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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정화 : 지오토 디 본도네

by 이종한요한 posted Jan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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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전정화(1305)
   가 :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7-1337​)
   기 : 유채 200X185cm
소재지 :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요한 2,13-17)




예수님이 생애 마지막쯤 당신 구원사업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것이 성전에 들어가 외국에서 순례 차 온 유대인들을 등치는 장사를 하고 있는 잡상인들을 쫓아내셨다는 내용을 모든 복음에서 전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한 대단한 분노의 내용이다.

역사적 맥락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당연히 예수님 생애 마지막에 이루어진 것이나 유독 요한복음만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일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 사건의 시대적 차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적 차원이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생애에서 모든 사람을 다 용서하고 받아들였으나 유독 두 신분에 대한 것은 한치의 용서도 없으셨는데 바로 위선자와 이중 인격적인 태도였고 여기에 대해 강한 표현을 성서에서 자주 하고 계신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마태 6,5)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마태6,16)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마태 7,5)




성전 정화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위선자와 이중인격자의 견책에 대한 구체적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유대인이 고국을 떠나 이웃 나라에서 살았는데, 이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했으며 어디서든지 다 그렇듯 현지인들에게 갖은 모욕과 박해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겪으면서도 야훼 신앙을 지켜 왔다.

이들은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을 참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순례 와서는 하도 오랜만이기에 여기에 대한 법을 모르는 데다, 어떤 유대인들은 모국어도 잊어버렸기에 봉헌물로 바칠 비둘기나 다른 것을 살 때 혼란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의 이런 약점을 이용한 성전 성직자들은 하부 조직인 상인 계급들과 짜고 환전에서부터 봉헌물 구입에 있어 엄청난 부당 이익을 취하는 게 합법적인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가장 정직하고 신성해야 할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느님을 가르치는 제사장들과 야합한 상인들이 성전을 상대로 불법 장사를 하는 한마디로 성전이 복마전으로 변신한 것을 예수님은 노기를 띠고 이들은 성전에서 쫓아낸 것이 바로, 이 사건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의 말씀이며

성전 정화 사건은 바로 이런 회개하는 것이 부질없고 허황한 미사여구의 말장난이 아닌 실제 행동으로 잘못된 것은 강경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또한 회개는 가장 교회의 중심부 핵심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나 다 악을 징계하고 선을 지향하는 면이 있으나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종교에 다 부패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이것이 변방의 신자들 집단이 아니라 바로 핵심 성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바로 여기에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오늘 여러 종교에서 생기고 있는 수치스럽고 안타까운 문제들은 변두리 신자들이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 그 종교를 지도하는 권한을 지닌 지도자들이 연루된 문제라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교회는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순수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우리라고 예외일 수가 될 수는 없으며 예외적인 존재인 것처럼 생각할 때 우리 교회도 복마전으로 변질하며 주님이 말씀하신 회칠한 무덤으로 둔갑할 수 있다.

우리 교회가 지난 세기 저지른 캐나다에서의 원주민 어린이 학대 사건에 대해 교황님이 사과 방문하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어떤 사회사업 시설의 관리 성직자가 저지른 사건은 참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런 교회의 부끄러운 면들을 이 작품과 견주어 볼 때 우리가 해야 할 처신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절망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회는 끊임없이 세상의 정화 못지않게 자기 정화에 힘써야 한다는 좋은 교훈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을 교회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예수님과 같은 채찍과 회초리를 들어야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회초리와 채찍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교회의 가르침인 화내지 말라는 것이며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을 때 예수님의 회초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 없이 밀어 버릴 수 있다.



성서에는 화내지 말라는 권고가 많이 있으나, 예수님의 분노에 대한 이해를 알리는 곳이 없기에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 부족 차원에서 항상 자비롭고 평화로운 표정의 그리스도, 세상 문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하늘나라만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성서의 다음 말씀들은 이것을 더 재촉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에페 4,31)



“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콜로 3,8)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 안에는 불의에 대한 분노가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했을 때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며 이것이 없을 때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절름발이 복음이 되고 만다.



작가는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이며 처음으로 원근법을 도입해서 르네상스 화풍을 일으킨 작가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이탈리아 파도바(Pavova)의 한 경당에 그려진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것 중 한 부분이다.



스크로베니(Scroveni)라는 이 경당은 중세기 헨리코라는 부자가 세상을 떠난 자기 부친의 죄 사함과 구원을 청하기 위한 작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부친은 당시로서는 고리대금에 속했으나 오늘 차원에서 보면 개인 금융에 속하는 돈놀이를 직업으로 했다.

