님을 열렬히 사랑했던 한 인간의 모델로 설정하는 게 더 성서적이며 정상이다.

 

   작가는 막달래나가 주님을 극진히 사랑하며 자기 삶의 모든 것으로 여겼기에 주님의 시신 앞에 슬픔을 표현하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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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린 후 어머니 성모님이 안고 슬퍼하시는 주제가 바로 너무도 유명한 피에타(Pieta)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님 곁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이나, 이때 그들은 슬퍼하면서도 이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시신을 앞에 둔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체 할 수 없는 벅찬 슬픔을 폭발시키며 어떤 이유로던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향해 강한 저항을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마리아 막달레아의 모습에서는 과거 전통적인 성화에서 볼 수 있던 종교적 숭엄함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사랑하는 사람을 졸지에 잃은 여인의 걷잡을 수 없는 슬픔만이 드러나고 있다누워계신 주님 역시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을 겪은 흔적이 전혀 없는 평온한 모습이다. 잠자는 듯이 죽어 있는 평온한 사람의 모습이다. 주님의 얼굴이 관객을 향해 있으며 옆구리에 새겨진 아주 미세한 상처 자국이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임을 알리고 있다.

 

   주님의 얼굴은 푸르스름하고 누런 피부가 그분이 죽은 상태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며, 그 위에서 절규하듯 통곡하는 막달레나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바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막달레나가 쓰고 있던 검은 베일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흘러내려 주님의 벗은 하체 부분을 일부 가리고 있다. 이 검은 베일 역시 사랑하는 주님을 잃은 막달레나의 슬픔과 절망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가 이 주제로 작품을 구상할 당시 막달레나에 대한 교회의 정서는 앞에서 언급한 큰 죄를 지은 여자로서 자기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께 갚음하는 마음으로 예수의 순례 여정을 동반한 여인이었을 때의 정서이다.

 

   작가는 대담하게 이런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자기에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도록 모든 장애와 어둠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주님을 연인처럼, 아버지 처럼, 절친한 친구처럼 대하는 모습이다.

 

   현대인들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후광을 두른 예수 보다 마리아를 통해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에 대해 더 친근감과 매력을 느끼고 있다.

 

   알아듣기도 믿기도 어려운 복잡한 교리로 무장된 하느님 보다는 우리와 꼭 같은 육신을 지니시고 너무도 큰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받은 예수님에게서 ,전지전능하시며 한 치의 착오도 있을 수 없는 하느님으로서의 예수 보다 우리의 연약함에 동참하신 십자가의 예수께 대해 더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오늘 예수를 가르치는 종교가 매력을 지니기 위해선 인간 예수의 면모를 강조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 현대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예수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성으로 예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주님 뜻에 맞는 것이고 또 이런 예수 사랑을 통해 우리가 예수를 닮을 수 있다.

 

   작가는 현대인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과감한 시도로 예수님의 존재성과 모습을 과거의 회상 차원이 아닌 오늘의 현실 안으로 끌어 들였다는 것이 큰 공로이다.

 

   우리는 시대 착오적인 과거의 예수의 모습에 묶여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예수 사랑의 증거를 잘 못하고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할 것을 이 작품은 요청하고 있다.

 

   이 작품은 회개의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교회의 의도 속에서 성서적인 모습과 차이가 있는 성녀 막달레나를 주님 사랑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사셨던 매력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것은 어떤 이유로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하기에 교회 안에 시대 표현에 뒤진 많은 교리들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의 작품은 당시로서는 예언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더하고 있다.

 

   성미술의 현대적 표현에 과감하라는 격려를 주고 있는 다음 문헌은 새로운 크리스천들 안에 각인된 성화의 고착 관념에서 탈출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현대 화가는 어느 면에서 현대인의 예언자이며 시인입니다. 현대인의 사고 방식, 현대 사회를 가리켜 보이는 예언지이며 시인입니다..” (교종 바오로 6세께서 1973년 예술인들에게 하신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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