중세 교회는 어떤 의미의 돈놀이이든 다 고리대금으로 치부하여 지옥 갈 죄인으로 치부하던 처지였으며 이런 잘못된 이해는 가톨릭교회가 사회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는 비난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다행히 가난을 강조하던 몇몇 프란치스칸들이 금융은 현대적 의미의 자선 차원임을 알리면서 신심의 산(Montes pietatis)이라는 운동의 금융 활동을 했고 이것이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용조합 운동의 효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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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 장사꾼의 중간에 예수님이 노기 띤 모습으로 서 계신다.



제자들은 분노한 표정의 예수님을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제자들의 놀란 듯한 모습은 그렇더라도 예수님으로부터 축출당한 장사꾼들의 모습은 너무 순진하게 보인다.



순례자들을 속이는 가증한 범행에 직접 관여된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 순박한 모습들이다.



여기에서 작가의 예술가 이전 한 인간으로서 지닌 혜안이 드러나고 있다.

예수님의 채찍으로 성전에서 축출된 이 장사꾼들은 결코 범죄인이 아니다.



이들이 범죄의 앞장에 서 있지만 이들은 자기들의 열악한 삶의 환경으로 죄를 범한 데 불과하다.

즉 가정을 꾸리기 위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된 한마디로 생계형 범죄자들이기에 이들은 하느님 앞에선 약한 처지에서 죄를 지은 사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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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장사꾼들은 약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그들의 죄는 실수 수준으로 돌릴 수 있으나 진짜 범인은 바로 성전을 지키는 종교 지도자임을 알리고 있다.



허연 수염과 같은 좋은 말들을 남발하며 살아가는 성전 지도자, 성서에서는 제관 바리사이 사두가이로 표현되고 있는 이런 작자들이 바로 용서받지 못할 범인임을 알리고 있다.



이들의 흰 수염과 용모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경건함을 온몸으로 담고 있으나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독사 같은 눈빛은 이들의 악성을 표현하고 있다.

교회는 항상 선을 강조하는 집단이나 교회 공동체 안에는 이런 독사의 눈빛이 도사릴 수 있음을 알고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경계를 사랑과 용서의 이름으로 늦출 때 그 집단은 아무리 복음을 유튜브로 떠드는 집단이라도 현대판 복마전이 되고 말며 우리 사회에서 사악한 종교 지도자에게 동조하며 만들고 있는 복마전의 모습을 주말 광화문 집회나 이태원 집회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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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원한 모습은 예수님의 채찍에 의해 위축된 장사꾼들이 한눈을 판 사이 종교인의 사악함에 희생물이 되어 성전 봉헌이란 이름으로 살상을 당할 양과 동물들이 우리를 뚫고 탈출해서 일부는 제자들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느님께 바칠 사악함을 담은 봉헌물이 제 본향으로 돌아가는 충격적인 모습이다.

위선적인 태도를 지닌 집단이라면 이것은 대단한 신성모독이기에 다시 그 동물들을 붙잡아서 제단에 바쳐야 한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의 간교함을 아신 예수님은 이 동물의 해방이 바로 하느님의 뜻임을 알리고 있다.



종교가 자기 집단 유지를 최고의 사명으로 여길 때 취할 수 있는 태도이며 이런 유치하고 사악한 태도가 오늘도 교회가 사랑의 이름으로 비일비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작가는 예술가이지만 그에겐 대단한 신앙적 감각이 있었다.

그가 일생을 통해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드리며 복음을 섭렵한 결실일까 그는 다음 성서 말씀으로 동물들에 대한 해방의 태도를 보이는데 성서의 다음 구절이 상기시키고 있다.




“우리는 사냥꾼의 그물에서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시편 124,7)





또한 집단에 어떤 이익이 있을 때나 자기 과시에 도움이 될 때라도 위선과 이중성의 태도는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교훈을 호세아 예언자는 다음과 표현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진리를 사는 사람이고 진리를 살기 위해서 피해야 할 것은 위선과 이중성의 태도라는 것이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호세 6,6)



성탄과 신년이라는 기쁨의 시기를 맞아 이 작품은 좀 보기가 거북한 것일 수 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살펴봐야 할 좋은 시의적절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예수 아기에게 바칠 진정한 결심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이사 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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